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성의 상실_모리스클라인
20190208_철학아카데미
수학 : 확실성의 상실 Mathematics : The Loss of Certainty, 1980_모리스클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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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이래로 무모순과 완전성이라는 지위는 사라졌다. 또 칸토어에 의해 무한집합에 대해서 새로운 길이 열러지고 괴델의 의해 펼쳐진 다양한 무한이 나온다. 이를 통해서 수학에서는 진리라는 개념은 사라지고실재성이라는 것도 없다고 여긴다.
수학을 복수 개념으로 쓰듯이 여러 성체가 있는 샘이다. 각 성체들은 아직도 물리적으로 응용 가능한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수학은 여전히 유용하다. 수학이 기호로 자신의 정합성의 영역을 넓혀 간다고 하는 것이 인간의 정신의 산물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삶의 영혼에 대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영역상 다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영혼의 희박화를 정신으로 보기에는 수학이 그 나름의 재미와 독특한 성질이 있다.
또한 정신과 영혼의 정도로 차이로 보아서는 안된다. 정신이 다루는 추상의 세계와 영혼이 연관하는 삶의 세상 사이에는 차이와 ‘차히’ 만큼의 다른 위상이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수의 기원, 이집트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나 피타고라스와 같은 사람들이 사용한 기하학이나 도형은 사실 이집트에서 시작된 수학에서 기원했다. 이집트에서 수학이 발전하게 된 것은 정기적인 나일강의 범람에 대비하기 위해서 둑을 만들어야 했는데,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계산이 필요했고 따라서 각도와 도형에 대한 수학이 발전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 더 들어가면 기하학과 산술학은 다르다. 위치와 무게 그리고 도형에 대한 이야기는 기하학이고, 수와 무한에 대한 이야기는 산술학에 속한다. 탈레스는 기하학에, 피타고라스는 산술학에 조예가 깊었다. 피타고라스는 산술을 가지고 악기의 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지만, 이집트에서는 평지와 원운동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서론, 테제
수학의 앞날을 내다보는 참된 방법은 그 역사와 현재의 상태를 살펴보는 것이다. 수학이 여전히 효율성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은 두 가지 논의 주제를 우리에게 던져 준다. 첫 번째는 수학의 효용성을 타당성의 준거로 삼을만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주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아직 타당한 수학이 어떤 것인지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왜 수학이 효용성을 지니는 것을까?
영국의 공리주의와 미국의 실용주의가 생명사상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수학의 확실성이나 진리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효용성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1장, 수학의 창세기
“이와 같은 진리에 다다른 이여! 그래서 반짝이는 하늘에서 장막을 걷어 낸 이여! 이들의 영혼에 은총이 가득하기를! 그들은 저 멀리 있는 별들도 명료하게 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사고의 힘으로 사슬을 만들어 천상의 세계를 옭아맸다. 산 위에 또 산을 쌓는 모한한 예살 방식을 쓰지 않고서도 이렇게 해서 천상에 닿게 되었다_오비디우스 ‘변형담’
2장, 수학적 진리의 개화
외부 세계를 탐구하는 주된 목적은 하나님이 세워 놓고 수학의 언어로 우리에게 계시한 합리적 질서와 조화를 발견해 재는 것이다_요하네스 케플러
3장, 자연은 수학으로 씌어진 책이다.
어떤 이론이든 간에 그 이론이 얼마나 엄밀한 과학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안에 담긴 수학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_임마뉴엘 칸트
칸트는 이념의 통일성을 믿었으나, 마이몬은 미분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4장, 첫째 위기 : 수학적 진리의 퇴색
시대마다 신화가 있게 마련인데 그 당시에는 그것을 드 높은 진리라고 부른다_무명
수학이 19세기에 와서, 기하학이 하나의 연역체계도 아니고, 수론이 하나의 규칙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측면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수학은 확실성이라기보다 정해진 한계 내에서 자기충족성을 보장하는 인간의 놀이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이 놀이가 경험과 결부되어 무척 재미있어진다는 것이다.
가우스, 코시, 푸리에를 위시한 수 많은 학자들의 업적은 자연의 참된 법칙들이 속속들이 발견되어 가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다는 증거로 여겨졌다. 이 이론들은 자연의 숨겨진 비밀을 캐내는 데 성공적으로 활용했다. 그들은 수학자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설계를 발견해 내는 축복받는 자들이라는 것을 믿고 최면이라도 걸린 듯 자연의 수학적 법칙을 찾는 일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자연 법칙의 불변성을 주장하면서 은영 중에 하나님의 능력에 제한을 가한 사람은 데카르트였다. 뉴턴도 변하지 않는 질서를 믿었지만 세계가 하나님의 계획에 맞게 움직여 나가게 하려면 끊임없이 하나님 자신이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시계를 계속해 고치는 시계 수리공에 비유했다. 따라서 신이 계속 유지되어 가도록 끊임없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태양계의 안정성은 곧 깨어져 버릴 것이라고 여겼다.
라이프니츠는 이런 생각에 반대했다. “뉴턴의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은 운동을 영원히 지속하게 할 수도 없는 듯 보인다. 자연법칙에 따라 한 사물에서 다른 사물로 옮겨 갈 따름이다” 따라서 라이프니츠에게서는 자연이 신을 대처하게 된다. 가우스는 “자연이여! 당신은 저의 여신입니다! 그대의 법칙에 저의 모든 정체성을 바칩니다.”라고 했다. 가우스는 영원히 존재하는 전지전능한 신을 믿었지만, 신에 대한 믿음과 수학 연구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다.
흄은 물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회의적인 눈길을 보냈다. 구체적 대상물로 가득 찬 세계가 영원히 존재한다고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냐고 물었다. 이렇게 해서 흄은 자연 법칙의 불가피성과 영속성, 그리고 불가침성을 허물어버렸다.
칸트는 철학의 대담함은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기하학에 대한 그의 견해는 대담함을 넘어서 경솔하기까지 하다. 동프로이센에 있는 자신은 고향 쾨니히스 베르크에서 60킬로미터 이상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도 우주 전체의 기하 체계를 결정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과학의 수학적 법칙은 어떠한가? 칸트에 따르면 모든 경험이 공간과 시간이라는 마음의 형식을 통해서 받아들여지므로 수학은 모든 경험에 적용 가능해야만 한다.
칸트는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접근’에서 뉴턴의 법칙과 그 법칙이 내포하는 결과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뉴턴은 우주 구조에 대해 너무나도 명료한 통찰을 주었기에 이 법칙은 영원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은 자기 충족적이고 전능한 인간 이성의 모든 업적을 한 순간에 허물어 버릴 괴물이었다. 그 공리는 평행선 공리를 종종 유클리드의 제 5공준이라고 부른다. ‘한 직선이 다른 두 직선을 지났다고 하자. 이 때 같은 쪽에 있는 두 내각의 합이 두 개 직각보다 작다면, 두 직선을 연장할 경우 두 직선은 두 내각의 합이 두개 직각보다 작은 쪽에서 서로 만난다.
가우스, 로바체프스키, 보여이는 유클리드의 평행선 공리가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종류의 시도가 있었다. 첫째는 평행선 공리 대신에 좀 더 자명해 보이는 진술을 채택하는 것이다. 대체 공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유클리드의 나머지 아홉가지 공리에서 평행선 공리를 연역해 낸다면 공리는 정리가 될 것이고, 그러면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어진다.
리만의 목표 가운데 하나는 유클리드의 공리가 자명한 진리라기보다는 경험적 진리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해석학적 방법을 선택했다. 무한하지 않는 공간이면서 경계가 없을 수 있다는 리만의 생각은 또 다른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성립ㅇ르 가져왔는데, 이 기하학은 현재 이중 타원 기하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참조, 수학책
수학의 역사_칼 보이져
수학사_하워드 이브스
수학적 경험_필립 데이비스
민네이션, 생각
인류의 발생에 대해서 들뢰즈는 네발로 걷는 포유류가 두발로 걸을 때 앞의 두발이 탈영토화해서 손이 되었다고 말한다. 탈 영토화된 두 손은 ‘도구’를 통해서 재영토화를 거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직립보행을 하면서 목뼈가 강화되고 결국 성대를 통해서 언어를 할 수 있는 입 안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웅웅거리던 인간의 입 속에 공간은 점점 언어를 만들어가는데, 혀의 탈 영토화가 ‘언어’를 통해서 소리의 재영토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플라톤시대에는 인간의 영혼과 정신이 실재였고 몸과 환경은 가상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가상을 ‘이데아에 대한 모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데카르트에 와서는 ‘물리학’이 증명이 되는데 몸과 환경을 실재로 보기 시작했다.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도래한 것이다. 여기서 더 물리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 아래로 내려 간 것이 스피노자였고, 들뢰즈와 베르그송이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간다. 뉴턴은 절대공간에서 많은 가정들을 정해놓고 시작했고, 라이프니츠는 상대적 공간에서 미분과 적분을 이야기했다.
수학은 존재론이다. 무엇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숫자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확실성은 ‘정해진 공간에 시간이 멈춰야’만 가능한 것이다. 뉴턴에게서는 절대공간의 개념에서 가능했지만, 인간의 시간개념과 공간개념에서는 정해진 것이 없고 계속 운동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루트, 인테그랄, 더하기, 빼기와 같은 것들은 개념은 사실은 존재론적 지식이고, 이것은 실재로는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수학이 존재론이라면 ‘인간’을 기준으로, 인간의 관점에서 존재를 바라보는 것은 대상과 주체 모두 다른 시간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시간위의 존재들은 계속해서 4차원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수학에서 무한의 숫자가 여러개라는 것에서 ‘리만가설’이 나오는데, 이 지점을 넘어가면 괴델과 하이젠베르크와 같이 무한 넘어는 불확정이라는 ‘수학의 사실 상 포기’를 선언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