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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ul 13. 2019

'엄마의 유산' 책 쓰기

소설을 쓰기로 했다

# 무제


'엄마 나 따라해봐용, 이렇게 하면 되용' 아이가 웃으면서 내 팔벼게를 베고서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제 5살짜리 아이의 입술에서 최진희의 노래며, 주현미의 노래가 줄줄 나온다. 하루의 피곤함과 시대가 주는 무게에 눌려 잠들어 버리기 전에 꿀맛 같은 이 잠깐의 시간이 나에게는 삶의 의미를 더욱 각성시켜주었다. '그래 이 웃음만은 내가 지켜줄 수 있어야지?'라면서 이를 질끈 깨물고 잠이 드는 아이를 바라본다. 어느새 흥얼거기를 멈춘 아이의 얼굴에 발그레 하는 미소가 번지고, 아이는 금방 언제그랬냐는 듯리 잠이 들었다. 쌔근쌔근 잠든 이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웬지 모를 눈문이 난다. 이 어린 것이 무엇을 안다고 무너지는 내 마음을 부여잡고 이렇게 재롱을 피우는지. 그래서 오늘 하루만 더 살아보고자 하는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한 번만 생의 의미를 부여잡고 딱 눈 감고 내일까지만 이 질긴 구렁텅이 인생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가보기로 했다.


# 무제 2


아이가 유치원에서 웅변을 잘하기로 소문이 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학예 발표회에 갔다. "이 열사! 여러분 앞에 당당하게 외칩니다!" 지켜보던 청중등이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로 아이의 기분에 화답하였다. 나한테서 나온 아이가 자신의 음성으로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대견하게도 멋지게 자신의 주장을 해내다니. 매서운 눈빛이 점점 깊어져 가는 아이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내 안에서도 잠들어 있던 어떤 삶의 의지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인생은 참 그렇다. 삶이란게 참 그렇다. 어떤 사람은 좋은 조건을 타고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태어난다. 그리고 평생 그 조건에 짖눌려 살거나, 그 조건 때문에 행복을 누린다. 그런데, 우리에게서 어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진다. 바로 내가 그 아이에게는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되는 것이다. 바로 '엄마'라는 조건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나 혼자의 인생을 살 수 없다. 이 아이가 자라나기까지 나는 이 아이의 조건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어떤 유산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의 머릿속에 최소한 자신이 이 세상의 장벽을 넘어설 수 없다는 조건은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럴려면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돈이 필요하다. 나는 그럼 잠을 좀 더 줄이고, 다른이들에게 무시당하는 수고로움도 조금 더 감당하면서 이 아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최대한 제공해주고 싶다.




어머니가 점점 쇠약해져 가신다. 삶도 많이 빠지고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진다. 기억도 예전과 같지 않게 희미해져 가신다. 어머니가 내 나이적에 나는 응석받이로 어머니 겨드랑이를 놀이터 삼아서 놀았고, 유치원에 가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신기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이런 나의 모습을 대화의 주제로 꺼내 놓을 실때면 항상 즐겁고 행복한 미소를 가득 머금으신다. 그리고 또 못난이, 이 철부지 아들은 이런 어머니께 어떤 선물을 해드릴까 매번 고민이었다. 지나가는 세월을 잡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지금 당장 어머니가 원하시는 손주들을 안겨드릴 수도 없으니, 1달에 한번이라도 여행을 다니는데, 이것도 무엇인가 아쉽다.


어느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인생학교에 들어오기 전에 먼저 어머니학교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달은 때가 말이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로께로 부터 참 많은 것들을 배웠고 그 배움의 실천은 항상 어머니가 먼저 인생의 선배가 되어서 걸어가셨다. 그리고 나는 한참을 곰곰히 생각해야만 그 사랑의 깊이와 배려의 넓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들로서 한가지 선물해드리고 싶은 것이 생겼다. 바로 어머니의 파란만장한, 어쩌면 54년도부터 시작된 우리 역사와 결을 같이하는 우울하고 어두운 인생을 그려내고 그 가운데 내가 어떤 의미로 어머니께 기억되는지를 그려보는 소설을 써서 선물해 드리고 싶은 것이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죄와 벌과 같은 대작은 아닐지라도 어머니께는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기쁘시지 않을까? 그리고 어느순간 그 글은 어머니가 이세상을 떠나시고 나에게 남겨지는 유산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엄마의 유산'으로 남겨진 나의 인생의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에 어머니의 관점에서 어떤 것들을 내게 주고 싶으셨는지를 한번 남겨보고자 한다. 글쓰기를 제대로 공부하거나 구조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만드는 기법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레이먼드챈들러의 말처럼 이렇게 강렬한 인상이 왔을 때 이 영감을 부여잡고 한번 도전해보려고 한다.


구성과 배경 그리고 인물과 사건에 대해서 고민이 더 필요하지만, 이렇게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조금씩 남겨 두려고 한다. 지금도 나의 내면에서 켜켜히 흐르는 어머니의 유산을 나역시도 다시 돌아보면서 '엄마의 유산'의 첫장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어쩌면 나의 어머니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어머니들의 유산이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아들의 마음으로 한글짜씩 적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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