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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r 15. 2020

스탠리 하우어워스를 읽다_교회됨

5장_교회, 성품의 공동체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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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란 무엇인가? 존재론적 교회와 행위론적 교회 사이에서 현대를 사는 우리는 '행위론적 교회'를 '존재론적 교회'에 덮어씌우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까지 스탠리하우어워스는 덕윤리를 기반으로 해서 공동체가 자신의 성품을 개발하는 원리는 성경의 이야기라고 본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로 부터 형성된 정체성이 교회의 교회됨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이다. 오늘은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신학적으로는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5장을 중심으로 알아볼 것이다.


https://brunch.co.kr/@minnation/1710


교회론 목차


part 1 복음을 재발견하라


1 내러티브에 주목하라

2 예수 내러티브가 사회윤리이다

3 성경의 내러티브 윤리를 읽어내라

4 교회로 교회되게 하라


part 2 복음을 성품화하라


5 교회, 성품의 공동체가 되라

6 덕의 윤리를 회복하라

7 예수 내러티브로 성품을 형성하라


part 3 복음의 공동체되라


8 가정에서 도덕적 가치가 있다

9 가정의 도덕적 가치가 회복하라

10 성의 공동체적 가치에 유의하라

11 낙태, 종교적 이슈이어야 한다

12 낙태, 공동체적 관심사이어야 한다




1. 교회와 세계, 역사 정치 그리고 덕


5장 교회, 성품의 공동체가 되라

Chapter 5. The Church in a Divided World: The Interpretative Power of the Christian Story


기독교 윤리가 신학에서 중심적인 차지한 때는
개신교 자유주의영향이 크다


종교개혁이전까지 기독교에서는 기독교 윤리보다는 '조직신학'이 중심이 되었다. 사실, 성경신학보다도 조식신학이 더 발전하는 경향이 있었고 토마스아퀴나스는 대표적이었다. 조직신학적 안경을 가지고 신학을 이해했던 사람들과 성경자체를 비평하면서 신학을 발전시킨 사람들의 '교회'에 대한 이해는 많이 다르다. 성경을 본문으로 해석하는 '성서신학'은 근대 이후부터 드러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_칸트


사실 근대 이후에 기독교윤리가 태동하는 것은 서구에서는 '칸트'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의 철학전통은 근본적으로 헤브라이즘에서 파생된 부분과 헬레니즘에서 연원된 부분이 섞이는데, 칸트에 와서는 분석철학과 관념철학을 결합하는 작업이 이루인다. '시


칸트가 볼 때 인간의 지성은 한계가 있다. 독일, 네덜란드 등의 관념론자들은 인간의 지성을 너무 낙관적으로 파악했다. 반면, 영국의 경험론자들은 인간의 지식은 자신이 경험한 한에서만 파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인식능력에 대한 이해와 한계, 가능성에 대한 차이가 철학 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형태에서 변화를 만들어내었다. 데이비드 흄은 '지각된 것만이 존재한다'라고 보았던 반면, 독일의 관념론자들은 '태어나면서 이미 경험이전에 지식이 내재되어 있다'라고 보았다. 칸트는 이 두가지를 종합해서 '인간의 모든 지식은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감성능력'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물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 즉 '현상계'에서 보여지는 것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는 어떠한가? 종교란 현상계 이상을 넘어서 보는 것이다. 기독교는 하나님, 성령, 천사와 같은 현상계, 경험인식세계 바깥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칸트의 견해로 보면 '신에 존재에 대해서 알수는 있지만 우리가 인식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그럼 이렇게 되면 신이 인식대상이 될 수 없으므로 일상, 현상계에서는 신의 윤리가, 종교윤리가 나타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깐 칸트에게서는 신은 존재하지만 현상계에서는 인식될 수 없기에 필요한 순간에 '요청'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신앙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요구에 들어갈 수 없음으로, 다시 말하면 신이 경험세계 바깥에 있음으로 신에게 직접적으로 '요청'할 수는 없다. 순수이성으로는 도달할 수 없지만, 실천이성으로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순수하게 하나님을 인식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에게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천은 결국 윤리이고 이러한 윤리가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하는 '도덕적 종교로서의 교회'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교회란 그래서 도덕적인 선을 실천하는 공동체라고 보았다. 인간은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인이 된다는 '이신칭의'에 대해서도 칸트는 비판적이었다. 도덕적인 윤리가 증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롭게 된다는 개념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칸트는 계몽주의자였다. 미신적이고 신화적인 신앙에서 사람들을 깨워야 했기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율성과 도덕율을 부활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칸트의 도덕철학은 알브레이트 리츨이나 도덕철학을 근본으로 하는 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칸트 이후에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이해는 관념적으로 바뀌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은 현상안에서 활동에서 보여지기 때문에 '윤리'적인 종교, 선함으로 증명하는 교회가 된 것이다.




하우어워스는 단지 기독교인들의 도덕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신앙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19세기 이후에 근대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신앙의 확신보다는 현실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신앙을 입증해 내려고 했었다는 것이다. 신학적인 낙관론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신앙의 확신'에서 나오는 덕윤리와 선함의 근원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그 근본에서 '신앙의 확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러티브와 신앙의확신


신앙의 확신과 사회변화의 연결과정을 '내러티브'로 이야기를 한다. 구약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이야기와 신약에서 일어나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하나가 되는 내러티브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만들어진다. 이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와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지는 덕윤리가 바로 '교회됨'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어로는 '교회됨'이지만 영어로는  'Community of Character'이다. 성품과 성격에 관해서 우리는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품이 형성되는 것은 '이야기'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윤리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반대로 보고 있지는 않고 연결지점을 찾으려고 한다.) 정체성에서 윤리론으로 넘어가는 그 사이에서 스탠리하우어워스는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은 목적인을 중심으로 목적이 있기 때문에 윤리가 발생한다는 것이고, 칸트의 의무론은 현실에 대한 요구가 윤리를 만들어낸다고 보게 된다. 따라서 스탠리하우어워스는 목적론적 입장이 더욱 강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


스탠리하우어워스는 공동체주의의 관점에서 교회됨을 규정하고 그에 따른 덕윤리가 교회에서 제대로 자리잡을 때 사회 속에서 공공선의 '존재론'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동체주의자들은 당연히 '이야기'를 중심으로 존재론부터 인식론과 윤리론을 구성해가지만 반대로 자유주의의 전통에서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원래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을 통해서 개인과 사회가 구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이 교회 안에서도 형성되었다는 것이고, 각각 다른 출처에서 교회의 '존재'를 규정하기 때문에 다른 형식의 '행위'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론에서 윤리론이 달라지는 원인이 된다.


공동체주의에서는 '공공선'은 공동체 구성원들에 의해서 형성되고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것을 전통으로 만들기 위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공동체주의자들에게 '교육'은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면서 공공선을 만들어내는 장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인간 스스로 이미 태어날 때부터 존재론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성이 있음으로 오히려 이것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걷어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와 공동체


교회는 전통을 통해서 유지된다. 교회의 전통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거 계속해서 보여지는 성품으로 이야기가 된다. 인간의 삶은 계속해서 현상속에서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공동체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모든 인간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를 계속 끌어와서 해석하고 기억하고 추억하는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이유가 된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모두에게 적용가능한가? 하우어워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십계명은 오로지 200만명의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의 말씀은 '내러티브'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 공동체 속에서 구현된다는 것이다. '유니버설리즘'처럼 모든 곳에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덕윤리는 동일한 내러티브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매킨타이어의 윤리를 가지고 와서 공동체 안에서 공유된 이야기에서 만들어지는 덕윤리가 맞다는 것이다. '아 프리오리 a priori'에 대해서 스탠리 하우어워스는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전해지는 내러티브에서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인간의 '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세상과 교회


세상과 교회는 다르다는 것이 하우워어스의 전제이다. 국가는 국가이고 교회는 교회이다. 이 내용은 하워드 요더의 사상에서 많이 영향을 받았다. 세상과 교회는 다르다. 같다고 생각하면 발생하는 일들은 윤리의 적용대상과 깊이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의 운영 방식도 다르고, 공동체에서 주요한 가치가 되는 덕윤리도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상과 교회는 다른데 그렇다고 교회론의 입장에서 '대항론'은 아니다. 또한 능동적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대안론'도 아니다. 오히려 교회됨은 '대조론'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교회가 자신들의 내러티브의 근원에서부터 존재를 만들어갈 때 그것 자체로서 세상 속에서 다른 버전의 인간과 공동체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2. 민네이션, 질문


1. 칸트의 도덕철학은 다소 비판적으로 이해가 되는데, 새관점(제임스 던이나 톰라이트)에서 보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인의 윤리'는 이러한 칸트의 관점을 어느정도 적용했다고 할 수 있는가?


새관점은 공공신학적인 부분이 더 클 것이다. 칸트의 관점보다는 오히려 새관점은 성품윤리쪽에 더 가까울 것이고, 현세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에 더 방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2.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온다'라는 전제로 개발학에서는 공동체가 윤리적으로, 개발학적으로 조금 더 나아지는 것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으로 보는데, 오늘 스텐리하우어워스의 관점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교회와 세속적인 세상을 구분하기는 했지만 그것에 대해서 대안이나 대항론이 아니라 협력자체는 존중하되 교회가 자신들의 내러티브를 잊어버리고 끌려다니는 모습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우리됨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성경 안에서의 내러티브인 것이다.


3. 교리는 그 출처가 성경의 내러티브인가? 아니면 교회사적 전통의 내러티브인가? 물론 교단마다 다르겠지만 하우어워스가 '이야기'에서 어떻게 이 둘이 구조를 이루거나 배치되거나 하는지가 고민이 된다.


성경신학적 전통과 교회사의 전통은 당연히 다르다. 그러나 주류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교회사의 큰 흐름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재의 내러티브의 요소가 된다. 개별적인 교회사의 내러티브는 해석이 필요하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거나 비판해야 하는 부분들은 많다. 그러나 역사적인 맥락에서 교회사의 큰 전통들은 지금까지 우리의 사회와 교회를 유지해 온 것들이다. 해석은 날마다 새롭게 해야 하지만 비중은 역사안에서 인정받아 온 내러티브를 더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습관적으로, 아비투스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4. 하우워어스에게서 '성령론'은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가? 왜냐하면 교리와 전통, 성경의 내러티브에서 성령의 역할은 계속해서 우리는 새롭게 하고 변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실제적인 힘이라고 생각하는데, 공동체의 윤리를 지켜내는, 만들어내는 '성품'에서 성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5. 주디스버틀러의 '수행성performaty'의 개념에서 볼 때 주체는 만들어진다고 보는데, '내러티브'를 따르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주체'이기 때문에 내러티브를 따르는 것인가?



6. 내러티브와 진리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진리는 모든 부분에서도 진리이지 않은가? 그런데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이야기하는 '공동체 내에서, 공유된 내러티브'라는 것은 '진리'의 입장에서 오히려 공공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참고 1. 매킨타이어의 이야기적 자아


매킨타이어는 덕 이후에서 자신의 논의를 폭넓게 전개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목적론적 개념10)을 제시하는 매킨타이어는 도덕적 행위는 의무론처럼 규칙과 원칙에 대한 양심적 고수가 아 니라 선 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덕의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매킨타이어는 롤즈와 노직의 원칙 중심적이고 의무론적인 정의관은 우리에게 아 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독립적 주체적 자아와 대조적으로 설화적 자아 , “ (narrative self)”를 제시 한다 왜냐하면 그는 현대 사회 도덕성의 위기 원인을 자유주의자들의 독립 . 적이고 추상적인 자아관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설화적 자아란 맥킨타이어가 인간이 설화나 신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규 정되고 성장하는 사회 역사적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그는 자아의 사회적 연관과 역사적 규정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누군가의 . “ 아들이고 딸이며 다른 어떤 사람의 사촌이고 아저씨이다 나는 이 도시나 저 도시의 시민이고 이 조합이나 저 조합 혹은 어떤 직업의 구성원이다 나는 이 부족이나 저 종족 민족에 속한다 따라서 나에게 선 인 것은 이 역할들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선이다 이처럼 나는 과거의 나의 가족 나의 도시 나의 종족 나의 민족 많은 부채 유산 정당한 의무들과 기대들로부터 물려받았다 이것들이 주어진 나의 삶과 나의 도덕적인 출발점을 구성한 . 다 설화적 자아는 목적론적 인간관의 전형으로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 .” 는 사회적 역할과 지위 속에서 최선을 다해 공동선을 실현해야 함을 강조하 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롤즈와 노직의 정의관을 논하면서 둘 사이의 의견차이가 해결 불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자유주의에 대한 파산선고를 내리기도 한다 또한 매 . 킨타이어는 롤즈의 정의관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 중요한 결함을 지적한다. 그것은 롤즈의 정의관이 응분 의 개념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매킨타이어에 의하면 응분은 인간의 궁극적 삶의 목적에 따른 탁월성 개념 과 관련되는 것으로 사회적 관행에 내재하는 고유한 방식을 가지고 있다 즉. 사회적 관행에 따른 응분이란 개인들을 탁월성과 성취기준에 따라 응분의 보상하는 것이며 이렇게 함으로써 정의가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 . 롤즈가 제시하는 정의의 원칙은 사회적 관행과 같은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초월한 개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정의관으로 개인들의 특수한 성취나 업적과 같은 것들을 고려할 수 없다 따라서 매킨타이어의 주장에 의하면 롤즈의 중립적 정의관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참고 2. 알브레이트 리츨



현대신학에서의 리츨(Albrecht Ritschl))의  위치를 평해서  최종의 교부라고 한  하르낙의 말은 타당한  표현이다. 하르낙이 가장 존경했던  신학자가 리츨이었으며, 그리고 엄밀히 이야기해서 리츨학파라는  말을 쓴다면 하르낙도 그 학파의 한 사람이다. 쉴라이에르마허의  신학이 낭만주의와 합리주의에 대한 응답이었고 스트라우스로 대표되는 성서비평학이  그 시대의 새로운  학문과 새로운  학문 방법에  적응해  보려는 시도였다면,  리츨은 I.Kant의 철학과  씨름한 대표적인 신학자였다고  볼 수 있다.  리츨은 1822년에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뛰어난  설교가요 루터파 교회의 총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유능한  감독이었다.

리츨은 이러한 아버지의 영향 아래  Steffin에서 그의 유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1839년에는 본격적인 신학수업을 위해서 본  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적응하지 못하고 곧  할레대학으로 옮기게 되는데 거기서  다시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하이델베르크에서 다시 튀빙겐 대학으로  옮겨 거기서 정착한다. 특히  튀빙겐에서는 헤겔학파의 강의를 통하여  일시적으로나마 만족을 얻는다. 그는 헤겔학파 가운데  F.C.Baur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Baur의 급진적인 성서비평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1846년에 Baur의 지도로 쓴 박사학위  논문인 "마르키온의 복음과 정경 누가복음"이라는 글에서  그는 Baur의 입장을 적극  수용하여 마르키온의 외전적인 복음이  최초의 복음서인 누가복음의 기초  자료가 되었다는 것을 열렬히  주장하였다. 그러나 1851년 본 대학에서  사강사로 일하던 시절에 발표된 "공관복음서 비평"이라는  논문에서는 초기에 취했던 누가복음서에 대한 입장을 수정하여  마가복음이 먼저 기록되었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Baur의 이론을 반대하고  나선다. 이어 1856년에 발표된 논문 "고대  카톨릭 교회"라는 저작 제 2판에서는  Baur와의 결별이 더욱 분명해진다. 즉  초대교회 안에 바울과 다른 사도들  간의 날카로운 신학적 대립과 분열이 있었다는 Baur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튀빙겐학파의 가설을 전반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던 것이다. 사도들과  바울 사이에는 각각  그리스도교 사상을 표현하는  그들 나름대로의 개성적인  차이가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구약과 대조하여 볼 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체결된 계약이  새것이라는 것과 그 안에 포함된  종교적, 도덕적 생활이  새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 합치를 보고 있다.  그는 본 대학에서 처음에는  신약성서를 강의했고, 후에는 교리사를 강의하였다. 그리고  1852년부터는 교외학을 강의했는데 사강사 생활  14년만인 1889년에 드디어 교수가 된다.  그러나 1884년에는 더 많은  학문의 자유를 위해서 본 대학을 떠나  괴팅겐으로 간다. 거기서 그는 슈트라우스부르크 대학과  베를린 대학에서도 그는 신약성서에 관심하면서 조직신학을 강의하였다.  리츨의 평생의 관심은 의인론과 화해론  이었다. 그는 거기에서 그리스도교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보았고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모두가 그것의 전제이거나 결과라고 이해하였다. 그래서  1870년부터 그의 대표작이라고 알려진 "의인과  화해의 그리스도교 교리"라는 전 3권의  저작이 출판된다. 거기에서 그는  그의 주된 관심인 의인론과 화해론을  각각 역사적, 성서적, 조직신학적인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다. 이 저작은 그의 생전에 제 3판까지 출판되었다. 1875년에는 "그리스도교  강의"라는 책을 출판하여  조직신학 교과서로 사용하려 했으나, 내용이 너무 어려워  결국 교과서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1881년에  출판된 "신학과 형이상학", 1880-86년에 걸쳐 전 3권으로 출판된 "경건주의  역사"라는 책이 있다. 경건주의는 그가  가장 싫어하는 신앙운동이었다. 리츨은  경건주의를 평하여 복음적인 프로테스탄트  안에서 카톨릭적인 생활이념을  가지고 일어난  거짓된 부흥운동이라고 못박았다. 이미 그의  주변에는 본 대학에서 일할 때부터 추종자들이 많았다. 그런데  리츨학파의 구성원들은 그의 강의를 직접 들은  사람들이기 보다는 대개 그의 저서를 통해서  그의사상을 접한 사람들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을 꼽는다면 헤르만(W.Hermann)과 하르낙(A.von  Harnack)이 될 것이다.  리츨은 정력적인 성격에 조예가  깊고 냉정하고  예리한 판단력에 토론하기를  좋아했으며, 또 정직하고 견실했는데 감정적인 것은  매우 싫어했다. 리츨은 그 재질에 있어서는 쉴라이에르마허에  미치지 못하나 그의 깊이  있는 저작들이 끼친 영향은  19세기 신학자 중 쉴라이에르마허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의  저작들은 문체가 딱딱하고 무거워서  인기를 얻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나 애써 읽어 가면  갈수록 그의 심오한 사상에 점점 매료되어 간다는 게 독자들의 일반적인 평이다.


리츨의 사상


리츨의 신학은 두 가지 점에서 칸트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1) 형이상학이나 이론적 사변이 하나님에  대한 타당한 지식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거부했다는 점에서 그렇고,
 (2) 종교적 사상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이고도 도덕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특히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칸트는  인간 사유의 본질을 다루면서 인간은  대상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결론을 지었다.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다만 현상일  뿐이다. 현상이란 대상이  인간의 감관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 나타내는 것,  즉 대상의 외관이다. 따라서 칸트는  하나님 자체에 대한 인식, 즉 하나님에 대한 형이상학적 인식  내지 철학적 인식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칸트의 이러한 인간  사유의 본질에 대한 이해사상은 서구의  관념론적 신학에 그대로  적용이 됐다. 심지어는  변증법적 신학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칸트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형이상학적 인식의 형태  외에도 또 다른 하나의 인식의  형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도덕적  의식의 영역이다. 즉 실천이성의  영역이다. 인간은 누구나 그를  구속하는 도덕적 외무들을 외식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  도덕적 의무들은 무엇  무엇은 해야한다와 무엇 무엇은  해서 안된다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칸트는  인간의 이러한 도덕적 의식을  분석해 볼 때,  인간에 대한 도덕적 정언 명령이  존재하는 한, 그것은 곧 하나님의  존재성을 뜻한다는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인간의 도덕적인 의식을 설명해 주는 필연적인  의식을 설명할 길이 없다. 따라서  인간을 구속하는 도덕적 법칙들을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명령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바로 종교이다. 이로써 칸트에게 있어서의  종교는 인간의 실천이성에 자리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리츨은 인간 사유의  본질에 관한 이와 같은 칸트에 분석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것을  토대로 기독교의 의미를 해석했다.  리츨의 기본적인 대전제는 그리스도교는 이론적인 지식과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도덕적 의식을 통해서 이해되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결코  합리적으로는 인식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형이상학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도덕적이고도 윤리적인 성격을 띤다.  그리스도교의 일차적인 관심은 지성적이고도 철학적인  것에 있지 않고 구체적이고도 실천적인 것에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내용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리츨은 이와 같이 실천성을 근본 개념으로  하여 종교를 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도 실천성이라는 측면에서  본 인간의 가치  판단에 기초한 것으로  보았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주변의 다른 사물들과  같이 자연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자연에 비해  고등한 가치와 독립성을 갖는다고  이해한다는 점에서 다른 것들과 질적으로 구별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인간의 이러한 자의식에는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능케  하고 또 인간으로 하여 그 가치를 실천하도록 도와주는 한 인격에 대한 인식이 내재한다.  그러므로하나님은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에 전제가 된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가치 판단에서 오는  것이다. 왜냐하면 칸트의 철학이나 리츨의 이해 속에서는  신이 요청된 신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가치 판단에서 오는  것이다. 종교의 본질을 이렇게 분석하게 되면 종교인에게서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헌신하게 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가치 체계이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 아니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가치를 실현하려는 장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는 것을  자연을 통해서라기 보다는  역사를 통해서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셨고 인간에게  자신이 가치 있음을 깨닫게  하셨고 또 참다운 가치들에 대한 인식  능력을 인간 안에 창조하셨고 나아가서는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려는 욕망을 인간 안에 심어  놓으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생애는 하나님이 역사 안에서  활동하신 최상의 역사적 실례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사랑으로 계시하셨고 동시에 그  사랑이라는 가치를 인간의 최상의 이상으로 제시하셨다.  인간들은 예수의 삶에서 최상의 이상들과 그 이상들을 완전히 실현하는데  전적으로 헌신한 한 모범을 얻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에게서 인간이 자기 자신을 내맡길  수 있는 최상의 이상적인 가치가  사랑이라는 사실을 계시하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도덕적 인격이 인간에게  미친 영향  때문인 것이다. 예수가 신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도 그가 하나님과 같이 인간에게 최상의  도덕적 가치들과 이상들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리츨의 말에 의하면 예수의 신성은 인간이  구원 얻기에 충분할 만큼 이룩해 놓은  그의 인격적 업적에 대한 인간의 가치  평가의 결과이다. 따라서 예수에 대한 인간의 신앙은 그  근거에 있어서 하나의 이간의 가치 판단이다.  이러한 가치 판단은 곧 자기가 헌신할  수 있는 이상이 예수에게서 가장  훌륭하게 실증되었다고 믿는 인간의  확신을 뜻한다. 그런데 인간에게  제공한 예수의 이위대한 이상은  마침내 인간에게서 화해와 의인을 이룩하였다. 본래  인간이란 개개인으로 있게 되면 자기애와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을  자신의 제일의 가치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예수와 직면하게 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인간의 최고의 가치로 제시된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그의 가치관에 헌신할 때,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이기심으로 부터 자유롭게 되는  능력을 체험하게 된다. 또 자애심으로  인해 참다운 자아로부터 소외된  것에서도 자유할 수 있는능력이  주어진다. 인간은 예수를 믿음으로써 비로소 사랑을 인간의  최상의 가치로 삼을 수 있게 되고 그와 함께 사랑을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리츨의 구원관에는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주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강조점이 없고, 오히려 예수가  인간에게 최고의 아름다운 가치관을 회복시켜 주었다는 것이  그가 구주가 될 수 있었던 자격  요건으로 평가된다. 구원받은 자들이  함께 사랑을 추구해 나가는 곳인  교회는 예수에게 기원을 둔다. 예수는 가치를  창조하는 공동체를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교회는 인간의 열망과  노력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바로 교회에서  예수의 가치 체계가 보존되고  육성되도 선포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교회에서 비로소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계시하는 그  가치, 혹은 그 사랑을 발견하고 따를  수 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그러나  개개인을 교회로 불러들여  구원하는 것만이 역사를  위한 하나님 나라의 수립에  있다. 그리고 구원과 교회는 그  목적에 봉사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종국적인 목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리츨의 말을 빌리면, 사랑으로  고무된 행동을 통해 이룩된  인류 공동체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통해  이룩하려는 하나님의 세부적  의도는  전인류를 포괄하는 보편적인 도덕적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데 있다. 따라서 구원받은 자들과  교회의 사명은 인류에게 봉사하는  일에 자신을 아낌없이 헌신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의 동기에서  비롯된 그러한 삶이 마침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삶의 방식을  점차적으로 받아들이게 할 것이고,  그리하여 결국은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의 나라를 동트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리츨이  이해한 그리스도교란 도덕적이고도 윤리적인  가치 판단과 사회 속에서의  그것의 완성을 향한 헌신임이 분명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  판단들이 주관주의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일체의 가치 판단들이  개인의 가치관에 근거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창시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역사적인 연구가 사실로 확립해 놓은 것에 근거해야  한다. 바로 이점 때문에 리츨도 쉴라이에르마허처럼 성서비평을  크게 환영한다. 성서비평을 곧  예수의 생애와 관련된  사실들에 대한 진위성 여부를  가리려는 시도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로지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누구였으며 무엇을  말했고 어떻게 행동하였느냐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그러한 비판적  연구는 예수의 생에 있었던 사실들을 더욱완전하게 밝혀 주는데  공헌할 것이고 교회는 그러한 사실들의  토대 위에서 비로소  최고의 가치를 산출할 것이며  또 그 가치를 보존하는 공동체로서 존속해 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츨은 성서가 그리스도의 생애와 활동에 대해  신뢰할 만한 증언을 제공해 주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예수의 역사적  존재에 대한 사실들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신앙은 하나님이 예수를 믿는 자의  삶에 인격적으로 현존함에 따라  예수로부터 온다고 생각했다. 일찌기예수가 추구했던 가치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헌신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능력은 현존하는 예수로 부터 생겨난다.

또한  그로부터 인간은 자신의 이기적 주장에 자유롭게 되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추구하려는데 헌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난다.  우리는 리츨이 가치 판단을  내리기 전에 먼저 성서의 비평적 작업을  통해 객관적 사실들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종교와 과학, 또는  이 양자의 영역과 능력을 구분하고 있음을 지나쳐서는 안된다. 그는 종교와  과학은 인간의 삶에  요긴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학은 실제에 대한 사실들을 탐구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사실들에 대한 인간적 의미에 관해서는  판단을 내릴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어떤 사실들에 대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은 종교에 있고 그것이 바로 종교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종교가 이러한 자기의 고유한 영역의 한계를 모르고 남의  영역을 함부로 넘나들게 될 때 거기에는 언제나 혼란과 갈등이  야기된다.

예컨데 과학은 진화론에 대해 주의 깊은  연구를 계속해서 인간이 하등동물로부터  진화한 것과 관련된 사실들을 최대한  밝혀 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학이 그러한 사실들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려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기의  분수를 넘어서는 일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종교도 사실에 관한 한  과학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예컨데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한 것은  상당히 오랜 세월 전이었다는 것이  과학이 밝혀 낸 객관적인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이에 반대해서  4천년 전 에덴동산에서 첫 출발했다고  우길 수는 없다. 그러나  일단 인간에 대한 객관적 사실들이 확정된  후, 인간의 삶에  실존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가치들을 결정하는 것은  종교의 소관이다. 이처럼 과학과 종교는 상대방의  능력을 존중하고 각자 자기의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서 서로에게 의존할 필요가 있다.

   이상과 같은  리츨의 사상의  영향으로 그리스도교의 실천적,  윤리적, 혹은 사회적 의미를  강조하는 신학적 경향들이 현대신학의  한 주류로 자리잡게 되었다.  예를 들면 리츨  이후에 사회적 질서를  재형성하는 데 초점을 두었던 소위 사회복음주의운동이  그러하고 또 그리스도교와 사회와의 관계, 특히 그것을 정치적  차원에서 분석하는데 평생을 바쳤던 라인홀드 니버의 신학이 그러하다.  오늘날에 와서도 중요한 사회적 이슈들, 예컨데 인종문제,  빈곤문제, 인권문제, 또 평화문제  등을 그리스도교 신앙과  의미 있게 연계시켜  보려는 시도 따위가 그  신학적 내용으로 본다면  모두 리츨에게까지 소급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리츨은 쉴라이에르마허와 함께  19세기로 부터 오늘에 이르는  모든 인간 중심적인 그리스도교  사상의 흐름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종교에 대한 모든 사고의 출발점은 인간과 인간의  경험, 또 인간의 문제들이다.

   이러한 사상적 흐름에 반항하여 그리스도교를  신 중심적으로 전환시키려 했던 사람이  바로 칼 바르트였던 것이다. 초월적인  하나님의 현존에서 느끼는 신비감과 경외감을 그리스도교로부터  빼앗아 버린 책임이 전적으로 리츨에게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실제  리츨은 신비적인 체험이나 경건주의  그 외에도 사회에서 생활하고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와  관련되지 않은 방법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해석하는 것을 일체 거부하였다. 리츨에게  있어서는 실천성이 참다운 종교의 핵심이었다.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올바로  해석하려면 반드시 성서의 메시지와 인간의 상황이라는 양극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할 때 우리가 리츨  신학에 대해 할 수  있는 공정한 평은 역시  리츨은 인간의 상황이라는 극쪽에  훨씬 많은 비중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이 리츨의 그리스도교  해석의 강점이면서도 약점이기도 하다.  현실에 깊이 천착했다고 하는  점에서는 누구의 신학보다도 리츨의  신학이 강점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텍스트로부터 지나치게  멀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는 리츨의 신학의 약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http://kcm.kr/dic_view.php?nid=38892


https://www.youtube.com/watch?v=tclxNVefGGQ




참고 3. 칸트


임마누엘 칸트(독일어: Immanuel Kant [ɪˈmaːnu̯eːl kant][*], 1724년 4월 22일 ~ 1804년 2월 12일)는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독일 관념철학의 기반을 확립한 프로이센철학자이다.

칸트는 21세기의 철학에 까지 영향을 준 새롭고도 폭 넓은 철학적 관점을 창조했다. 그는 또한 인식론을 다룬 중요한 저서를 출간했고, 종교, 역사에 관해서도 중요한 책을 썼다. 그의 탁월한 저서 중 하나인 《순수이성 비판》은 이성 그 자체가 지닌 구조와 한계를 연구한 책이다. 이 책에서 칸트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인식론을 공격하고 있으며, 칸트 자신이 그 분야에 공헌한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가 만년에 출간한 다른 주요 저서에는 윤리학을 집중적으로 다룬 《실천이성 비판》과 미학, 목적론 등을 연구한 《판단력 비판》이 있다.

그는 종래의 경험론 및 독단론을 극복하도록 비판철학을 수립하였다. 인식 및 실천의 객관적 기준을 선험적 형식에서 찾고, 사유가 존재를, 방법이 대상을 규정한다고 하였다. 도덕의 근거를 인과율이 지배하지 않는 선험적 자유에서 찾고, 완전히 자유로운 도덕적 인격의 자기 입법을 도덕률로 삼았다.

그는 도덕적 인격을 목표로 하면서도 자의적인 ‘한 사람의 의욕과 다른 사람의 의욕이 자유의 보편원칙에 따라 합치될 수 있는 여러 조건’을 법이라 생각하였다. 칸트에게 내적 자유의 실현 수단인 은 외적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를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도덕과 엄격히 구별되었다. 칸트는 국가에 대해서 계약론의 입장을 취했는데, 그는 국가계약을 역사적 사실처럼 생각한 계몽기의 사상을 발전시켜서 이것을 국민주권을 위한 이론적 요청으로 생각하였다. 또 칸트는 국가 간의 전쟁을 하지 않는, 영구 평화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저술했다. 그는 전쟁으로 인해 생긴 문제점을 전쟁이 끝난 뒤에 조정하여 해소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제도의 내용은 국제법의 개념에 근거한 국제 연맹이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B%A7%88%EB%88%84%EC%97%98_%EC%B9%B8%ED%8A%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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