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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ul 08. 2019

짧은 생각들의 단편들

잠시 멈춰서서 돌아보기

#1. 회전목마

이제 40을 향해서 가고 있다. 어릴적에는 10살이 되는 것이 목표였고, 10살 때는 15살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15살이 지나서는 20살이 되어서 대학생이 되어 보는 것이 꿈이었다. 20살에는 어서 졸업해서 어엿한 직장생활을 하는 아저씨가 되고 싶었다. 토끼같은 자식들과 둘러 앉아서 맛있는 저녁을 해먹는 날이 올꺼라고 생각했다. 30이 조금 넘은 나이에는 말이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쉽게 되지 않았다. 친구들은 잘도 결혼하고 잘도 사는데 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나 혼자만 '인생의 회장목마'를 타고서 하염없이 그 자리를 계속해서 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다시 돌아보아도 항상 같은 자리 인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상대적으로 그나마 우리 인생이 회전목마라는 것은 이제 뚜렷하게 알게 되었다. 누구라도 사실은 그 회전목마를 타고 있음을, 그것을 깨닫기까지 40년이 걸리는 사람도 있고 60년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앞으로만 나아가는 진보의 속도에만 응답하지 않고 여기 조용히 이 흐름을 느껴보는 보수의 멈춤도 느껴보고 있다. 삶이 무엇인가 완숙해지고 깊어질 때는 이렇게 모순들 속에서 조용히 잠드는 시간일 것이다. 


#2. 죽음

언젠가는 사람이 죽는 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너무 먼 이야기여서 그것이 나에게는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느날 내 곁에서 하나둘씩 유명을 달리한 친구들이 생각났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 함께 농구하면서 뛰어 놀던 친구들, 함께 콘서트에 가서 환호하고 미래에 어떤 희망들을 품고 돌아왔던 친구들. 예상치 않은 시간에 사라져간 친구들의 이름을 써 놓고 한참을 서성이고 울었다가 한다. 그 친구들을 기리면서 한 글자씩 적어 본다. 죽음이 어느새인가 아니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아파서 죽든지 사고로 죽든지 시간이 되어서 죽든지간에 우리는 죽는다. 그러므로 지금은 약간은 '하이데거'와 같이 '죽음' 앞에서 '내 앞의 생'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내가 해야할 것들이 참으로 많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살아온 날을 뒤돌아 보면서 어떤 죽음을 맞이해볼까 하고선 눈동자에서 힘을 빼어 본다. 너무 희망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나? 너무 잘 돌아가는 어떤 행사의 진행자처럼 인생을 견지하고 있지는 않았나?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h-GhkCWuihA

박진영이 이런 노래도 불렀다. 


#3. 유학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글쓰기 작가, 혹은 철학선생님, 혹은 사회학자인 '한병철'쌤한테 가서 배워볼까? 이런 생각말이다. 베를린 자유대학으로 유학을 가볼까?라는 허무맹랑한 생각말이다. 나는 아직 결혼도 안했고 아이도없으니 지금 갈 수 있을 때 가보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피로사회에서부터 에로스의 종말까지 모두 읽고서 어느정도의 비판도 가능한데, 가볼까? 이런 생각을 한다. 새로운 생각을 품을 수 없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는 이미 갖혀 있는 것이니깐. 3년정도를 준비해서 한번 독일유학을 시도해봐야겠다. 되든안되든 해볼려고. 영어시험도 준비하고 독일어 원서도 찾아본다.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했었는데, 그 때 독일어 선생님이 생각난다. 코가 매우 크시고 서울대 독문과를 나오셨지만 노총각이었던. 어느날 교생 선생님이 우리 반에 오셨는데, 그 선생님이 얼마나 이쁘셨던지 독일어 선생님이 반하셔서 잘 보이려고 다음날부터 단정한 옷에 말도 다른식으로 하던 것이 생각난다. 문제는 그 교생 선생님이 나를 좋아하셔서 질투를 매우 심하게 했다는 것 말이다. 고등학교때는 매우 반듯한 아이였어서 그런지 누나들이 많이 좋아해줬던 것 같다. 머 이런 깨알자랑은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아재 개그와 함께 해야 제맛이다. 암튼 독일로 유학을 가려고 한다. 그럼 다음 문제가 등장한다. 왜 가려고 하는데?



#4. 최대수혜자, 최대 피해자

정치판에서는 조지레이코프가 말한 프레임이론이 판을 친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그 선택된 단어 안에서 살아 숨쉬는 메타포들이 그 단어를 말하는 사람들을 전염시키고, 언어의 범주에서 생각을 범주를 한정시켜 버리는 비법이 프레임 이론이다. 이러한 프레임 이론은 명확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막상은 그게 숨겨저 있어서 잘 보지 못한다. 그럴 때는 한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누가 이러한 프레임의 최대 수혜자이고, 누가 최대의 피해자인지. 그럼 그 말하는 사람이 어디에 서 있고 누구를 옹호하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의도와 목적을 만 천하에 알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는 박근혜게이트를 처음으로 언론에 흘린 작자들이다. 그 이유는 당연히 박근혜와 최순실이 말을 안 들어서 이겠지. 그리고 조선일보를 협박 혹은 위협했을 것이다. 그러니 박근혜 게이트의 최대 피해자는 박근혜 자신이겠고, 최대 수혜자는 조선일보였겠다. 사실 최대 피해자는 어찌되었든 박근혜정권 아래서 피해를 입은 우리 국민들이겠지만. 다소 정치적이라서 더 쓰고 싶지만 쓸 수는 없겠다. 하지만 암튼, 그래 프레임이론을 깨뜨리는 것은 최대 수혜자와 최대 피해자를 드러내는 것이다. 왜 이런 생각을 했냐고 하면, 나 역시 내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할 때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혹은 누가 가장 혜택을 보는지만 구분해도 상당히 지혜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5. 천재들이 생각법

마음만 떠 다니는게 아니라 생각도 떠 다닌다. 최근 '천재들의 생각법'이라는 책을 보았는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독일 유학을 가려고 하니 독일어로 쓴 책들이 들어오는 것도 같다. 제목은 Dunken Wie Einstein이다. 번역하면 아인슈타인처럼 생각하기이다. 아인슈타인의 입체적 생각법, 매클린톡의 유기적 생각법, 니체의 진실의 생각법, 한나아렌트의 능동적 생각법,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생각법등을 다루었다. 생각하는 법만 달라져도 우리는 완전히 똑같은 현실을 완전히 다르게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싶어서 다른 생각들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어떤 것들이 본래의 아우라를 잃고서 저편으로 사라져버렸을 때 다시 그것들에게 빛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그런 생각을 해보고 있다. 그 어느때보다 나 자신에게 진실해져서 내가 모르고 내가 아는 것들을 진실하게 마주하는 순간에 나의 생각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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