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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Dec 02. 2019

빛과 어둠이 함께

파타피직스와 그림자

우리 삶은 언제나 흑백논리 같다

두 세계가 존재한다


암흑으로 가득찬

우울한 표정을 한 이들이 사는 세상과


빛으로 가득찬

밝고 희망의 미소를 가지고 사는 이들의 세상.


예전에는 빛들의 세상을 찬양하며

내가 그 세상 속에 있음을 감사했다


실상은 나도 암흑의 세상에

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삶 속에 생기는

욕망들이 하나씩 걷히고 나니


빛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오히려 암흑의 세상에 대한 도피하는 결과라는 것


그러니깐 두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면

한 쪽의 밝음은 다른쪽이 존재해야만 가능하단 걸


아주아주 일찍 경험하고

아주아두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쉽게 더블린 사람들처럼되었다


처음에는 낯설어하다가

의아해했고 조금더 지나서는


이 구조가 태초부터 존재해 온 것처럼

누가 더 빨리 이 현실에 적응하는가가


인생의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여겼고 이 전통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욱 굳건해 졌다


속지 않는 자들은 방황했으며

방황하는 이들에게는 부적응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간 혹 경주가 끝나고 난뒤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의 주제는


자신들에게 내제되어 있지만

자신들의 것이 아닌 특징에 대해서 나누었다


하지만 언제나 시간은 모자랐고

이런 고민들은 허탈한 시간의 중간 쯤으로 여겼다




깨어나고 보니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파타피직스 어디쯤이었다


우리가 이상이라고 부르는 것과

현실이라고 확정지은 어느 지점에


작은 구멍과 같은 여백들의 존재했으며

그 여백을 손을 넣고 힘을 주면


오래된 벽지가 찢껴져 나가듯이

삶을 덮고 있던 위선들이 벗겨져 나갔다


밝은 햇살이 보이고 인공 속에 갖혀 있던

태초의 그 신비가 온 몸을 감싸고 돌아온다


한 발짝 벽을 넘어서 들어가는 순간

대지의 향기와 초원의 온도가


미래와 과거를 잇고 있었고

우리에게 더 나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새들이, 산들이, 바다가

알려주고 계속해서 부르고 있었다


갈라진 것들은 원래부터 하나였다는 것을,

분열되는 것은 분열되기 이전의 상황이 존재했음을,


우리가 무엇인가 두개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들의 원천은 원래는 하나였음을.


우리에게 원래부터 주어진 것들에

귀를 기울이면


세상과 감각은 하나가 되고

그 감각 속에서 위선은 눈 높득 사라지리라




빛이 어둠과 대립되지 않음면

그림자는 빛에 대한 반대급부가 아니라


빛이 너무 밝은 이들에게

따뜻한 쉴 곳을 마련해주는


그라데이션된 쉼터가 될 것이라는 것을

분열과 대립을 넘어선 이들에게만


보이는 무지개의 끝자락

우리의 새로운 시작이리라




*파타피직스_현실과 가상이 중첩하는 물리적인 공간, 인간은 상상의 것을 넘어 가상의 것들을 현실로 가져오는 작업들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이제 가상은 더이상 가상으로 남지 않고 현실 속에 존재하도록 창조되고 제작되어진다. 카카오프렌즈는 이모티콘에서 시작해서 현실 속에서 다양한 제품으로 육화하였다. 이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현실이 아니라 가상이다. 그렇기에 누군가 우리를 통제하려고 한다면, 현실이 아니라 가상부터, 가상이전에 상상력부터 제한하려고 할 것이다. 가상은 상상력이 시스템화 된 것인데, 상상력이라는 코드와 인사이트가 빛나기 전에 상상을 꺼버리는 작업을 해야 사람들은 더 이상 꿈꾸지 않고, 상상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갈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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