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아프시다. 태산같은 어머니신데, 병원에 앉아 있으면서 막연한 두려움이 불어났다. 어릴적부터 죽음하고는 친하게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 속에 가장 큰 빚을 지고 살고 있는 어머니가 어느날 이 세상에 안 계시다는 생각을 하니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바쁜 일상, 사람들은 어떤 목적에 의해서 열심히 뛰어다니고, 나도 그 틈에서 이것저것을 하느라 열심히 뛰어 다닌다. 소중한 것들을 지키려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이고, 이것 아니면 답이 없으니까 하는 것들도 많다. 오히려 시간을 떼우려고 하는 것들도 많이 있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교차적으로 텅 비어 있는, 시간의 끊김이 있는 어머니의 세상을 조용하게 밀어 놓았나보다. 어머니가 아프시다. 나의 마음이 무척이나 다운이 되어 있다.
2.
누군가의 죽음은 그렇게 빨리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함께 학교를 다니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죽음도,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죽음도 기억 속에선 어떤 영화와 같이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그들이 남겨 놓은 기억의 유산때문에 힘든 것보다, 그 유산을 가지고 살아가는 어머니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다. 전라도 해남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일어났던 작은 가족의 이야기. 나는 어머니의 꿈을 먹고 자랐다. 그리고 순진한 바보같이 어머니는 그 꿈의 대리자로 나를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자랄 수록 나를 더 인생의 무대의 가운대로 밀어 놓고선, 자신은 조용히 아무도 조명을 비추지 않는 무대 뒤로 빠졌다. 모두가 알아봐주는 무대의 중앙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나는 기억하고 응시할 수 있는 무대의 뒤에서 그렇게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어른이 되면, 나도 부모가 되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는 것을 직감하면서는, 더더욱 인생의 의미를 내가 계속 쥐고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직 멀었다.
3.
특히 어머니학교에서 많이 배웠다. 백면서생에 할 줄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아버지의 어린시절 불우한 환경을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만큼 그 환경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외면했던 시간들이 너무 많았다. 그에 비하면 자신이 가진 문제와 상황의 감옥에서 계속해서 떨어져 나올려고 하는 어머니의 용기와 외침에서 나는 어떤 아우라를 보는 것 같았다. 물론 어머니께 이런 이야기를 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너무 가깝기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머니 학교에서, 삶에 대한 자신감과 안되는 것이라도 한번은 해보고 내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도전정신과, 우울하고 비통한 자들과 함께 울고 함께 앉아 있을 수 있는 감정의 깊은 내면을 배웠다. 아픈 사람들 병수발에, 마음을 쏟아가면서 같은 길을 걸어 주었던 어머니학교의 실습을 이제는 내가 해야할 때가 되었다. 인생의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는 어머니의 삶 속으로, 나도 한단계 속도를 늦추고 공연장의 중앙 자리는 잠시 비워놓고, 불이 꺼진 조명 뒤 어두운 공간으로 함께 들어가야 겠다.
4.
그런 사람이 있다. 그 시대의 문제를 표본처럼 살아내고 또 그 세대의 감정을 오롯이 품고 있는 사람. 우리 부모님은 1950년이 조금 지나서 태어나서 소위 말하는 대한민국의 개발의 역사를 온 몸으로 맞고 살았다. 하층이라고 표현하자면 가장 아래서 가장 힘든 삶을 살았다. 나는 그 분들 사이에서 온실속의 화초처럼 산 것 같다. 부모님이라는 천막 아래서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었고, 비바람에도 끄덕없이 잠을 잘 수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어머니는 밤을 세워가면서 비바람을 견디었고, 아침부터 태양이 닿지 않는 그림자를 만들기 위해서 그 자리를 꿋꿋하게 바보처럼 지켰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아프시다. 나는 이런 생각까지 오니깐 불안함보다는 아쉬움과 말로 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이 생긴다. 어머니가 아프시고 내가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
5.
사람이다. 나는 사람이다. 생각도 가지고 있고 의지와 열정도 가지고 있지만, 또 쉽게 마음이 상하고 우울함이 찾아오기도 한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누구도 어쩔 수 없다는 비인간적인 사회에서 나는 여전히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내가 그냥 이런 일상을 받아들이면 어머니와 아버지께 변명을 하는 것 같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우리처럼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니깐 좀 더 깊이 있는 변화를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했던 내 대답들에 대해 변명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얼마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이상만 노래 하고 있는가보다. 사람이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세상을 떠나고, 어떤이는 세상을 떠나는 이를 지켜본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돌이켜본다. 다시 살아봐야지, 다시 노력해봐야지, 다시 눈물을 흘리고서라도 마음열어재끼고 무엇인가를 해야지 한다.
6.
매번 결말없는 다짐으로 끝나는 것 같지만, 매번 반복하다보면 언젠가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으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깐. 다행히 어머니의 검사 결과가 1차로 나왔다. 큰 수술은 아니라고 한다. 글을 하나 쓰기 위해서 마음을 도대체 몇 번이가 들이킨 거냐. 글이 아니라 마음을, 인생을, 아픔을 쓰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이킨 거냐.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얼마나 사람으로 살지 못하고 있느냐 말이다.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지보다 어떤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애초에 시작도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이냐 말이다. 어머니의 아픔이 모든 이들의 아픔과 연결되어 다가오는 오늘의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 이런 고민들로 하얗게 날을 새어 버렸다. 이제 다른 학교에 입학할 때가 된 것 같다.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듯이 '변화'라는 말을 떠올리고 되새기고, 다시 돌아보는 것은 결국 이 시대와 세대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겠지. 어머니가 아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