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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정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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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Sep 14. 2019

'할 수 없음의 있음'보다 '할 수 있음의 없음'을.

리더십의 능력과 의도에 관한 작은 고찰

1.


자신의 힘이 부족한 사람들이 지위를 가지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이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오는 것이다. 자신이 권위의 출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권위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말과 법, 지침’을 가지고 와서 ‘누가 이랬는데 너네 이거 안하면 혼난다고 하더라~’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힘이 부족한 부분은 요즘들어서는 보통 ‘정보에서 지식으로 넘어가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잡음’에서 나타나는데, 대부분의 힘이 부족한 사람들은 ‘생각의 힘’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리더십의 핵심 요소 중에서 책임감을 responsibility라고 한다면, 앞의 response는 의도의 문제가 되고 뒤의 ability는 능력의 문제가 된다. 능력이라는 것이 실행능력도 있고 생각의 능력도 있고 관계의 능력들도 있는데, 문제는 이러한 능력이 부족할 경우 ‘의도’자체가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의도가 바뀌면서 부터 이것은 기존의 관성에 빠진 정치가 시작된다.


2.


권력과 권위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권력은 권위가 사라진 곳에서 발생하는데, 권위는 자신이 ‘권력’이라고 설명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능력이 없음을 알고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운 의도’를 만들어 낸다. 작은 차원에서는 거짓말이 진행되지만, 큰 차원으로 갈 수록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범죄들까지 발전하게 된다. 새로운 의도는 이제 타자를 위한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자기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데,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한 노력’이 의도의 핵심이기 때문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누구도 혜택을 입지 않으면서 현상유지의 차원으로만 수렴한다. 문제는 누구도 혜택을 보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그 피해의 범위에는 조직의 문화와 공동체의 분위기도 포함되어 있다.


3.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한 사람이 세상을 망치기는 정말 쉽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선한의도의 축적물을 무너뜨리는 것은 너무나 쉽다. 앞으로 뚫고 가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소중한 것들을 지키는 것들이겠다. 지키는 것이 무너뜨리는 것보다 어렵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리더십’이 빛나기 마련이다. 만드는 리더십보다 유지하는 리더십이 더 어려운 것이다. 여기서 다시 response의 문제, 즉 의도의 문제와 ability의 문제 즉, 능력의 문제가 발생한다. 유지할 수 있으려면 접촉하는 모든 면들의 문제와 상황, 대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부족한 부분을 뚫는 문제라면 가장 약한 부분 한 곳만 알아도 된다. 누구나 진보를 표방하지만, 막상 길을 열고 나서 제대로된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4.


세력勢力은 예로부터 세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번째는 모세勢다. 모세는 자신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힘이다. 생각의 능력, 전략력, 신체의 능력, 카리스적 특징 등 한 사람 안에 모여져 있는 힘을 모세라고 한다. 두번째는 용세用勢이다. 실제로 모여진 힘이 사용되는 상황과 환경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이론과 실재'가 하나로 된 힘이여야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용세는 경험이 축적되어야만 나오는 힘이다. 대부분 모세를 가지고 있지만 용세가 부족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차세借勢이다. 힘을 빌려 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힘들을 다른 이에게서, 조직에게서, 법에게서, 기술에게서 빌려오는 힘이다. 적절한 차세는 위기를 극복하며 새로운 국면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5.


자신이 지켜낼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힘을 빌려 오는데, 이미 빌려오는 사이에 자신의 의도와 빌려오는 사람의 의도가 합쳐지면서 완전히 다른 방향이 만들어진다. 의도의 복잡성의 증가는 이제 누구도 원치 않았고, 누구도 예상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렇게 역사는 합리적으로 이해못하는 변곡점들의 연속이 되어 간다. 누군가 이 수를 읽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전략가인것이고 그 안에 사악한 의도가 섞여 있으면 전체주의자가 되기도 했다가 독재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6.


의도가 선하지 않은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할 수 있음의 없음'의 능력이다. 자신이 굳이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을 하지 못한다. 욕망으로 채워진, 의도로 가득찬 내면 속에서는 날마다 무엇인가를 추구하기 위한 용솟음치는 힘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의도가 자신의 의도인지 착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라면, 생명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힘(스피노자-코나투스)이다. 이것을 통제하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자인식과잉에 빠지게 되면서 자신의 삶만 괴로운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삶도 괴롭게 만든다. 역사는 이러한 의도의 계속된 악순환이었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힘,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힘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겸손, 누군가는 자기통제라고 부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힘이다. 이러한 힘을 가진 사람은 정말로 무서운, 대단한 사람이다.


7.


자신의 힘이 부족해서 다른 사람들의 힘을 빌려오면서 그 의도를 숨기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리고 그 의도를 숨기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할 수 없음의 있음'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을 본다. 눈빛이 흐려지고, 얼굴표정에 감각이 없어지고, 말을 할 때도 항상 어떤 것을 정해놓고 말하는 빈도가 높아진다. 나이를 먹으면서 주변의 사람들 가운데 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때론 가족 때문에, 때론 자신의 성과의지 때문에, 때론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긴 탓에 그렇게 된다. 역사의 큰 강줄기에 자신의 의도를 떠내려보내는 이들에게서 '책임감'을 물으면 무엇하랴? 이제 우리의 싸움은 악한 의도보다는 의도를 숨긴이들이 교묘하게 숨어 있는 역사의 강줄기를 어떻게 틀어서 메마른 땅에 물을 댈 수 있는가?이겠다. 


8.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의도를 파악하는 정도르는 안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 가는 과정(그레샴의 법칙)에 대한 이해 만으로는 안된다. 진보의 방식으로 하나의 약한 지반을 뚫는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유지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삶을 유지하기 위한 모든 부분의 연결이 필요하다. 기나긴 싸움이 될 것이다. 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할 수 있음의 없음'의 능력을 가지는 것과 '할 수 없음의 있음'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 결국 이 지난한 싸움에서 괴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괴물이 될 수록 자신을 비춰줄 거울을 싫어 하는 법이다. 자주자주 거울을 봐야 겠다. 능력의 부족이 의도의 감옥을 만들어내지 않도록, 오늘도 부지런이 모세를 기르면서도 용세를 자주자주 실험하는 가운데 뜻하지 않게 친구들을 만나는 차세의 행운이 함께 하기를 빈다.


참 오랫동안 길게 끌었으나 '능력의 부족은 의도를 변질시킨다'와 '할 수 있음의 없음'을 가지는 능력이 진짜 변화의 길임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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