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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Feb 21. 2020

껌딱지

세상을 바꾸기 위한 기억법

1.

어릴적부터 많은 고민들이 머리에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다. 가난함에 사무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어느날 '왜 실로폰 안 가지고 왔다고 따귀를 맞아야 하지?'라는 질문들이 들었다. 그 때 우리집에 돈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몰랐다. 선생님이 이상하다는 것도 몰랐다. 지금이라면 선생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 때 나에게 세상은 무엇인가 잘못돌아가는 것 같았다. 물질과 사람의 가치가 같은 것처럼 보였고,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내 얼굴이 남아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에 우울한 감정의 그래프가 계속되었던 것 같다. 가끔 가려 놓았는데, 껌딱지가 사라진게 아니라 덮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화들짝 놀란다. 내 머리카락! 짤라야 하나?


2.

자라면서 비슷하게 생긴 껌딱지들이 더덕더덕 불어났다. 중학교 1학년때 영구임대 아파트에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네집 영구임대 아니야? 너 그럼 영구네! 영구!' 놀리던 그 친구를 보고 나는 사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 자아가 형성되는 시점에서 '너도 사람새끼냐?'라는 욕지거리들이 껌딱지로 바뀌어 갔다. 그 때 알았다. '사는 곳이 달라지면 사람의 가치도 달라지는 구나! 그럼 나는 어디에 살아야 하지? 최소한 여기는 아니겠지?'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아도 영구임대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 이 사람들 전부다 사람도 아닌거네? 빨리 여기를 떠야 겠다. 그럼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네!'


3.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름대로 공부를 잘 하게 되었다. 반에서 잘하는 수준에서 학원 한번 다닌적이 없었지만 꽤나 공부를 잘하는 축에 속했다. 그런데 모의고사는 항상 뒷자리에서 놀았다. 친구들은 놀려댔다. 학원을 안다녀서 그런다면서 '너는 내신형 인간이야'라고. 그래서 나도 학원을 다니고 싶었다. 물론 학원을 다닐 형편이 아니었기에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학원을 못 다니면 모의고사를 못 보는 구나!'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땜빵이 난 것처럼 예전에 묻었던 껌딱지를 벗겨내고 뜯어내고 하다보니 난리법석이었다. '이젠 또 학원이냐! 언제는 사는 곳이더니, 아니 실로폰이더니 이건 끝이 없네'


4.

'너 연봉이 얼마야?' 30이 넘으니깐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았다. 그리고 주볏거리면서 이야기를 하면 '야 그거가지고 어떻게 먹고 사냐?'라는 핀잔과 비슷한 비아냥을 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일을 하는가와는 상관없이 무엇인가 뒤쳐진 인간, 앞날이 잘 보이지 않은 부족한 인간취급을 했다.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한 삶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사회로부터 주입받았다. 이것을 거부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의 머리는 아직도 껌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 '내 인생은 망한 건가? 그럴꺼면 머리를 밀어버릴까보다. 껌딱지 따 떼어내게'


5.

시간이 많이 지나고 사람들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과거로부터 계속해서 남아 있는 껌딱지의 원인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원래 세상이 이렇게 구성된 것인가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살아갈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한 것 밖에는 없을 텐데 정말 그게 맞는지 궁금해졌다. '저 껌딱지들은 도대체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 많은 것들을 덕지덕지 붙어 놓고 그냥 사는 걸까?' 애초부터 다른 길을 걸어야 했다. 껌딱지의 행방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고스란히 세상에 나가는 시간을 늦추게 만들었다. 그 어릴적 상처받던 아이에서 세상에 어떤 이름을 내 놓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 걸렸다. 




6. 

실로폰 안 가지고 왔다고 따귀맞는 일이 없기 위해서는 교육 자체가 무상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어야 했다. 교육의 목표가 좋은 대학과 좋은 일자리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드러내는 최고의 과정이라면 '한 명의 낙오자도 없어야 한다'라는 신념이 필요하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으면서, 배제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꿈과 미래를 펼쳐 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껌딱지를 떼어내는 방법 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방통대 교육학과에 편입을 했다. 작은 도전을 실천하느라 매일 저녁 방통대 수업을 들으면서 껌딱지에 대해서 분석하는 중이다. 사교육에 대해서 걱정없으면서도 자신이 가진 것 때문에 배제받지 않은 세상을 만들리라!!


7. 

집걱정이 없어야 했다. 결혼을 하려면 일단 최소 1억에서 2억은 전세자금 대출이든 머든 돈을 빌려야 한다. 결혼하는 동시에 빛쟁이가 된 상태로 시작하니 이 사회의 구조에 갖혀 버릴 수 밖에 없다. 꿈이고 이상이고 집한채 쉴만한 곳 마련하느라 30의 인상을 다 날려 먹어야 한다. 그럼 이런 세상을 그대로 나눌 것인가? 껌딱지가 발에도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 없는 구조 말이다. 그럼 무상주택이 필요하다. 영구 임대이기는 한데 정말 살기 좋고,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차별받지 않고 늘릴 수 있도록 말이다. 신혼부부만이 아니라 누구나 즐겁게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처음의 토대는 바로 무상으로 제공되는 집이었다. 교육비와 주거비 걱정말 없어도 결혼률은 즐가할 것이고 출산률도 증가할 것이다. 그럼 왜 안하는 거지? 그럼 싸워야 겠다!!!


8.

학원을 가지 않아도 괜찮은 나라. 사교육은 정말로 특수하게 필요한 것이 아니면 별로 관심이 없는 나라가 되는 것은 힘든 일일까?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앞으로의 일들을 즐겁게 고민할 수는 없을까? 누군가는 내일 아침이 즐겁고 누군가는 내일 아침이 두려운데, 즐거움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 수는 없을까? 두려움으로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친구들을 잡아줄수는 없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교육부 장관이라도 되어야 할까? 대통령이라도 되어야 할까? 아니면 선생님이 되어야 하나? 어찌되었든 이건 두고만 볼 수는 없다. 바꾸어야 한다. 어떻게든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아주 짧은 시간에 아주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메타인지학습법과 작업기억을 늘리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누구라도 쉽게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9.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는 없을까? 정말로 내일 퇴사를 해도 또 새로운 직업을 찾는 즐거움으로 사직서를 제출할 수는 없을까? 그래서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직장이 내가 발견한 최고의 직장이면 얼마나 좋을까? 월급으로 깍아내리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으로, 자신을 실현하는 것으로 직업을 나눌 수는 없을까? 그러기 위해서 직업훈련체계를 바꾸어야 한다. 실업급여와 함께 '사디' 수준의 디자인학교가 무상으로 제공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한다. 그럴려면 세금이 많이 필요하고, 그럴려면 경제성장을 해야하고, 그럴려면 우리 모두가 합의하면서 가는 새로운 민주적 사회경제 질서가 필요하다. 다시금, 사회적 경제 스터디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10. 

꿈만 꾸지 않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나는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일단 내가 경험해본 일상의 아픔만큼 더 성장해서 다른 방식으로 카운터를 날려야 하다. 최소 15년에서 30년의 기획이다. 지나가면서 만나야 하는 친구들이 수없이 많다. 함께 나눌 비전도 너문나 많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과 청년이 부강한 나라. 자신이 꾼 꿈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내일을 두근거림으로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는 지금 참고 버티면서 이 길을 묵묵히 가야 한다. 자랄 적의 기억 속에서 편린들이 여기저리 찔러 놓은 상처 투성이를 끌어 앉고 걸어가야 한다. 아직은 기대와 소망이지만 언젠가는 변화와 대안이 되어야 한다!! 



껌딱지를 자체를 만들지 않는 세상을 위해서
나는 오늘도 세상에 한 발짝 내딛어야 한다.



이태원 클라쓰_그 때 그 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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