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다시는 조개구이를 안드신다고 하셨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영종도 여행

by 낭만민네이션


왠지 아침에 눈이 번쩍 뜨였다. 쉬는 날이지만 9시도 안되었는데 눈이 떠져서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큰 방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볼멘소리가 들렸다. 가만 들어보니 아버지가 제대로 빨래를 못 갠다고 나무라고 계셨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기지개를 펴고서 큰방으로 건너갔다. 어머니는 누워서 약간은 어두운 얼굴로 티비를 보고 계셨고 아버지는 핸드폰으로 최근에 끝난 미스트롯을 보고 계셨다. 아침 9시 방안은 너무 어둡고 바깥에는 햇빛이 활짝 피어났다. 어머니의 어두운 얼굴에 조금은 희망이 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영종도로 여행을 가자고 말씀드렸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불이나케 준비하셨다.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은 어린아이가 되어 가시는 것 같고, 나는 부모님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얼른 쏘카를 빌려서 아파트 앞에 데 놓고 이것저것을 챙겨왔다. 연휴 마지막 날이었지만 차는 막히지 않고 우리는 영종대교를 건너면서 이것저것 신기하게 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콧노래가 시작되고, 어머니는 또 한참을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셨다.



1. 조개구이, 을왕리


부모님의 고향이 해남이셔서 지나가는 을왕리 해변어딘가 '해남집'이라는 간판이 보이길래 들어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아무도 없었고 우리는 안쪽에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차고 앉아서 열심히 조개를 구이를 제대로 즐기기 시작했다. 피조개와 대왕조개와 조가비 그리고 해삼과 멍게와 우럭까지 아주 풍성하게 먹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무래도 해남의 맛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다시는 조개구이를 먹지 않으실거라고 하셨다. 아마도 회사에서 누군가 을왕리 조개구이가 맛있다고 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앉아서 조개구이를 먹어면서 옛날이야기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모두 쏟아 놓았다.



물이 빠진 을왕리 해수욕장에는 한적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갯벌에서 게를 잡으로 여기저기 분주하게 움직였다. 게 잡기 명수이신 어머니는 이번에는 뒷짐을 지고서 지평선을 바라보시고는 '자 가자~ 밀물이라서 못 잡는다!'라고 하셨다. 과연 물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고 우리는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 부모님과 함께 사는 늙은 자식들은 꼭 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아이들을 곁에 못 데려다 주는 대신에 효도라고 하는 어리광과 발랄함을 항상 준비해 놓고 있어야 한다. 나의 자녀가 없으니 나라도 그 노릇을 해야 하지 않을까?



2. 어느 영종도 길가


어머니 허리가 많이 굳으셨다. 죽은깨도 많이 나시고 손에는 주름이 더 느셨다. 어머니의 살결에 흘러간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어머니는 어느 길가에 세워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담벼락을 올라가시더니 쑥을 뜯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시면서 '아 이렇게 시원한 바람~' 하시면서 너무 기뻐하셨다. 그리 아름다운 장관이 아니라도 사람은 어떤 어느정도의 여유만 있어도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머니의 학교에서 줄리아크리스테바가 이야기하는 모성을 너무 많이 받았다. 어머니는 정말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주시고 또 부어주셨다. 그래서 나는 안병무 선생님이 어머니의 뒷모습에 서린 예수의 모습을 이야기하셨을 때 너무나 맞다고 무릎을 치면서 동의했다. 어머니가 곧 예수다.




3. 용엄사, 우리불교


어릴적부터 절에 가는 것이 좋았다. 물론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절이 주는 먼가 존엄함과 아늑함, 산새가 좋았다. 행선지를 정하지 않고 지나가다가 어느 사찰에 들렀다. 소승불교인지 대승불교인지 조계종인지 천태종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불교의 본산이라고 쓰여 있었다. 여러가지 꽃들이 우리를 맞이했고, 어머니는 거의 처음으로 '자~ 사진을 쫌 찍어봐라~'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신다. 자연산으로 이렇게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봄의 어늘 휴일 낮에 나는 행복한 사진사가 되었따. 아버지가 은근히 끼고 싶어 하셔서 함께 사진을 찍어 드렸다. 이럴 땐 정말 왠수가 아니라 남편과 아내인데 말이다.





4. 공항전망대


영종도의 제2공항을 지나가니 인천공항전망대가 나왔다. 호기심에 올라가봤는데 정말 1, 2공항이 다 보였다. 부모님과 한참을 서서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들을 관찰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고도가 낮게 날라가는 비행기랑 높게 올라가는 비행기랑 무엇이 다른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여름으로 가는 햇빛은 조금씩 따가와졌고 나는 두바이 사막의 뜨거움이 생각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계속 볼멘소리를 하셨다. 아랑곳하지 않는 우리 아버지 대단하다 ㅋㅋㅋ




5. 쌈밥, 만족하다


조개구이가 영 시원찮으셨던 어머니는 점심을 먹자고 하셨다. 기아대책에 다니는 나에게 8년째 너는 언제 취직할래?라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우리는 점심 언제 먹을래?라고 물어보셨다. 약간은 웃꼈지만 여기저기 밥집을 알아보았다. 주변에 쌈밥집에 들려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우렁된장에 새우젓에 갈치창자젓에 한상 흐르러지게 먹었다.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점저는 이렇게 만족감을 주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여행을 끝내고 오는 사이에 어머니는 창문을 활짝 열고 바람을 맞으시면서 엄청 유쾌하게 웃으셨다. 사람의 행복은 소유에서 오는게 아니라 관계에서 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늘봄이라는 식당은 아주머니가 아주 친절하시고 특이한 새우젓을 많이 판매하고 계셨다.





6. 꽃가게, 카네이션을 대신하다


오늘 길에 김포공항 근처 화훼농장에 들렀다. 차가 있으니 어머니는 사고 싶으신 꽃들을 사오셨다. 나는 어머니 사진도 찍어드리고 어버이 날이고 하니 여러 화분을 선물해 드렸다. 꽃 사이에서 즐겁게 브이를 그리시는 어머님이 더 아이가 되신 것 같았다. 봄을 지낸 꽃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오늘의 미션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운전하면서 피곤했지만, 마음에서는 그동안 묵은 때를 씻어내는 것 같은 상쾌함이 있었다. 할 수 있다면 하는게 맞고, 미안해할 일이라면 안하는게 낫다. 다시 이런 날이 올 때 또 나를 일으켜서 부모님과 여행을 떠나야겠다. 아버지는 벌써 내일 아침 직장의 친구불들과 뭘 자랑할까 고민하고 계셨다. 여행에서 항상 '오늘이 내 생일이다~'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한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행복이 쌓여서 인간의 본성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