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휴가 아닌 휴가를 받아서 제주도를 여행하는 사이에, 우도도 가고 서귀포도 가고 성산일출봉도 갔다. 휴가라고 해봐야 하루정도 쉬었던 이전과는 달리 먼가 잘 쉬었던 것 같은 일정들이었다. 그런데 사람은 항상 그렇지 않나?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를 보는 것들 말이다. 이런 시간은 항상 자신이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는 자괴감과 함께 이렇게 욕망을 투영해보았자 남는 것들은 결국 허영어 너울인가라는 고민이 들 때겠지?
원래는 서울에서 하루를 그냥 통으로 쉴려고 하다가 항공편을 하루 아침으로 미루고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해 보았다. 때 마침 아는 교수님께서 4.3 평화기념관을 다녀와바로고 해서 별 기대감 없이 기념관으로 향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서 미래란 없듯이 내 기억에서 '4.3'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중에서야 고민하고 깨달은 것이지만 2000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4.3'을 다루지 않았다. 국사에 열정을 내며 달달 외우던 내게 아무런 감각이 없었던 이유가 있을 것이고, 역시 나와 같은 세대들이 이 사건에 중요성과 문제점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휴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결말을 맺고 있었다. 정말 시간을 내야만 고민해볼 수 있는 묵직한 주제를 만났고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역사의 돌뿌리 같은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캐내야하는 부분이었다.
# 평화란 무엇인가
역사의 한 켠에 묻혀 있던 유적과 같이 발굴된 43의 희생과 정신은 대한민국의 현주소였다. 상황에 그대로 휩쓸려 버리면서도 아무도 주인없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 같은. 그 와중에 어떤 이의 의도와 어떤 이의 능력부족이 만들어낸 거대한 비극 말이다.
이승만이 만들려고 했던 나라와 이루려고 했던 민주주의가 과연 이런 것인가? 한 사람의 인격personality가 이토록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낸단 말인가? 누구에게 권력을 쥐어주고 어떤 이에게 우리는 우리의 가치왁 권력을 양도할 것인가? 능력이 부족해서 의도가 변질되는가? 아니면 의도가 변질되어서 능력을 키워내는 것인가? 건국이라면서 친일파의 후손들과 자한당의 세려들이 만들어내는 거짓신화가 '서북청년'들처럼 스물스물 기어올라오는 요즘의 기세에서 우리의 어른들은 지금도 정처없이 떠 도는 것 같았다.
그냥 덮어준다고 평화가 아니라, 결자해지와 함께 다시는 그런 분쟁이, 죽음이, 살인이, 무오한 희생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평화가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계사적인 소극적 평화의 흐름 가운데서 우리의 일상에서 실천해야할 적극적 평화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거의 2시간여를 혼비백산으로 돌아다닌 것 같다.
# 거시세계와 미시세계
3국회담의 결과로 한국과 북한은 두 갈래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한 사코 하나의 대한민국을 꿈꿨던 여운영 선생님과 김구 선생님은 암살을 당하였다. 기회주의자로 이름난 하와이의 조폭인 이승만은 자신의 입지글 굳히면서도 친일파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만한 묘안이 필요했다. 이윽고, 정말로 의도되지 않은 제주도에서 한 아이가 말굽에 치이는 사건은 좋은 기복제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모든 사람들을 빨갱이로 치부해버리고서는 서북청년단과 미국의 탱크와 비행기를 보내서 일반인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미국이 개인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도 우리의 국민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무장단도 저항했지만 살인을 저지르기에는 매한가지였다. 물론 여기서 그럼 어떻게 할래?라고 할 때 나도 뾰족한 대안은 없었을 듯하다. 그러나 또 누군가를 죽이고 죽이는 보복적인 반항의 끝은 무엇일까? 아무튼 일은 더더욱 커지고 5.10 제헌선거를 반대하면서 전적으로 반골의 기질을 보낸 제주도를 미군정은 매우 위험시했다.
이승만의 야욕과 미군정의 두려움과 친일파들의 광기가 하나로 뭉쳐서 '4.3'이 일어났다. 언제나 큰 희생을 당하는 사람들은 가장 힘없고 저항할 수 없으며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인격이란, 어떤 나라의 국격이란 가장 연약한 이들에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는, 우리들은 너무나 힘없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혹했고, 냉정했고, 무시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도 그들이 저항하지 않으며,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음으로. 뒤를 돌아보면서 다시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기억 속에소, 실제 삶에서, 어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말할 수 없는 이들의 말을 틀어 먹은 적은 없었는가? 앞에 있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던 적은 없었는가? 나의 어떤 행동과 말이 그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는가?
미시세계에서 거시세계로, 개인적인 고민에서 국가적인 고민으로 넘어가는 사이에 나는 어떤 결론을 얻었다. 평화는 추구하기에는 쉽고 이루기엔 어려운 것처럼, 폭력이라는 추구하기에는 어렵지만 이루기엔 쉽다는 것을. 돌아보는 내내 눈물이 났다. 그리고 이 눈물의 출처가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만큰 너무 복합적인 문제들이 다가왔다. 여전히 미국은 한국을 대상을 딜을 하기 위한 과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일본은 그 와중에 보통국가가 되려고 발버둥을 치고. 미시와 거시를 오 가는 사이에 '4.3'은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
젊은이들의 생각이 죽어 버리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여전히 젊은이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이분법과 고정관념으로 쉽게 세상을 치부해버리는 이들을 만날 때면 항상 마음이 꾸물꾸물했다. 선을 그으면서 적과 아군을 나누는 갈등의 시작에서 어떻게 하면 선을 지워버리고 함께 평화를 만들어낼지가 도무지 해답이 안 나왔다. '4.3'이후에 우리는 너무도 많은 굴곡을 겪어 왔다. 6.25와 개발독재와 유신과 전두환과 노태우와 이명박과 박근혜와 그리고 지금의 나경원까지. 한치 앞도 생각하지 않은 이들 때문에 더 많이 보는 이들은 항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거나 때론 변절했다.
나는 어떤 길을 따라서 가야하나?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처럼 액체근대의 속성처럼 이리저리 부유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기회주의자 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 박사처럼 시대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야 할까? 휴가를 제대로 맞이하는 것 같았다. 잠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고민을 안고 가지만, 그 깊이는 해가 갈 수록 깊어지는 중이었다.
우리가 해야할 일, 내가 해야할 일. 아직 결론짓지 못했던 프로젝트와 아직 해소되지 않은 집단적 트라우마와 아직 책임지지 않은 이들의 용서와 사과와 처벌을 받아내는 것 까지. 세상을 바꾸기 위한 한 걸음 한걸음을 걸어야 한다. 12만명이 죽은 제노사이드의 4월 3일. 영원히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