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바디우 철학 인사이트_철학해봄
작년 한해 가장 힘들었던 시간은 아마도 토요일 아침 7시마다 진행되었던 '철학해봄'이었을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토요일 아침 7시에 모여서 매주 진행하기로 한 것은 참 좋은 선택이었던 것도 같고 그만큼 무리인 것도 같다. 그러나 시간은 지나고 그 시간들은 추억이 되었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 위대한 도전을 했다고 서로를 응원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철학앜데미에서 나온 '처음읽는 시리즈' 시리즈를 한 번씩 읽었다. 프랑스, 영미철학, 독일철학, 중국철학, 한국 철학을. 그리고 2018년에는 프랑스현대철학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로 하였다. 물론 몇주간 쉬는 날도 있었고 몇명이 빠지는 날에는 둘이서 하는 날도 있었지만 결국은 '샤르트르에서 데리다까지'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을 마무리 했다.
다시 한번 우리의 철학해봄의 정확한 방향은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11번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세상을 해석하는데 집중했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있다'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철학자들의 이야기보다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어떻게 변화를 만들어 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나름의 대안들을 꺼내 놓기도 했다. 아직 미숙하지만 그럼 어떤가? 어차피 동시대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책임이자 선물, 자유가 아닌가? 우리가 즐겁고, 또 함께 걸어갈 사람들과 고민을 한다는 것처럼 즐거운게 어디 있는가? 이런 생각으로 책을 마치고 발표회를 갖기로 했다. 각자 공통질문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조용한 카페를 빌려서 조그마한 발표회를 하려고 한다. 오늘은 그 발표회를 준비하기 위한 초안 작업이다.
나는 여러 철학자들 중에서 알랭바디우를 선택했다. 알랭바디우는 현존하는 프랑스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어렵지만 영향력이 있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 나는 아주 조금 철학아카데미에서 배웠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순수다자'개념과 칸토어의 정리를 통한 '부분의 합은 언제나 전체보다 크다'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초안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어려운 작업이지만 '한 사람의 열걸음보다는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낫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함께 한 걸음 걸어가는 마음으로 정리해 본다.
공통질문
① 철함해봄이 좋았던 이유.
ex. 그 동안 해봄 내에서 암묵적으로 공유되었던 내용을 구체화할 수 있어서
② 내가 관심 있는 사회 이슈, 사회의 문제점 혹은 고민
③ 내가 선택한 철학자, 영감을 받은 이유, 철학자의 개념 등을 소개
(선택사항) ④ 사회 문제 해결방향(사회 혁신을 위한 가설 설정 등)
혁신을 하기 위해서는 보통 '패러다임의 전환, 프로세스의개선,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발명'을 해야한다. 우리는 철학해봄을 하면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위해서 다양한 사유를 시도하고, 기존에 있던 판을 깨는 작업들을 했다.
사회혁신을 위한 철학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참가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관점과 변화되는 관점들의 추이, 그리고 함께 토론하면서 또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아다.
원리 이전에 관점과 존재론이 있다고 한다면 철학해봄은 사회혁신을 위한 원리를 도출하기 이전에 사회혁신을 위해서는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와 어떻게 존재들과 화해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시간을 깊이있게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철학’을 공부하게된 계기가 방법론이나 원리차원에서는 다룰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할 공동체가 없었다. 대부분은 어렵다고 관심이 없었고, 진행을 하더라도 응용학문에 사용하기 위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필요한 것만 가져다가 쓰는 ‘도구적이성’으로써의 철학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번 모임을 통해서 순수하게 철학자체, 철학자들의 생각 자체에서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주체란 누구인가? 마이클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의하면 대중mass에서 다중multitude로 바뀐다고 하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여기, 우리’ 안에서 새로운 주체개면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시대와 상황이 바뀌었는데 기존의 호명이론(알튀세르)을 넘어서는 대안으로서의 주체이론이 나올 수 있는가? 구조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에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넘어서는 방법이 나올 수 있을까?
소외당한 타자의 복권은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떤 차원(제도, 문화, 경제)에서 가능한가?
‘다중적 시간’을 갖는 공동체와 집단들에 맞는 ‘다중적 변화multi-transformation’를 구성할 수 있는가?
존롤스가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이야기한 ‘중층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수직적 연결)와 마이클왈쩌가 말한 ‘복합적 평등complex equality’의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까? 결국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안에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이것을 통해서 새로운 방식의 공동체, 조직, 회의방식, 민주적 의사결정 방법론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사회적혁신의 플랫폼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나누어서 본다고 할 때 플랫폼을 구성하기 위한 메뉴얼, 지표, 운영방식 등등에 대한 기본적인 초안을 만들 수 있을까?
사회혁신의 방법은 ‘변증법’적 고양이 아니라 들뢰즈가 말하는 ‘노마드’들의 잔치처럼 자유로운 영혼들에게도 도전이 될 수 있을까? ‘혁신적수단에 의한 혁신Innovation by Innovative means’을 이룰 수 있을까? 혁신적 도구들은 계속 생산이 되어야 하고, 그에 맞는 혁신의 성과와 영향력도 지속적으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말이다.
바디우, 순수다자
바디우 철학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다수 존재론'이다. 관념철학을 하는 보통의 철하자들은 절대 변하지 않는 '일자'를 정해놓고 그 일자에서 분화된 주체들을 설정한다. 기원으로서는 절대 변하지 않는 1이 있고, 거기에 어떤 부분이 붙어서 1+n의 존재들이 나타난다고 가정하는 철학은 자연스럽게 '일자가 중심이 된 엘리트주의'가 되거나 '일자를 중심으로 시스템화하는 전체주의'로 나아가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바디우가 다수의 존재론을 주장하기 위해서 칸토어의 정리를 가지고 오는 것은 근본적인 도전을 위한 출사표라고 볼 수 있다.
현대집합론에서 다시 정의한 지점은 '부분의 합은 언제나 전체보다 크다'라는 것이다. 전체를 나누면 부분이 되고, 부분을 합치면 전체가 된다는 전통집합론에서는 존재가 '정해진 어떤 지점'에 머물러 있다. 정해진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라고 셀 수 있고, 존재들의 합을 다수라고 칭하는 사이에 그 다수들은 '동일한 인격'을 가정한다. 그 '동일한 인격'은 완성체 '일자'에 그림자 혹은 파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나로 집결되거나 통합되는 과정은 '일자인 엘리트'에 의한 카리스마적 통합이거나 '다수결'에 의한 '숫자로 치환된 존재들의 표현'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디우는 '순수한 다자'를 상정하는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상호 통약불가능한 전제'를 가진 존재들이다. 존재들의 출발지점 자체가 다수이기 때문에 '일자'가 아닌 다양한 인격성을 전제로 한다. 또한 이미 생각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주체들은 지금도 매번 새롭게 태어난다. 이러한 주체들이 태어나는 지점은 무한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계속 다양성을 지닌 주체들은 무한하게 탄생할 수 있게 된다.
사회혁신, 다수존재론
사회혁신이 느린 이유는 존재론적 혁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1987년의 존재론이나 2009년의 존재론 혹은 그 이전에 1948년의 제헌헌법적 존재론으로 주체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혁신은 과거의 것이 된다.
진정한 혁신은 새로운 주체의 등장으로 이어지는데, 새로운 주체가 등장하게 되는 지점은 주체의 출발점이 각각 다른 고유한 영역에서여야 한다. 그래야 숫자로 치환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서 이야기와 토론이 진행되는 사회혁신의 질적 도약이 이루어질 것이다.
다수존잰들을 가정하면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도존재들의 수만큼, 그 이상으로 다양한 플랫폼들을 상상하게 되고, 그러한 플랫폼들의 연결을통해서 사회를 혁신하는 방안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사건, 실험
다수존재론이 실재론 가능하고 존재한다는 것은 사건을 통해서 새로운 주체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알튀세르가 말한 '호명이론'으로 주체가 형성되는 것을 넘어서서 사건을 통해서 다양한 주체들의 유형, 주체들의 자리가 만들어지고 그 자리에서 주체들이 행위함으로써 주체가 자리에 맞는 진리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진리를 품은 주체들은 진리에 기반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혁신적 실험'을 진행하고, 실험의 결과들이 진리의 조각이 되어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부분들이 된다. 여기서도 당연히 '진리의 부분들은 진리전체보다 크다'라는 가정에 의해서 계속해서 팽창되는 진리를 만들어간다. 매번 확장되는 진리를 살아내는 주체들의 궤적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보'가 가능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역사는 진보하고, 그 진보를 이루어내는 주체들은 사건에 의해서 탄생한 진리를 현실로 옮겨오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사회문제해결의 근본적인 시작은 '존재론'에서 시작한다. 새로운 존재를 규정하기 보다는 존재들이 들어설 자리를 여러개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 존재들은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는 각자의 영역과 인격을 가진 존재들이라서 '다수결'이라는 '숫자'로 치환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존재론의 규정을 통해서만 '심의민주주의'나 '숙의민주주의'가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일자로 치환될 수 없는 인격을 가진 존재'들에게는 같은 대답이나 같은 질문이 통하지가 않음으로 '대화와 토론'을 통한 합의만이 존재들이 살아갈 현실을 규정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는 바로 '일방적으로 정의된 일자적 존재론' 때문에 합의와 토론을 통해서 의견을 조율하는 '순수다자 존재들'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전에 근대에서 사용하던 방식이 현대로 옮겨와도 여전히 같은 전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논할 수가 없다. 과도기적 체제가 진리처럼 받아지는 상황인 것이다.
존재론을 다시 정의하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방식의 사회혁신의 방법론이 생길 수 있다.
1. 플랫폼민주주의 : 다수의 존재들은 그들의 수만큼 새로운 주체를 만들고 서로 모여서 플랫폼 안에서 자유로운 토론과 합의를 하는 민주주의를 만들어간다.
2. 커넥티드민주주의 : 서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이루어 간다. 하나로 치환되어 버리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연결을 통해서 계속 다양성과 복잡성을 확장해가는 커넥션을 만들어낸다. '연결될 수록 더욱 민주주의'가 완성된다.
3. 네트워크소사이어티 : 네트워크를 통해서 사회를 형성한다. 네트워킹을 통해서 다수의 존재들이 연결되고, 때로는 노드가 되어서 서로에게 정보와 의견을 전달한다.
4. 사회적합의주의 :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 방식이 다양하게 발전한ㄷ.
5. UGC : 유저가 직접 자신들의 컨텐츠를 만들며, 이러한 컨텐츠들은 주체의 수보다 더 많이 존재한다.
6. 다원적 평등: 평등의 개념도 플랫폼의 특성이나 성격에 맞게 각각 구성된다.
7. 이야기하는 주체 : 내러티브를 가지고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발견되는 주체개념이 진행된다. 각기 다른 집에서 만들어진 주체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연결을 만들어내고 연결된 것들을 해석하면서 자신들의 주체성을 만들어간다.
8. 플랫폼 갤럭시 : 다양한 플랫폼들은 나름의 규칙과 원리를 가지고 운영되며, 각자의 자리에서 고유한 역할을 수행한다. 플랫폼들이 연결되는 방식으로 사회를 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