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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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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an 07. 2019

배제와 포옹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삶을 살아가기

너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늘 성경에 파묻혀 지낸다


그러나 너희는 나무를 보느라 숲을 놓치고 있다

이 성경 전체가 나에 관해 기록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너희 앞에 이렇게 서 있는데도,

너희는 생명을 원한다고 하면서


정작 나에게게서

그 생명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요한복음 5장_메시지 성경




"진실은 포용적이지만 진리는 배타적이다"

(미로슬라브 볼프_배제와 포용)


배타적이 아니면 진리일 수 없고

표용적이지 않으면 진실일 수 없다


그러므로 진리와 진실이 만나는

방식은 포용이 아니라 포옹embrace가 된다


누군가 나를 안아주는 것을 상상해 보면

우리는 우리의 존재가 어떻든지 간에


안아주시는 그 사랑에 감격하고

또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나

이런 용서가 어떻게 가능한가?


그러나 그 용서가 끝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사랑의 관계가 지속된다




오늘날 심리학과 정치학, 사회학은

인간을 '~이다'라고 규정하고 시작한다


소위 말하는 존재론적 측면에서

인간의 의지, 지성, 신체, 심리를 바탕으로


인간 존재를 규정하고 그에 맞게

사회와 국가, 세계를 구성한다.


대부분의 인간론은 본성에 따라서

선함, 악함, 백지상태를 상정한다


그 구성이 끝나면 체계적으로

작은 단위부터 큰 단위까지 구성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구성되는 것들은

한번 구성되고 나면 잘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바뀌어도

문화나 제도는 잘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제도와 문화에서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것 자체가 기본이 된다


태어난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사람들은 달라진 존재론, '인간은 ~이다'를 갖는다


그런 인간 구분에 의해서

자기이해와 세상에 대한 이해를 갖는다




기독교는 그렇게 구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말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들었다에서

인간은 죄를 지었다로


그리고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다


이런 맥락 속에서 하나님이 계셔야

인간이 규정된다


인간이 악하든 선하든 백지이든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라서 그것이 결정된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기존의 모더니즘이 가지고 있는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관점이나

심리학을 기본으로 하는 자아관을 가진다


그래서 하나님 없이도 인간이 규정되고

그리스도없이도 죄를 해결하는 것 같이 보인다


근본적으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을 규정한다




생명이 없는 종교의 특징은

항상 텍스트만 포용적이고


컨텍스트는 배타적인 것을 알수 있다

상황에는 배타적이면서


성격만 포용적으로 읽은 것

거기서 기독교의 문제가 발생된다


텍스트(성경)는 배타적으로 읽고

컨텍스트(삶)은 포용적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텍스트와 컨텍스트가 연결되는 방식인

포옹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용서하고 희생하고 책임지고

받아주는 방식이 아닐까?


그런 포옹을 통해서 세상에서는

사랑을 느끼고 누리고 갈망하지 않을까?


이 모든 것들의 시작은

예수님의 오심이다


그리고 꾸준히 매일매일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그 생명을 누리는


그 한 번의 호흡과 대화에서

사랑의 포옹이 시작되지 않을까?




그리스도 없이 생명은

지속적으로 공급되지 않는다


생명인 척 하지만

사실 오래갈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계속해서 우리를

포옹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안에서


진리를 배타적으로 살아내고

진실을 계속해서 포용하며 살아간다


인간의 역사를 그리스도께서

포용하시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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