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년이나 지났다. 처음 노량진 근처에 위치한 센터에 찾아갔을 때, 어리고 하얀 모습의 아이들. 그 아이들이 이렇게 커서 지금은 나랑 키도 비슷하고 예의도 제법 차린다. 첫 만남부터 '뭘 하면 즐겁겠어?'라고 물어 본 것이 충격이라고 했다. 아무도 그렇게 물어보지 않기에. 점점 친구들과 만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모든 것을 부모님처럼 바라보고 다 받아주는 온정주의나, 상황과 조건이 안 좋으니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차원에서 '연민'이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가이다. 오히려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삶의 의지가 제대로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에 집중하면 다른 감정들은 쉽게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2. 우정이 쌓이는 것이겠지
1년이 지났을 때 ngo단체 월급을 공개했더니 아이들은 기겁을 하면서, 자신들과 만난 시간들과 평균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서 "쌤~그럼 우리 만날 때 부담되지 않아요?"라고 말하더니, 서로서로 밥을 먹을 때 가장 낮은 메뉴들부터 훑어보기 시작한다. 돈이 많으면 맛있는 것을 사줄 수 있겠지만, 오히려 돈이 없었기 때문 우리 사이에 서로 '우정'이 쌓이는 것이 아닌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 부쩍 커버린 친구들은 서로 욕을 하면서 싸우면서도 나를 '쌤~'이라고 불러주었기 때문에 너무 고마웠다. 나 역시도 친구들에게 짜증을 최대한 참으면서, 사실 화도 잘 안난다만. 그렇게 쌓아올린 시간들. 나는 인생의 선배들에게도 인생을 배우지만 이 친구들에게 삶을 배운다. 어느 순간에도 우리의 삶은 이렇게 관계 속에서 활짝 열려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량진에서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 대학로 연극을 보러 가는 시간은 나에게 거의 지옥과도 같았다. 워낙 여기저기 난리를 쳤기 때문에. 그것도 다 추억이 되어 간다.
3. 등산가자
처음에 등산을 가자고 했을 때 친구들의 반응은 "쌤 왜요~? 저희 그런거 싫어해요!"라고 했다가, 김밥과 치킨으로 꼬셔서 인왕산 등산을 시도했다. 물론 상상최대 7명의 중학교 1학년들을 데리고 노량진에서 인왕산을 거쳐서 다시 노량진으로 온다는 것은 군대에서 100명 데리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중간중간 친구들이 퍼지면, "할 수 있어!"라며 친구들의 온갖 짐을 짊어매고 마치 그리스도같이?올라갔던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한 계단 한계단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사이에 친구들은 시원함과 탁 트인 시야에서 즐거움과 삶의 여유를 느끼고 있었고, "쌤 ~ 다음에 또 와요!"라며 연신 아 좋다라고 외쳤다. 그리고나서 결국 부암동에 다다랄서 '계엄사'에서 2인 1치킨을 실현했다. 그날 거의 20만원의 비용이 들어갔지만, 그럼에도 친구들에게 다른 기쁨이 있다는 것을 함께 경험한 시간이라서 아깝지 않았다. 물론 에어팟 하나 살 돈이 사라진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내 안에 뭉클뭉클한 희망을 발견하던 시간이었다. 마치 아이들이 등산가기 싫었는데 몇 주 지나면 또 등산가고 싶은 마음처럼.
4. 서브웨이 15cm
인왕산에 이어 우리는 북악산에도 가고 관악산도 도전했다. 관악산을 가기 위해서 서울대 입구에서 만났을 때 무엇을 먹을까하다가 서브웨이에 갔다. 그 때는 이미 쌍둥이 친구 중에 첫째가 나의 월급사정과 만나고 나면 나에게 10분의 1이 사라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게된 때였다. 왜냐하면 2주 전에 방탈출게임을 하러 갔는데 첫째만 가기 싫다고 해서, 다른 친구들은 방탈출게임을 하고 첫째만 데리고 닭갈비를 사주었기 때문이다. 원래 1:1로 만나면 장난치기도 힘들고 서로 진지해지기 마련이라서, 나는 가감없이 나의 상황을 공개했고 오히려 첫째는 나를 더 이해주는 친구가 되었다. 아무튼, 관악산 등반은 '서브웨이'에서 사서 올라가기로 했다. 줄을 서서 기다는데 쌍둥이 둘째가 "30cm로 주세요~"하자 첫째가 뒤통수를 치면서 "야~ 쌤 돈 없어~!"라고 크게 외쳤다. 그 당시 서울대 입구역 서브웨이에 20명 정도가 줄을 서 있었는데, 이 소리를 다 듣고 모두 웃었다. 살짝 얼굴이 붉혔지만, 그 친구가 생각해 준 것에 대해서 먼가 감동이 밀려왔다. 나는 그냥 사라고 하고선 흐믓하게 바라보았다. 첫째는 결국 15cm를 샀고, 점심시간에 동생꺼 15cm를 뺏어 먹었다.
5. 볼링에 맛이 들리게 되었다
물론 그 사이에 우리는 한강에서 자전거도 타고, 순대타운에서 순대도 먹고 영화도 무수히 보고, 탁구와 당구, 볼링도 여러번 쳤다. 덕수궁에 갔다가 '한국회화 100년대전'을 보고 나오면서 친구들은 "쌤~ 중2한테 이건 너무 무리지 않아요?"라고 하면서 바로 락볼링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결국 친구들은 볼링에 맛이 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여러 볼링장을 찾아 다니면서 볼링을 치기 시작했다. 잡는 법이나 포즈는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다. 자신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까지 말이다. 따라서 4번정도 쳤을 때 아이들은 이제 평균 100정도를 넘게 되었다. 물론 비용은 만만치 않았지만. 그 후로도 여러번 볼링장에 가게 되었고, 우리가 만나서 할 수 있는 것들 목록에 볼링이 포함되었다. 등산, 볼링, 자전거, 탁구, 당구, 영화관, 미술관, 맛집이 우리가 가진 리스트 였다.
6. 엉터리 생고기
중학교 2학년을 넘어가면서 친구들의 식성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양 많고 푸짐한 곳을 찾아다녔다. 신대방삼거리에는 '엉터리 생고기'와 '명륜진사갈비'가 경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러 고민을 하다가 결국 엉터리 생고길로 향했다. 그리고 항상 신대방 삼거리에서는 엉터리 생고기를 가게 되었다. 시작하자마다 공기밥 무한리필을 시키고, 한 10회정도 고기 리필을 한다음에 정성스럽게 구워주면 비로소 "쌤~저희가 구울까요?"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그 때서야 1인분정도를 먹었다. 그리고 2번, 3번 갔을 때 친구들은 처음부터 "쌤~이제 저희가 구울께요~쫌 드세요!"라고 말하고선 열심히 구웠다. 나는 또 마음이 몽글몽글하다가 "아니야~ 쌤은 좀 있다 먹을께. 너희 먼저 먹어!"라고 하면 "아~그래요?ㅎㅎ 괜찮은데"하면서 열심히 먹었다. 엉터리 생고기에서는 우리가 오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친구들의 식성은 결국 공기밥 15개와 고기 15인분정도를 먹고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