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는 바깥 사람, 소외된 사람을 가장 강력하게 옹호한 사람이다. 그 자신이 바깥 사람이었던 누가는, 당대의 기성 종교가 흔히 바깥 사람으로 취급하며 소외시켰던 사람들을 예수께서 어떻게 끌어 안아 안으로 포함시켜 주시는지를 보여준다. 예수께서는 종교가 인간의 모임으로 전략하는 것을 묵인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우리 또한 안에 들어갈 희망 하나 없이 바깥에서 기웃거리며 삶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그러나 누가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제 문이 활짝 열렸고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나시며 안아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가복음 머리말_메시지성경)
구하여라, 그리하면 받을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발견할 것이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눅 11:9
자신만 겉도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오래가게 되면 외로움이 공포로 바뀌게 된다
사람들에 대해서도 혹여나
나를 거절하지 않을까라는 공포와
어떤 조직에 대해서 나를
왕따시키지는 않을까라는 해직의 공포와
가족들 사이에서도
이해받지 못하고 계속 시대에 뒤떨어지는 듯한
소속감의 저하가 주는
공포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듯하다
그러다가 보면 의례히 우리는
두 가지의 선택지만 가진 것처럼 인생을 대한다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 강해지거나
공포를 피해서 도망가거나.
공포를 피해서 도망가는 사람은
대충 겁쟁이 정도로, 혹은 기회주의가 되고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 강해지는 사람은
불굴의 의지를 가진 강력한 신념으로
철근도 씹어먹을 듯한 열정으로
다른 사람까지 갈아마셔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말 그런가? 우리에게
이 두가지 선택지 밖에 없는 걸까?
하나님의 이야기는
예수님에 와서 현실이 되었다
현실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우리의 현실과 조우가 생긴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게 예수님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가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나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 된다
누가복음은 명확하게
시대에, 집단에, 주류에 떨어져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실상 외롭고 소외되고
전혀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는 인생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고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좀 다른 건 그것이 찌질한 인생에
동전하나 건내주는 정도의 자비가 아니는 것이다
가르쳐 지키기 위해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사시면서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모두
끌어 앉으시면서도
우리와 함께 바깥에서 걸으시는 분
그래서 그 바깥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에게 활짝 열려진 이야기를 나누신다
바깥에서 떨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온게 아니라
바깥에서 따스한 손길을 만난 것이고
아마도 계속 바깥에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안에서의 소속감을
확장하는 결과가 나왔으니 말이다
비로소 두려움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추동할 수 있게 된다
두려움에 대한 간과나 대응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받아들임과 누림이겠다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주시고
또 더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이겠다
역설적으로 환경은 잘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바뀌는 것은
우리 안에서의 물음일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
다른이와 연결됨으로써 오는 안정감에서
소속과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옷입은 누구'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걷고 있는
소소한 일상속에서도 거대한 하나님의 나라가
한발짝 한발짝
성큼성큼 다가오는 '누구'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