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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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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Feb 20. 2019

증인과 증언

우리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때는 너희가 알 수 없다

때를 정하는 것은 아버지의 몫이다


너희가 받을 것은 성령이다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세상끝까지 가서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장_메시지성경




간만에 아주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서

멍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진실은 항상 왜곡당하고


왜곡이 낳은 결과들에

힘없는 이들은 목소리를 줄여야 한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 때문

그들의 증언 때문에 이 사회는 그래도


이정도의 순수성과

사람들의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아저씨도 저를

이용할 겁니까?"


라는 대사에서 왜 이렇게

기독교인들의 전도방식이 생각나는 걸까?




전도하는 개인에게 상을 주는 방식은

무엇을 탑재하고 있을까?


왜 그것이 계속 불편하고

불안하고 이상하다고 생각이 드는 걸까?


전도가 상인가?

그 전도는 개인에게 달려 있는 것일까?


보수적인 입장에서 섭리적인

하나님의 은혜에서 전도는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이 그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한 사람에게

상이 돌아가는 것은 맞지 않다


진보적인 입장에서

전도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지고서

결정하는 문제임으로


결국 전도한 사람이

상을 받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럼 왜? 어떻게?

전도왕이 탄생하는 걸까?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말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기독교변증에서 나오는

설득하는 진리는 '기독교 강요' 같다




예수님은 명확하게

우리에게 증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한다


증인은 본 것을 말하고

자기가 경험한 것을 다르게 말할 경우


위증이 되어서

심판을 받는다


증인은 자신의 증언에

자신의 인생이 담겨 있다


문제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이 보고 들은 것


옆 사람이, 교회 목사님이

어떤 유명한 책의 저자가


듣고 경험한 것을 증언하는

이들 때문에 전도는 변질된다


진정한 증언은

"야~ 예수님 진짜 좋아! 짱이야~"


라는 감동과 경탄이 섞인

진정한 삶의 언어가 담길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좋은 분을

어떻게 안 사랑할 수 있지?"


라는 증언으로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그 분이 살아 있는 분이셔?"


이런식의 대화에서 설득하는

기독교의 모습은 없다


증언하고 그 증언을 받은 사람은

그 증인의 삶 전체로 그것을 안다


그러므로 증인은 증언대로 살고

살아간 대로 증언하게 되어 있다


삶으로서의 기독교는

그래서 삶 자체로 증언이 되는 법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말씀이 육신이 되셨기에

몸의 언어 자체가 메시지가 된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삶의 변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몸의 증언을 하지 않는 이들은


가짜다

위증이다




나는 잘 살고 있을까?

나는 제대로 증언하고 있을까?


그 분의 사랑과 용서와 이해

끝없는 사랑을 삶의 언어로


몸의 언어로

잘 증언하고 있는 것일까?


혹시나 사람들을,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를 돌아보면서

내 안에 쌓여진 증언을 기억해야 한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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