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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Sep 04. 2019

다시 한번, 타인보다 민감한 자아

쫌 쓸데 없는 민감함에 대하여

몇 년전에 하나의 글을 썼다.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으로. 


전체 인구의 20%가 보통 사람보다 민감한sensitive한 사람들이라고 하는 글이었다. 남들보다 민감해서 수련회를 가면 항상 남들보다 늦게 잠들고, 아침에 친구들이 깨기 전에 일어나는 사람 말이다. 아마도 어릴적부터 감각이 발달한 터일 것이다. 감각이 발달하려면 어느정도의 자극과 충동drive가 있어야 하고, 그것들이 빈번해지면 세포들이 기억해서 감지sensing만해도 바로 반응하게 되어 있는 상태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이다.


https://brunch.co.kr/@minnation/868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부조리와 비합리와 비인간적인 것들에 눈감는 경향이 생겨서 나는 슬프다. 20대가 조금 지나가는 시기에는 부조리한 것들과 맞서 싸울 힘이 없어서 '조금만 기다려줘'라고 말했는데, 이제는 '기다리지마! 기다려도 못해'라고 말할 것 같아서 조바심도 나고 우울함도 든다. 그래서 이렇게 글이라도 쓰고 있다. 아직 끝나지는 않았고 준비하고 있는 사이에 여명의 눈동자가 아직은, 아직은, 반짝거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얼른얼른 하염없이 걸어가고 뛰어가야 한다는 강박이 요즘 감싸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다.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의 질서와 정서를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다. 조국 후보자가 '나는 금수저라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흙수저들이 다음에는 은수저가 될 수 있도록 제도와 법을 바꾸겠다'라고 말하는 것에서 나는 인간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지금도 흙수저고 앞으로도 흙수저일 것이라서 조국이 흙수저들을 위해서 제도를 바꾸어 본다면 그 때 정계든 정부든, 학계든 뛰어 들어 볼려고 한다. 


아직도 안락함을 단지 몇 평 남짓한 공간에서 누리면서 '그래도 우리는 누가 나가라는 사람이 없고, 작지만 예전에 살던 곳보다는 낫잖아'라며 안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가끔은 잉여인간이 된 것처럼, 세상을 떠돌아 다닐 때도 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이런 부분은 어떤 수치심이 아니라 구조에 대한 어떤 도전과제 같은 것처럼 느껴진다. 인형뽑기에서 걸려서 옷깃이 들려서 탈출구로 옮겨지는 이라고나 할까? 나는 대학도 나오고 대학원도 나오고 남들이 말하는 철학도 제법 말하는데. 부모님의 경제상황과 건강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지루한 일상이 되돌아 오는 오후 4시의 어스름한 햇살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은 것은 아마도 인생이 즐겁지 않다는 것이겠지?


남들보다, 타인보다 민감한 사람이라서. 오롯이 이웃들의 아픔과 설움이 느껴지는 밤에는 이렇게 잠을 잘 수가 없다. 이 세상을 만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보이는 이들의 싸움에서 너가 쫌 유의미한 기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영혼을 매몰시키지 말고 보이는 것들에서도 싸우라고 말이다. 그래서 슬푸고 힘들다. 나는 잘 못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물론 아무도 안 시켰고, 권력의지의 문제에서도 정치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나는 너무 나약한 존재인 것은 안다.


그런데 삶은 쉽지 않고, 여름밤은 너무 길고, 이 민감함과 취약함은 점점 어떤 용기와 신념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안다.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낀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책임’이라고 느껴진다. 책임은 responsibility인데 response는 의도의 문제이고 ability는 능력의 문제라서. 어릴적에는 의도가 순수해도 능력이 없었는데 이제는 능력을 쌓지 않으면 의도가 불순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민감함을 용기로, 신념으로 바꿀 수 있다면...이러면서 밤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거시경제며, 정책과정이며 여러 책들을 왔다 하느라 ‘모두 잠든 후에’도 잠들지 못한다.


이 어둠이 언제 몰려 갈까? 이 감각이 언제 사라질까? 이 느낌이 언제 좀 완만해질까만은. 아직도 울고 있는 이웃들의 이들과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는 ‘타인보다 민간한 자아’를 달래느라 밤은 점점 길어지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조금씩 여명의 빛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씩 조금씩 동이 터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민감한 자아가 새벽부터 깨어나서 기다리고 있으니깐 말이다.


나 같이, 아니 이보다 더 민감한 사람들과 만나서 한잔 하고 싶은 밤이고나~ 에헤야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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