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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un 12. 2020

금요일 오후에

그냥 드는 생각들

바람이 스산하게 부어오고 시간이 갑짜기 멈춘듯이 나만 걷고 있는 느낌이 들 때, 문득 눈을 들어 보니 금요일 오후에서 밤으로 지나가는 중이다. 햇살이 석양으로 수그러들고 사람들의 얼굴은 그 햇살에서 내일을 기대하듯이 돌아서면 나는 그 돌아서는 눈빛들과 함께 밤으로 여행한다. 아침에 푸르른 햇살을 감상하면서 걸어갔던 길을 다시 내려오는 동안에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느라 정신이 없고, 이제 막 일을 끝내고 지하철에서 집으로 향하는 가벼운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봄의 빗소리 보다 좋아 보인다.


요즘에는 미국사회학자 미드mead의 글들을 읽고 있다. 그는 사회속에서 만들어진 목적격 '나'와 무한한 신비를 가진 주격 '나'의 간극에서 만들어지는 긴장에 주목했다. 그리고 인간은 무한한 주격 내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사회 속에서 목적격 나로 인정받는 투쟁을 하게 된다고 한다. 주격 나와 목적격 나의 관계의 어디쯤에서 '나'라는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말이었다. 미드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사회가 있기 전에 주격과 목적격이 모두 있다거나, 주격은 없고 목적격만 있다거나 혹은 주격이나 목적격이나 뇌의 감각으로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미드는 실용주의자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가?에 대한 의문을 다양하게 접근해 보면서 결국에는 사회 속에서 혼자 있을 때 만들어지는 '나'와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나'의 관계를 규정하면서 두 가지를 받아 들일 때 진정한 정체성이 나온다고 하였다.



금요일 밤으로 가는 길목에서 나는 이런 고민을 해 본다. 사람들이 모두 느끼는 정서와 나만 느끼고 있는 정서 사이에서 나는 어느 쪽에 더 힘을 싣고 있을까? 바쁘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다르게 가득 매운 홍대가는 버스에 타 있는 젊은이들의 뒷모습에서 나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항상 무엇인가 머릿속에 떠올리고선 지나가는 풍경들에서 그 의미를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깐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할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면 스쳐가는 사람들에게서 '저 분은 어떤 생각으로 자신을 규정할까?'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간다. 무엇인가 홀린듯한 몰입에서 시간은 초단위가 아니라 나노단위로 쪼개어져서 다양한 출처들을 불러 오니깐. 이런 나름의 분주함들이 금요일 밤의 단상이다.


내일이 열려 있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 같다. 내일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휠체어를 타고 무겁게 언덕을 오르시는 한 어르신을 본다. 연민을 싫어하는 편이지만 불현듯 내가 생각했던 '내일의 자유'가 너무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진다. 평등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나도 힘들게 하루를 지냈는데 좀 쉬자!라는 감정이 섞여 있다가 머릿속에 가득 채워져 버린다. 어떤 사람의 삶이 말이다.



내일이 닫혀진 사람들 때문에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닫혀진 것들을 풀어내는 힘을 길러야 겠다고 생각했다. 토요일 아침이라면, 일요일 오후 2시라면 절대 생각하지 않을 사건들의 의밀를 금요일 저녁 8시에는 무한대로 고민하고 있다. 지금도 힘들게 택배를 나르고 있을 기사님들과 여전히 알바로 정신이 없을 학생들과 아이들 뛰 노는 소리에 정신이 없을 육아에 지친 사람들과, 또 다른 한편으로 연인들과 즐거운 낭만을 누리는 사람들과 맛난 음식으로 삶의 풍미를 누리는 사람들과 술한잔 하면서 한숨 혹은 기쁨을 달래거나 누리는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요즘 너무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지 않아서,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끄적이고 있다. 누군가를 위한 삶도 어떤 시점을 위해서 공을 들이는 것도 시간을 무한대로 쪼개어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구간에 돌입하니깐. 나는 지금 그런 구간에서 서성이고 있다고나 할까? 이렇게 앉아서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 건 마냥 좋기는 하다. 아주 잠시 누리는 즐거움이기는 하다.



어머니의 암이 거의 완치가 되었다. 지난 6개월동안 참 힘든 시간을 우리 가족이 보냈다. 수술에 항암치료에 방사선 치료까지 모두 마쳤고 오늘에서야 결과가 나왔다. 완치판정. 작년말부터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해 보았다. 자존감과 삶에 대한 의지가 바닥을 친 순간부터 조금씩 희망을 보이며 '나'라도 힘을 내야 겠다는 생각들을 했던 의지의 순간들. 수 없이 울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서 부터 서성이던 날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쓸어 내린다.


끄적이는 내내 마음이 차분히 갈아앉고 이제 해야할 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 숨을 한 번 쉬고 다시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 보자. 너무 큰 의지도 말고 너무 가슴뛰는 감정도 말고, 조용히 천천히 한 발짝씩 걸어보자. 지금이다. 해야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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