나를 내어주는 방식으로서의 기독교
누구든지 목마른사람은
내게 와서 마셔라
누구든지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에서 말한 것 같이
그 깊은 곳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칠 것이다
요한복음 7장_메시지
목마른 사람들은
물을 찾아서 무엇이나 마신다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서
콜라를 마시기도 하고
소금물을 먹기도 하고
때론 물이 없으면 꾸정물도 먹는다
그런데 항상 한가지
생수만이 계속 갈증을 없애준다
우리 몸이 그렇게 만들어졌기에
다른 합성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
생수의 강 예수
그를 마시는 자마다
생명을 얻고
갈증을 해소한다
삶이라는 거대한 사막 가운데서
깊은 오아시스를 경험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항상 이런식으로
사람들을 대해왔다
진짜 진리를 마시지 않으면
삶에서 언제나 갈증이 해소되지 않을 것이오
그러면서 자신들은 항상
진리를 먹는다고 구별지어 왔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그런식으로
구별짓거나 구분지어서 말하지 않는다
마가복음에서는 더더욱
사람들에게 너희가 소금이 되고 빛이 되라 하신다
누군가로부터 비교해서
욕망을 끌어내는 방법은
진리가 행하는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다
교회에 대해서도
대항론, 대조론, 대안론이 있다
교회가 세속적인 문화에
대행해서 싸워야 한다는 사람은
동성애나 낙태와 열심히 싸운다
그리고 자본주의와는 잘 안 싸운다
교회가 세상의 흐름에 대해서
구별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대조론은
자신들 만의 공동체나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한국교회의 지교회주의의 문제를 만들었다
마지막 남은 대안론은
그렇다면 너가 생수가 되고 빵이 되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이 목이 마른데
콜라를 마시는 이들에게
나는 시원한 생수가 있는데
약오르지? 그럼 교회와~ 이러는 이들에게.
너가 생수가 되고
너가 소금이 되라는 말씀
너가 생명의 빵이 되어서
너 자신을 쪼개어서 주라는 말씀
그 말씀을 만나면
베드로사도처럼 큰 산을 만난듯
좌절하는 것 같고
비로소 나 자신을 보는 것 같다
맞아! 베들레헴이 떡집이었고
예수는 생명의 빵이었던 것처럼
교회는 마르지 않은 샘이고
우리는 생수이지
사람들에게 벌컥벌컥 들이키게 하는
시원한 냉수이지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누군가를 대상으로 놓고 평가하고
그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컨설팅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방식이라면 굳이
예수님께서 내려와서
십자가를 지고서 자신의
생명을 나누줄 필요가 없었다
진정한 십자가의 의미는
자신의 삶을 쪼개어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는
화목제의 원리에 있다
오늘 내가 생수의 강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주는 것
내 안의 생수를 냉장고문열듯이
활짝 열고서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
그것은 작은 미소가 될 수도 있고
조그만한 시간일 수도 있으며
어떤 노동이나 때론
물질이나 재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나는 구별되었으니 너랑 달라! 이건 아니다
누구든지 목마른사람은
내게 와서 마셔라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제가 물이 되어서 나를 드리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