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쓰여지지 않는 글
악한 의도로 글 쓰지 않기 위해서 잠시 멈춰서기
1.
최근에 기분이 급하게 다운되는 일이 있었다. 부당함에 대한 글을 쓰는데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부당함을 공청회라는 형식으로 드러내고 부당한 일을 하는 사람들, 조직에 대해서 온 천하에 알리려고 하니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부당함을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는 데에는 용기보다는 '적과 동지'를 나누는 작업이 먼저 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2.
신랄한 비판을 하는 글들을 자주 만난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부터 끌어 나오는 분노와 증오로 글을 받아 보고 읽을 사람을 공격하는 글들이다. 이러한 글들의 중심에는 '내가 맞고 당신이 틀렸다'라는 것 이전에 '나와 너는 다르고, 너의 존재는 나의 존재보다 못하다'라는 존재론적 차원의 전제가 깔려 있다. 누군가를 '적'으로 상정해야만 분노는 더 큰 분수가 되어서 여러곳에 확산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과정된 언어, 지나친 표현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한다. 괴물에 대한 비판이 깊어 질 수록 자신도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3.
나는 글을 써야 한다. 부당함에 대해서 증오를 끌어 올리고 다른 사람들이 이 일에 동참하도록 하는 글을 써야 한다. 물론 행동도 해야 한다. 그런데 글이 잘 안 써진다. '사랑으로 하지 않은 모든 것들은 필요가 없다'라는 소신에서 막히기 때문이다. 글의 대상에 대해서 사랑이 없어야만 글을 잘 써진다. 그런데 사랑이 없이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한다. 선한의도를 가진 사람이 실수했을 때 그 실수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왜냐하면 그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 실수 했을 때 그 실수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것이 더 큰 문제의 원인이 되어서 더 나빠지는 상황에 그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 빠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악한 의도, 악함 앞에서 자칫 주의를 결핍하면 나의 의도도 어느새 악해 진다. 그래서 세상은 점점 주의력 결핍으로 악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4.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한다. 죄인을 용서하고 형제와 자매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 많이 용서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더 용서한다고 한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잘못된 점을 말할 때 대게 그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분노의 저변에 용사하지 않음'이 먼저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 방법은 틀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틀렸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고민이 점점 밤의 끝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중이다. 망했다.
5.
사랑이 가득한 마음에서 어떤 이의 악한 의도와 실수를 말하는 글은 과연 어떤 글일까? 순수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글은 어떤 것일까? 이렇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정말로 있을까?이런 생각을 하다가 잠언에서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언 16장 7절)라고 말하는 구절을 본다. 그래 맞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래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6.
아직은 답이 없다. 아직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과 방법으로 해야겠다. 잠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어떤 사람에 대해서 판단하고 비판하던 속도를 줄이고, 가만히 생각의 고요함들을 불러 본다. 나는 잘하고 있나에서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람들과 더불어서 평화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구한다. 나는 정말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을 정지하고 고민하는 사이에 마음 속에 겨자씨가 자라서 여러가지 생각들이 곁들어서 주렁주렁 열리는 것 같다.
7.
다시 글을 써야 겠다. '사랑이 가득한 글을 쓰자'라는 것 이전에 '나의 행위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쁜가?' 그렇다면 이렇게 행위하는 것들이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서 화목하게 하시는'하나님의 은혜를 만나게 될 것이다. 모든 지헤는 하늘로 부터 오니깐, 오늘은 엎드려서 작은 목소리로 읖조리면서 구하여야 겠다. 무엇이 하나님의 방법인지, 어떤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위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