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쓰여진 시
3.1절을 맞이하여_윤동주 시인께
쉽게 씌어진 시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쓰여진 시_윤동주
쉽게 쓰여진 시는
역사의 무게가 너무 깊어서 일지도 모른다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영혼까지 짓누르기 시작하면
인간은 비명과도 가까운 시를 토해내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서
미래는 없는가?
역사를 기억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밝은가?
예전의 선조들이 남겨 놓았던 유산들이
종이에 써 있는 숫자에 날아가는 요즈음
역사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서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을 느끼면서
하루를 흘려 보낸다
부끄러운 현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미래가 쳐들오지 못하게 하고
수치스러운 오늘이 되지 않기 위해서
과거가 덮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이미 새벽이 가고 아침이 밝았으니
이불속에서 꿈틀거리기보다는
밖으로 나아가서 시인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미래를 현재로 가져오는 일을 시작하길
영혼의 무게가 가벼워진 요즘
정신의 깊이가 깊어가는 사이에
뒤를 돌아보고서는 다시금
앞으로 돌아서는 순간.
눈물을 닦고 손을 잡는다
함께 해보자!!
언젠가 귓가에 들리겠지
"이야~기분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