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성이 사라져버린 세상에서는
거리가 없다
그래서 타자와 나를 동일하게 여기고
멀어질수록 느껴지는 아우라가 사라진다
자신을 대하듯
타자도 마음대로 하는 행동은
버릇이 없거나 미성숙한게 아니라
이 시대가 공유하는 정신을 자연스럽게
생활화한 결과이다
부정성에 대한 환대기 얼만큼 쌓여야만
우리는 비로소 나와 그것으러 점쳐지는
이원론적 세상에서
나와 너로 무한 확장되는
다중의 시대로 넘어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부정성을 긍정하기 시작하여야 하리
아룸다움은 거기 있나니
너와 나는 이미 거기서 뛰놀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