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완윌리엄스 시리즈 읽기_'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_성찬례
그리스도 인들에게 성찬례에 참여하는 일은 자신이 언제나 손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환영받는 사람이요,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성찬례 안에서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에 "내가 너희 무리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_p73
복음서를 읽는 중에 옛날 갈릴리 어디선가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웃고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으면, 분명 그 주위 가까운 곳에 나사렛 예수께서 계신 것이라고 판단해도 마땅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_p73
복음서들에는 예수와 환대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특히 성찬례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밝혀 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여리고에서 예수와 삭개오가 만나는 이야기로, 누가복음 19장에 나옵니다. 세리 삭개오는 군중 속에 갇혀 앞을 볼 수 없게 되자,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기를 바라며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나무 아래 도달한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 봅니다. 여러분은 그 때 만흔 사람들의 눈이 위로 쏠리자 나뭇가지에 걸터 앉은 세리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고, 또 예수께서 그에게 "네 집으로 나를 초대하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시자 무리가 씩씩거리는 것을 어렵지 않게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환대를 실천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름사람에게도 환대를 이끌어 냅니다. 그분은 자신이 먼저 환영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환영할 수 있도록 길을 엽니다. 예수의 환영은 우리에게 그분을 향해 우리를 개방할 용기를 준다_p75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의 선물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몸이 찢기고 피를 흘리기 직전에 감사드린 일은 이를 테면 인간 경험이 펼쳐지는 흑암의 자리를 은혜로운 하나님께 연결한 것이요, 또 그렇게 어두운 곳에서도 하나님은 계속 은혜를 베푸시며, 따라서 우리는 감사드리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가르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_p82
우리는 하나님의 손님으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우리를 그 자리로 초대하시고, 또 우리가 하나되어 기뻐하는 것을 예수께서 원하시기에 우리는 그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잠재적인 배신자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누가복음 22:21)라고 말씀하시고는 떡 한조각을 적셔서 유다에게 건네줍니다. 그 분은 식탁에 둘러 앉은 모두를 바라보며 두어 시간 안에 그들이 자기를 부인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_p86
이 일도 역시 성찬례에서 이루어지는 일의 한 부분입니다. 성찬례는 우리에게 정직한 회개의 필요성을 깨우쳐 줍니다. 우리에게도 받은 선물을 잊어버리고 배반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찬례는 그리스도인이 바른 행동을 실천해서 얻는 보상이 아닙니다. 성찬례란 자기 집착과 교만과 나태에서 비롯되는 굶주림에서 우리를 지켜내는 데 필요한 음식입니다_p87
성찬례는 우리 가운데서 복음 이야기 전체를 재현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앞에서 성경에 대해 다룰 때 먼 과거에 속한 성경인물들을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여졌던 일을 기어갈 것입니다. 성찬례에서는 그 일이 아주 친숙한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확연한 물적 형태를 디고 구현됩니다.
우리는 죽음과 배신, 부인과 포기의 현실 속에서도 다시 세워지는 공동체를 경험하도록 부활의 날에 재차 부름받고 새로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또 우리는 성찬을 받음으로써 온 세상을 새롭게 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인류와 물질세계 전체를 새로운 눈으로 보고, 사람과 만물을 성사적으로 이해하며, 그들 속에 있는 심연을 하나님의 은혜가 일하는 자리로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_p89
우리는 성찬을 받음으로써 온 세상을 새롭게 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구원이란 창조하고 변혁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 무리를 원하는 그 영원한 갈망 때문에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생명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원한 갈망이란 우리를 존재케 해서 채워야 할 하나님의 필요를 뜻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른 존재들에게 자신을 더욱 많이 나눠주고 싶어 하시는 관용을 의미합니다_p89
우리는 성찬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혁이 성령의 활동이라는 점을 믿고 인정합니다. 우리는 우리 위, 그리고 떡과 포도주 위로 성령이 임하시기를 구하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가 여기 예수의 무리와 함께 있습니다. 아버지, 성령을 보내셔서 이 사람들이 이것을 받을 때에 예수의 생명이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소서"
우리 가운데 언제나 예수가 살아 있게 하는 성령은 이렇게 성찬례 안에서 특별하게 역사하여 성찬례를 영적 변혁의 도구가 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찬 식탁을 떠나 하나님의 능력을 힙입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에 참여하게 됩니다. 새 빛 안에서 세상ㅇ르 보고, 새로운 눈으로 인간을 이해하며, 하나님의 목적이 세상 속에서 더욱 풍성하게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힘을 다해 일합니다_p91
모든 일에 감사한다는 것은 모든 일을 보면서 "아, 저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정하신 일이야"라고 말하고는 어떤 변화도 기대하지 않은 채 눈감아 버리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또 고난과 공포에 휩쓸린 상황들을 보면서 "저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감사한다는 말은 어떤 상황이나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꿰뚫어 보면서 거기 어딘가에 은혜로운 하나님께서 계심을 인정하고, 나아가 하나님께서 더욱 많은 은혜를 주셔서 새 일을 행하시고 변혁을 이룰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을 뜻합니다. 또 나 자신을 바꾸고 내 주위 사람과 나를 에워싼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씨름할 때, 내가 찾고 또 나 자신을 던져 맞서는 그것이 다름 아닌 숨어 있는 실재, 곧 결코 지치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_p93
성찬례에서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 섭니다. 우리가 선 그 곳은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생명을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드리는 자리입니다. 또 성찬례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끝에 섭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운명이 어떻게 앞당겨져 성취되는지를 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가 속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것을 하나님의 심연 안에서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과 연관지어 그것들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끈질기게 실재의 그 차원으로 파고들어서,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감사와 회개와 변혁이 속구쳐 오르게 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시편에서는 "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라고 말합니다.(시편 36:9) 바로 이것이 성찬례 안에서 우리가 마실 물을 얻는 샘입니다_p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