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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r 10. 2020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3

로완윌리엄스 시리즈 읽기_'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_성찬례

0. 들어가기


로완윌리엄스 책읽기가 한창이다. 오늘은 3장 성찬례에 대한 내용이다. 교회가 바뀌면서 '성찬례'에 대해서 매주 경험하고 있다. 정해진 의식을 치루면서 무엇인가 내가 잊지 않아야 할 것들이 가슴 속에 새겨지는 느낌이다. 오늘은 로완 윌리엄스가 생각하는 성찬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https://brunch.co.kr/@minnation/1671




1. 환영의 말


그리스도 인들에게 성찬례에 참여하는 일은 자신이 언제나 손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환영받는 사람이요,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성찬례 안에서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에 "내가 너희 무리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_p73  


복음서를 읽는 중에 옛날 갈릴리 어디선가 떠들썩한 소리와 함께 웃고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싶으면, 분명 그 주위 가까운 곳에 나사렛 예수께서 계신 것이라고 판단해도 마땅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_p73  

복음서들에는 예수와 환대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특히 성찬례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밝혀 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여리고에서 예수와 삭개오가 만나는 이야기로, 누가복음 19장에 나옵니다.  세리 삭개오는 군중 속에 갇혀 앞을 볼 수 없게 되자,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기를 바라며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나무 아래 도달한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 봅니다. 여러분은 그 때 만흔 사람들의 눈이 위로 쏠리자 나뭇가지에 걸터 앉은 세리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하고, 또 예수께서 그에게 "네 집으로 나를 초대하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시자 무리가 씩씩거리는 것을 어렵지 않게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환대를 실천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다름사람에게도 환대를 이끌어 냅니다. 그분은 자신이 먼저 환영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환영할 수 있도록 길을 엽니다. 예수의 환영은 우리에게 그분을 향해 우리를 개방할 용기를 준다_p75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되어지는 것은 과정에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의 어떠함으로 부터 되는 것이 아니라 초대를 받아서 우리가 되었다. 우리라고 말할려면 '우리'의 테두리를 지어야 하는데 그 테두리를 '우리'가 만들지 않고, 하나님이 그 테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테두리를 또 날마다 확장해 가시면서 우리가 거할 공간을 만들어 가신다. 우리를 부르시고, 초대하시고 우리와 함께 계속해서 만들어가신다. 환영받는 존재로서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형상으로 회복된다. 삭개오가 민족을 배반한 존재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환대받지 못한 영역에 들어있을 때도 테두리 안으로 부르시는, 아니 오히려 다가가셔서 테두리를 넓히시는 사역을 보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만들어가시는 환대의 장소는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는 반드시 먹고 마시는 일이 일어난다. 함께 먹고 마시는 가운데, 예수의 피를 마시고 몸을 먹는 일들이 일어난다. 그래서 그 피를 먹고 몸을 먹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되어 간다.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행동을 입어 간다. 그리스도와 옷을 입고, 그에 맞는 행동들은 환대와 초대일 것이다. 이것은 '성찬례'를 통해서 우리 삶 속에서 계속해서 주어진다.



2. 은혜로운 하나님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의 선물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몸이 찢기고 피를 흘리기 직전에 감사드린 일은 이를 테면 인간 경험이 펼쳐지는 흑암의 자리를 은혜로운 하나님께 연결한 것이요, 또 그렇게 어두운 곳에서도 하나님은 계속 은혜를 베푸시며, 따라서 우리는 감사드리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가르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_p82


성찬식을 통해서 은혜로운 하나님을 경험하는 인간은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사물을 보게 된다. 모든 장소에서 사람과 사물들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성사적 심연이 깃들어 있다. 우리가 손님이었다는 것과 또한 다른 사람을 환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과, 성령과 함께 변화를 경험하는 것과, 만물이 회복되는 과정에 있다는 관점은 성찬례를 통해서 우리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3. 정직한 회개


우리는 하나님의 손님으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우리를 그 자리로 초대하시고, 또 우리가 하나되어 기뻐하는 것을 예수께서 원하시기에 우리는 그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잠재적인 배신자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누가복음 22:21)라고 말씀하시고는 떡 한조각을 적셔서 유다에게 건네줍니다. 그 분은 식탁에 둘러 앉은 모두를 바라보며 두어 시간 안에 그들이 자기를 부인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_p86


환대를 받았지만 우리는 또한 여전히 배신자로, 배신자의 손으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떼고 마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를 여전히 부르시고 초대하신다. 그럼으로 우리는 날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읠 경험하고 그 경험한 은혜 안에서 정직하게 나 자신을 고백하게된다. 예수님을 배반하는 자리에서 매번 초대받은 우리는 다른 관점을 넘어서 다른 존재로 넘어간다.


이 일도 역시 성찬례에서 이루어지는 일의 한 부분입니다. 성찬례는 우리에게 정직한 회개의 필요성을 깨우쳐 줍니다. 우리에게도 받은 선물을 잊어버리고 배반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찬례는 그리스도인이 바른 행동을 실천해서 얻는 보상이 아닙니다. 성찬례란 자기 집착과 교만과 나태에서 비롯되는 굶주림에서 우리를 지켜내는 데 필요한 음식입니다_p87


내 안에 선한것이 없을 때, 나 자신이 무감각하거나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러한 감각이 때로는 생의 감각을 무효화시키는 것 같기도 한다. 그러나 전투와 같이 임하는 혹은 너무 일상적인 삶들 속에서 들어오는 성찬례는 그 동안 나를 중심으로 본 것들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을 보고 그 영역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된다. 우리는 여전히 굶주려 있고 우리는 필요하다. 먹어야 하고 마셔야 한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주시고, 우리는 다시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마음을 돌려서 성찬을 받으며 새로운 길로 걸어갈 수 있다.


성찬례는 우리 가운데서 복음 이야기 전체를 재현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앞에서 성경에 대해 다룰 때 먼 과거에 속한 성경인물들을 우리 가족으로 받아들여졌던 일을 기어갈 것입니다. 성찬례에서는 그 일이 아주 친숙한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확연한 물적 형태를 디고 구현됩니다.

우리는 죽음과 배신, 부인과 포기의 현실 속에서도 다시 세워지는 공동체를 경험하도록 부활의 날에 재차 부름받고 새로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또 우리는 성찬을 받음으로써 온 세상을 새롭게 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인류와 물질세계 전체를 새로운 눈으로 보고, 사람과 만물을 성사적으로 이해하며, 그들 속에 있는 심연을 하나님의 은혜가 일하는 자리로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_p89


우리는 성찬을 받음으로써 온 세상을 새롭게 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4. 변혁하는 성령


구원이란 창조하고 변혁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우리 무리를 원하는 그 영원한 갈망 때문에 다시 한번 우리에게 생명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원한 갈망이란 우리를 존재케 해서 채워야 할 하나님의 필요를 뜻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른 존재들에게 자신을 더욱 많이 나눠주고 싶어 하시는 관용을 의미합니다_p89


성찬의 관점에서 보면 구원도 역시 하나님의 관용이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초청하시고 하나님의 공동체로 부르신다. 그리고 그 환대 안에서 우리는 함께 먹고 마시면서, 성령을 끊임없이 호흡하면서 생명을 얻게 되고 구원의 결과들을 얻게 된다. 영적으로만이 아니라, 생각으로만이 아니라 실제적인 물질들로 우리를 구원의 피부를 가지게 한다. 변혁하시는 성령은 그 안에서 피와 같이 우리를 움직이는 호흡이고 산소가 된다.


우리는 성찬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혁이 성령의 활동이라는 점을 믿고 인정합니다. 우리는 우리 위, 그리고 떡과 포도주 위로 성령이 임하시기를 구하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가 여기 예수의 무리와 함께 있습니다. 아버지, 성령을 보내셔서 이 사람들이 이것을 받을 때에 예수의 생명이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소서"

우리 가운데 언제나 예수가 살아 있게 하는 성령은 이렇게 성찬례 안에서 특별하게 역사하여 성찬례를 영적 변혁의 도구가 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찬 식탁을 떠나 하나님의 능력을 힙입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에 참여하게 됩니다. 새 빛 안에서 세상ㅇ르 보고, 새로운 눈으로 인간을 이해하며, 하나님의 목적이 세상 속에서 더욱 풍성하게 열매 맺을 수 있도록 힘을 다해 일합니다_p91


우리는 변혁할 수 있는 존재이고, 성찬 안에서 우리는 변화하는 존재로서 스스로를 인정하고 변혁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성찬례는 그리스도와 우리와 함께 거하시면서 우리를 회복시키는 성령님의 역사가 이어나는 장소이다. 초대받은 사람은 이미 그 초대를 하는 사람에게는 받아들여지기로 결정된 사람이다. 그래서 나의 변화는 이미 부름을 받은 그 시간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과 신뢰가 이미 그 관계 속에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를 만드신 것만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시고 함께 식탁에 앉아서 자신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변화와 상대방의 변화를 불러 일으키는 존재가 된다.


모든 일에 감사한다는 것은 모든 일을 보면서 "아, 저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정하신 일이야"라고 말하고는 어떤 변화도 기대하지 않은 채 눈감아 버리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또 고난과 공포에 휩쓸린 상황들을 보면서 "저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감사한다는 말은 어떤 상황이나 사람의 내면 깊은 곳에 꿰뚫어 보면서 거기 어딘가에 은혜로운 하나님께서 계심을 인정하고, 나아가 하나님께서 더욱 많은 은혜를 주셔서 새 일을 행하시고 변혁을 이룰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을 뜻합니다. 또 나 자신을 바꾸고 내 주위 사람과 나를 에워싼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씨름할 때, 내가 찾고 또 나 자신을 던져 맞서는 그것이 다름 아닌 숨어 있는 실재, 곧 결코 지치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_p93

성찬례에서 우리는 세상의 중심에 섭니다. 우리가 선 그 곳은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생명을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드리는 자리입니다. 또 성찬례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끝에 섭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 세상의 운명이 어떻게 앞당겨져 성취되는지를 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가 속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것을 하나님의 심연 안에서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과 연관지어 그것들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끈질기게 실재의 그 차원으로 파고들어서,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감사와 회개와 변혁이 속구쳐 오르게 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시편에서는 "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라고 말합니다.(시편 36:9) 바로 이것이 성찬례 안에서 우리가 마실 물을 얻는 샘입니다_p94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에서 우리가 얻게 된 성찬의 재료들, 창조의 생기들과 그리스도와 몸이 찢기고 피가 흘려진 곳이 하나의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성찬의 장소'에서 우리는 세상의 시작과 끝을 본다. 창조와 종말이 부활 안에서 일어난다. 성찬은 계속해서 부활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양식이다. 우리는 매번 밥을 먹으면서 성찬을 하면서 실재로 살아가게 되고, 그 삶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삶의 특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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