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적 문화적 평화를 만들어내는 평화학
북한 연구는 연구자가 연구 대상에 대해 가지는 시각과 관련해 여러 논쟁 을 거쳐 왔다. 과연 남한 연구자가 북한에 대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적 가치를 완전히 배제한 연구를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연구 의 객관성 문제가 이런 논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논쟁에는 정전협정 60주년을 맞는 한반도에 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분단과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갈등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북한 연구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세계 여러 갈등 지역에서 진행된 연구 가운데 많은 사회 과학자들은 자신 들의 연구가 가치중립적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연구들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결국 연구자의 가치가 숨겨진 채로 전면에 드러나지 않을 뿐,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비판이 계속 되어 왔다.
이 논문의 목적은 북한 연구에 대한 평화학적 접근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다. 평화학은 폭력적 갈등 상황에서 완벽한 객관성을 추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지나치게 완벽한 객관성의 추구는 현재 존재하는 폭력적 가치를 정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평화학은 평화라는 가치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비판 적 연구를 제안한다. 평화학은 연구 대상에 대한 과학적 탐구뿐만 아니 라, 이 연구 대상에 평화가 어떤 의미인지를 연구함으로써, 연구 대상이 처한 폭력적 갈등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이런 연구를 위해 평화학 은 다양한 학문 방법론을 수용하고, 국제관계학,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인류학, 교육학, 심리학, 철학, 신학, 자연과학 등 여러 학문들의 관점을 공유하는 학제 간 연구를 추구한다. 이 논문은 이런 평화학의 접근 방식 이 한반도의 갈등 현실과 분리될 수 없는 북한이라는 학문적 연구 대상을 좀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한반도에서 포괄적인 평화 구축 전략을 개발하는 데 공헌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평화학은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이후 1950년대와 1960년대 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러한 발전에는 노르 웨이 오슬로 평화연구소(The Peace Research Institute Oslo: PRIO)와 스톡 홀름 국제평화연구소(The 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SIPRI) 등 평화연구소의 창설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평화연구 저널(the Journal of Peace Research) 및 국제평화연구학회(International Peace Research Association: IPRA) 등을 통한 평화 연구자들의 학문적 교류도 평화학의 발전에 중요한 기틀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70년대에 이르러서 평화학은 점차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 영국의 브래드포드 대학, 미국의 조지 메이슨 대학 등 연구와 학문 교류를 넘어 학생들을 육성하는 대학 교육의 분과로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화학의 발전은 이런 외형적 측면의 발전보다도, 전쟁과 같은 평화롭지 않은 현상과 평화의 조건을 더욱 정교하게 분석하기 위한 개념틀의 발전과, 평화로운 해결 방안을 도출하는 전략적 이론과 실천의 조합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렇게 실천 및 전략적 차원의 평화 이론을 발전시킨 초기 평화학자로는, 전쟁 예방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개발한 케네스 볼딩(Kenneth Boulding), 평화·갈등·폭력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고 평화 구축 전략을 제시한 요한 갈퉁(Johan Galtung), 갈등해결 에 심리학과 국제관계학을 접목시킨 인간 욕구 이론을 제안한 존 버 턴(John Burton), 상호대화에 기초한 제3자 중재 모델을 개발한 브라이 언트 웨지(Bryant Wedge), 갈등진행 분석 및 화해를 위한 비공식적 외 교 모델을 제안한 아담 컬(Adam Curle), 갈등해결의 견지에서 트랙 투(Track II) 외교를 고안하고 발전시킨 요세프 몬트빌(Joseph Montville), 전 지구적 시민사회 문화의 발전상을 제시한 엘리스 볼딩(Elise Boulding),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평화 구축 및 지역문화적 맥락 속에서의 갈등 전환을 주장한 존 폴 레더라크(John Paul Lederach)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냉전 종식 이후,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다양한 폭력 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이들 평화학자들이 발전시켜온 평 화 이론과 실천적 방법론은 유엔, 비정부기구, 각국 공여기구, 종교기 관 및 갈등 지역 국가들의 다양한 정책과 전략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또한 이들의 평화 활동은 역으로 다시금 평화학에 다양한 비판적 연 구 과제를 제공해주고 있다.
평화학은 구체적 연구의 대상뿐만 아니라, 연구 대상의 맥락 속에 서 평화의 가치와 의미, 그리고 평화의 조건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연구로는 직접적(direct) 폭력, 구조적(structural) 폭력, 문화적(cultural) 폭력에 따른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와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의 구분을 들 수 있다. 소극적 평화 와 적극적 평화를 처음으로 제안한 갈퉁은 이러한 구분이 평화롭지 않은 상태를 분석하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갈퉁은 폭력을 “인간의 현실 속 육체적·정신적 목표 실현 이 그 잠재적 실현 가능성에 비해 떨어지도록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정의한다.9) 다시 말해 폭력은 갈등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목표가 발생 했을 때, 한 갈등 집단이 다른 갈등 집단이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을 정도의 육체적·정신적 목표 실현, 즉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강제로 제한하는 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 욕구의 잠재적 실현 가능성은 보이는 강제력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강제력에 의해 서도 제한을 당한다. 갈퉁은 이를 직접적 폭력(보이는 폭력)과 구조적· 문화적 폭력(안 보이는 폭력)이라는 개념으로 구분 짓는다.
다시 말해 폭력은 갈등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목표가 발생 했을 때, 한 갈등 집단이 다른 갈등 집단이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을 정도의 육체적·정신적 목표 실현, 즉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강제로 제한하는 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 욕구의 잠재적 실현 가능성은 보이는 강제력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강제력에 의해 서도 제한을 당한다. 갈퉁은 이를 직접적 폭력(보이는 폭력)과 구조적· 문화적 폭력(안 보이는 폭력)이라는 개념으로 구분 짓는다. 먼저 직접적 폭력이란 인간의 목표 실현 가능성이 직접적으로 파괴되는 것을 의미 한다. 직접적이란 말은 육체적·언어적·심리적으로 고통을 가한다는 말이다. 이는 명백하게 가시적이고, 개별적이며, 비구조적이다. 이에 반해 구조적·문화적 폭력은 특정 집단 혹은 계급이 자원과 시야를 독 점함으로써 다른 인간 욕구의 목표 실현을 제한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여기서 구조적 폭력은 가난, 굶주림, 독재, 사회적 소외, 불공평한 삶 의 기회, 불공평한 자원 분배, 불공평한 결정권 등, 보이지 않는 구조 적 압력을 말한다. 또한 문화적 폭력은 상징 혹은 사건과 같은 문화적 측면을 가지고 같은 상징이나 사건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을 차별하 기 위한 장벽을 만들어내며, 직접적 또는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
미시적 쟁점과 구조의 문제를 함께 다루려는 평화학 적 입장에서 평화의 쟁점은 국제정치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사 회, 그리고 자연을 다루는 모든 학문들이 함께 탐구해야 할 과제가 된다. 바라시(Barash)는 핵무기 개발을 예로 들면서 평화학에서 학제 간 연구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핵 개발은 단순히 물리학, 정치학, 심리 학, 경제학, 역사학 등 한 분과만의 학문적 연구 과제일 수 없다. 이는 이들 학문 모두에게 연관된 과제이며, 학제 간 연구를 통해 더 폭넓은 이해와 분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 도출될 수 있다.
이러한 폭력 탐구에 근거해 갈퉁은 단순히 전쟁과 같은 직접적 폭 와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의 구분을 들 수 있다. 갈퉁과 같이 평화가 폭력의 부재라는 정의를 갖게 되면 평 화의 가치와 조건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폭력을 탐구하고 분석할 필 요가 있다. 갈퉁은 폭력을 “인간의 현실 속 육체적·정신적 목표 실현 이 그 잠재적 실현 가능성에 비해 떨어지도록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정의한다.9) 다시 말해 폭력은 갈등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목표가 발생 했을 때, 한 갈등 집단이 다른 갈등 집단이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을 정도의 육체적·정신적 목표 실현, 즉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강제로 제한하는 힘이라고 볼 수 있다.
갈퉁은 이를 직접적 폭력(보이는 폭력)과 구조적· 문화적 폭력(안 보이는 폭력)이라는 개념으로 구분 짓는다. 먼저 직접적 폭력이란 인간의 목표 실현 가능성이 직접적으로 파괴되는 것을 의미 한다. 직접적이란 말은 육체적·언어적·심리적으로 고통을 가한다는 말이다. 이는 명백하게 가시적이고, 개별적이며, 비구조적이다. 이에 반해 구조적·문화적 폭력은 특정 집단 혹은 계급이 자원과 시야를 독 점함으로써 다른 인간 욕구의 목표 실현을 제한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여기서 구조적 폭력은 가난, 굶주림, 독재, 사회적 소외, 불공평한 삶 의 기회, 불공평한 자원 분배, 불공평한 결정권 등, 보이지 않는 구조 적 압력을 말한다. 또한 문화적 폭력은 상징 혹은 사건과 같은 문화적 측면을 가지고 같은 상징이나 사건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을 차별하 기 위한 장벽을 만들어내며, 직접적 또는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 이러한 폭력 탐구에 근거해 갈퉁은 단순히 전쟁과 같은 직접적 폭 력이 없는 상태를 소극적 평화로 정의한다. 갈퉁에게 이러한 소극적 평화는 진정한 의미의 평화라고 볼 수 없다. 보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다양한 방식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 다. 갈퉁은 직접적 폭력이 부재한 소극적 평화 의 조건을 넘어 모든 종류의 폭력, 즉 직접적 폭력뿐 아니라 구조적· 문화적 폭력이 제거된 상태, 즉 적극적 평화의 조건을 연구할 것을 제안한다.
따르면 평화는 과정 혹은 구조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 동시에 두 가지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다. 평화 구축은 협약 혹은 합의라는 시점 혹은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시간 속 협약 과제 이행의 기능을 넘어 실제 삶의 필요 및 변화에 능동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끊임없는 관계 구축 과정·구조가 되어야 한다. 이런 평화 구축이라는 큰 틀 속에서, 갈등이라는 현상에 대해 이를 해결하려는(갈등해결, conflict resolution) 입장의 평화학 이론과 이를 전 환시키려는(갈등전환, conflict transformation) 입장의 이론이 나타났다. 먼 저 갈등해결 이론이란 갈등의 근본 원인을 분석하고 직접적·구조적 폭력을 해소하기 위한 전략과 기술을 개발하려는 시도이다. 갈등전환 이론은 갈등의 근본 원인을 제거 하거나 인간관계를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생한 갈등을 활용할 수 있는 창의적 상상력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평화적으로 재 구성하는 것을 그 목표로 한다. 갈등전환론자인 갈퉁은 갈 등해결은 임시 목적이고 방편이지만, 갈등전환은 갈등의 변화를 수용 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주장한다.25) 이에 대해 갈퉁은 <그림 1>과 같은 삼각형 구조를 들어 설명한다.
어떤 갈등 상황에서 ‘태도’가 명시적인 수준이라면, ‘행위’와 ‘모순’은 갈등의 잠재적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명시적 태도에만 집중하는 갈등해결은 행위와 모순의 잠재성으로 인해 실패 의 위험성이 높다. 또한 이런 갈등의 삼각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림 2>와 같은 순환적 흐름을 갖는다.
따라서 갈퉁은 어떻게 하면 갈등의 폭력적 경로가 평화의 경로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인가를 탐구하면서, 갈등 속에서 부정적 경험과 에너지가 아니라 긍정적인 경험과 에너지 를 발생시키고 축적할 수 있는 통합적 관계 구축 구조를 제안했다. 갈퉁은 태도에는 공감(Empathy)으로, 폭력에는 비폭력(Non-violence)로, 그리고 모순에는 창의력(Creativity)으로 대응하는 통합적 관계 구축의 구조 속에서 갈등의 긍정적 성격 변화가 촉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았 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변화의 가장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창의력을 통한 창의적 방안 제시이다. 비폭력은 폭력의 수준을 낮추 며, 또 다른 폭력 발생을 예방한다. 공감은 각각의 갈등 집단이 갖는 서로의 이익과 욕구에 대한 이해와 의식화를 도우며 갈등의 창의적 해결을 위한 기초를 놓는다. 그리고 창의력은 줄다리기와 같은 승/패 (win/lose)의 경우의 수를 넘어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갈등의 비 폭력적 전환을 담보한다.
오랫동안 지속된 갈등 가운데 심각한 양극화라는 ‘태도’를 어떻게 극복하고 공감을 이끌어낼 것인가에 좀 더 집중하는 레더라크 의 평화 이론도 관계 구축을 중심으로 한 갈등전환 이론의 또 다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레더라크는 양극화가 실제 삶의 경험 속에서 주관적 인식과 감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당 국 간 협상에서 주를 이루는 이성적이고 기계적인 접근이 갈등해결에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평화는 “반드시 사람들의 인식 과 필요를 형성하는 경험적이고 주관적인 실재에 응답하고 또한 이에 근거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레더라크의 이론적 접 근은 이슈 혹은 문제들의 해결 및 해소보다는, 경험적이고 주관적 실 재에 근거하며 이에 응답할 수 있는 평화학의 도덕적 상상력을 강조 한다.
전략적 평화 구축 은 부트로스-갈리의 제안과 같은 평화 조성, 평화 유지, 평화 구축과 같은 시계열적 구도가 아니라 평화를 위한 활동의 동시다발성에 주목 한다. 구축 활동은 어느 한 가지만 중요하거나 우선적으로 추구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이고 동시다발적인 전략적 과정이며 동시에 구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레더라크는 그렇지 못할 경우 다음과 같은 평화 구축의 격차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 한다.
그 첫 번째 격차는 ‘상호 의존성의 격차(interdependence gap)’이다. 평화 구축은 갈등 집단 간 수평적 차원의 관계와 수직적 차원의 관계 모두를 포함하는 상호 의존적 관 계 구축이어야 한다. 두 번째로 평화 구축에는 ‘정의의 격차(justice gap)’가 나타날 수 있다. 정의의 격차는 평화에 대한 기대와 실제로 주어진 평화 간의 격차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평화 구축 속 ‘과정-구조의 격차 (process-structure gap)’가 나타날 수 있다. 따르면 평화는 과정 혹은 구조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 동시에 두 가지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다. 평화 구축은 협약 혹은 합의라는 시점 혹은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시간 속 협약 과제 이행의 기능을 넘어 실제 삶의 필요 및 변화에 능동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끊임없는 관계 구축 과정·구조가 되어야 한다.
북한 연구에 대한 평화학적 접근은 한반도 갈등 속 북 한 연구의 이념 편향성을 가치중립적 연구로 극복하려는 시도와 달리, 적극적 평화에 대한 가치 편향성을 지닌 연구를 통해 한반도 갈등의 평화적 전환을 모색하는 실천적 연구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적극적 평화는 소극적 평화와 같이 완결된 최종 지식이 아닌 다양한 종류의 폭력 질서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과 성찰을 통해 계속해서 발전되어 나가는 해석학적 인식을 위한 개념틀이다. 북한을 연구하는 평화 연구 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에서 자유롭다고 주 장하지 않는다. 의학자가 자신의 연구가 오히려 사람의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듯, 평화 연구자는 자 신의 연구가 한반도 갈등에 미칠 실천적 영향에 대해 반드시 책임감 있는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
평화학의 관점에서, 현실주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군사 안보에 기반을 둔 소극적 평화를 넘어 남북의 협력과 관계 맺음을 통해 이루 어가는 적극적 평화는 자유주의와 같이 더 강한 경제력이나 제도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주의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서로의 타 자적 또는 적 정체성이 남과 북 사람들의 공동 운명을 인식하게 되면 서 평화의 정체성으로 변화되는 과정과 구조여야만 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집단 내에 존재하던 구조적·문화적 폭력이 극복되고, 이타적 이고 도덕적인 가치는 서로에게 확장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남한의 입장에서 북한 주민은 단순히 더 큰 이익을 위해 투자하는 대상이 아 니라, 같이 살아가야 하는 이웃으로서 인도적으로 서로 도우며 협력해 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협력 및 정체성 변화 가운데, 한반도의 적극적 평화는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끊임없이 구축되어 나 가는 관계 구축의 과정·구조를 갖는다.
북한 연구에 대한 평화학적 접근에서 그 일차적 과제는 한반도 갈등 맥락 에서 적극적 평화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일국 차원인 북한에서의 적 극적 평화, 그리고 남북관계에서의 적극적 평화, 마지막으로 한반도 갈등 관련국 모두를 포함한 국제적 차원에서 적극적 평화가 무엇인가 라는 본질적 질문을 계속해서 함께 질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세계 평화학이 논하는 평화의 개념뿐만 아니라, 북한에서의 평화에 대한 시각, 남한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평화에 대한 시각, 그리고 관련국들이 북한을 바라보는 평화에 대한 시각들을 종합 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는 기본적으로 두 개의 평화 개념이 존재한다는 점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착취계급의 평화’와 ‘계급사회가 없는 진정 한 평화’이다. 이러한 북한의 평화 담론은 소극적 평화론 및 적극적 평화론과 유사한 측면이 있으나, 계급적 당파성을 가지고 전쟁의 불가 피성을 승인한다는 점에서, 비폭력을 중시하는 적극적 평화와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 북한 평화 담론의 변화에 대한 지속적 연구가 요구된다.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평화협정 체결 이전이라 도 국가 간의 정치·군사 문제 외에 갈등 속의 다양한 갈등 집단 및 다양한 분야의 행위자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들이 가진 기본적 욕구, 이익, 가치 등을 분석해 미시적 쟁점의 평화적 해결 방안을 추구하는 과정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 사회 연구에 있어서도 북한 주민들의 삶이 단순히 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동심원적 권력 구조에 예속되어 있다는 사고를 벗어나 체제 순응 및 체제 이탈 행위의 공존 현상을 연구하는 북한 주민의 일상사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평화학의 전략적 과제와 직접 접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북한 연구로는 최근 시도되는 남북 간 ‘마음체계 통합 연구’를 주목해볼 수 있다. 이 연구는 평화 구축의 공간인 적십자회담, 인도적 지원 등 다양한 접촉지대에서 남북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상호작용 하는가를 분석한다. 이는 마음체계의 미시적 통합에서 서로 다른 두 마음 체계가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지는 상호 마음체계를 연구하면 서, 공식 담론이 은폐하거나 구조적 설명이 간과하는 행위자들의 일상 을 복원하려는 시도이다. 연구는 기본적으로 남과 북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의 공간에서 만들어진 마음체계, 접촉지대 진입 전 서로에 대한 인식이 만드는 마음체계, 접촉지대에서 상호작용을 통한 마음체계, 이 렇게 세 층위로 나누어 분석한다.
평화학적 접근은 먼저 그 지역의 사람들이 평화롭지 않은 상태, 즉 다양 한 종류의 폭력으로 인해 억눌린 욕구가 무엇인지, 그들의 사회적 삶 이 어떠한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추구한다. 그리고 각각의 행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평화란 무엇인지를 재구성하면서, 평화를 상당히 구 체적인 것으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평화학적 접근은 어떻게 하면 이들 행위자들의 평화가 모두 존중되는 창의적 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이런 평화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이들 행위자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탐구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남한에서 북한학이 없는 평화학은 가능하지 않다. 북한이라는 존재는 평화와 관련해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모든 미시적 쟁점과 구조적 문제에 전반적으로 걸쳐 있는 주요 행위자이다. 한반도 갈등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가치 중립적 연구는 오히려 한반도 갈등의 현실을 정당화하는 연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학이라는 지역학의 종합 학문적 특성과 평화학의 학제 간 연구라는 특성도 서로 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 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최근 아래로부터의 관점을 가진 북한 연구 의 새로운 흐름은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의 연구가 통합적으로 고려되는 북한학이 가진 종합 학문적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러한 특징은 평화학이 가진 학제 간 연구의 흐 름과도 접목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평화학은 갈등 지역 사람들이 원하는 적극적 평화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적극적 평화 구축 전략을 구성하기 위해 국제관계학,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심리학, 교육학, 인류학, 자연과학, 공학, 법학, 철학, 신학 등 매우 다양한 학 문의 연구 방법과 이론을 활용하는 통합적 연구로 발전하고 있다. 이 러한 측면에서 새로운 흐름의 북한학과 평화학의 학제 간 연구가 결 합한다면 북한이라는 다양한 행위자를 좀 더 잘 이해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 적극적 평화를 세워나가는 좀 더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평 화 구축 연구의 발전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