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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un 18. 2020

교회, 불확실성의 세계를 살아가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_신학자 특강 '권지성' 교수

0. 들어가기


코헬렛은 누구인가? 이런 질문을 해보자. 원래는 코헬렛을 전도서라고 알고 있다. 코헬렛을 쓴 사람은 솔로몬이라고 할 수 있는가? 지금까지는 전도서의 저자는 솔로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경고고학적으로 볼 때 코헬렛은 솔로몬이 쓴 증거가 별로 없다. 시대도 맞지 않고, 상황도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단순히 '모이다'라는 뜻을 가진 코헬렛이라는 단어는 다른 의미를 가지는가? 오히려 '사람의 이름'일 수도 있는가? 왜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가? 잠언과 전도서의 뉘앙스와 시기의 차이 때문에 해석의 문제, 고고학적인 문제가 부단히 발생한다. 오늘은 하나님 나라의 신학의 관점을 조금은 바꾸어서 '잠언 - 전도서 - 욥기'로 한정해서 생각해보자. 아마도 재미있을 것이다. 우리의 기존 해석을 뒤집을 것이 분명함으로.



1. 솔로몬 = 코헬렛?

히브리어에서 코헬렛은 군중의 '연설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명사로 보면 집회나 회의를 듯하고 LXX의 번역에서 현재의 전도서가 유래했다.

그리스와 라틴 사본에는 '이스라엘의'라는 구문이 첨언되어 있어서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을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해서 곧바로 전도서의 저자로 볼 수 있는가?

솔로몬으로 코헬렛을 지칭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유발한다.

해석자들은 회중들 혹은 잠언을 모르는 솔로몬의 이미지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연결은 무리가 따른다.

전도서 1장 1절, 1장 12절엠나 솔로몬으로 생각할 수 있다. 코헬렛은 assembly라는의미일 뿐이다.

오히려 코헬렛은 성공한 사업가로 세상을 묘사하는 상업적 단어의 사용과 그의 우선순는 이윤의 개념에 의해서 전개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노인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 그는 아마도 죽음에 직면한 노인이며 그의 지혜는 그를 위한 행복의 근원이 되지 않는다.

지혜자로 보는 경우는 고전적인 성경책의 표준적인 히브리어를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후기문학일 수 있는 것이다.


2. 전도서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럼 전도서의 저술연대는 언제일까? 보통은 헬레니즘시대로 보는 관점은 2-3세기 이전으로 보기도 하고 Archer의 경우 포로기 이전으로 보기도 한다.

지혜의 전통의 관점에서 전도서는 조금 다르게 보아야 한다. 잠언으로 대표되는 지혜문학에 대한 부정적이며 회의적인 책으로 인식하게 된다. Gese가 1983년에 했던 표현이다.

Bruggemann은 1990년에 지혜에 대해서 해방적인 측면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하나님나라의 신학의 관점에서 잠언-욥기-전도서를 보면 잠언은 신명기적이고 율법적이다. 욥기는 제2이사야의 관점에서 질서의 파괴를 이야기한다. 전도서는 헤벨의 세상을 표현하며 회의주의를 드러내는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코헬렛은 어떤 사람인 것 같다. 솔로몬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매우 부족하다.


저자, 편집자, 코헬렛

우리는 경우의 수를 볼 수 있다. 위의 세가지 주체가 모둔 같은가?다른가?

옵션1. 저자는 편집자이고 코헬렛은 모두 동일한 사람이다. 코헬렛을 전도서 '책'의 실제 저자의 페르소나, 캐릭터로서 나눈다.

옵션2. 저자-편집자는 동일한 사람이나, 코헬렛은 다른 사람이다.

옵션3. 저자-편집자-코헬렛은 모두 다른 사람이다.

옵션을 하나하나 생각해보자.


옵션 1. 내레이터의 페르소나 = 코헬렛

이렇게 놓았을 때 하나님을 경외함, 바른관계와 지혜적 사고로 받아들여진다.

3인칭으로 코헬렛을 지칭하는 것은 반드시 코헬렛의 견해에 반응하고 그를 교정하는 Epilogist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옵션 2. 코헬렛만 다르고 저자와 편집자는 같다.

코헬렛의 마지막 메시지는 기뻐하라, 죽음을 기뻐하라이다.

이것을 편집자는 마지막 메시지에 대한 어떤 입장을 갖는다. 편집 비평과 최종적 형태의 독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편집자는 코헬렛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 가지는 않다. 오히려 경건한 믿음의 입장에서 진술한다.

다소 경고의 어감을 가지고 있다.


핵심메시지

신학적 전통과의 조화의 측면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헤벨(허무함이나 무의미, 우상숭배와 같은 다양한 뜻을 가진)의 해석들이 존재한다.

비관주의와 긍정주의가 싸우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의 지적인 위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전도서는 복음에 부정적적인 증인이라고 보는 것도 있다.

하나님 아래에서 삶은 모든 신비 속에서 살고 즐겨야 한다고 했다가 진리 속에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기도 한다.


헤벨, 긴장관계

코헬렛의 중심부에는 상호모순의 요소가 자리잡고 있다.

모순은 실제적이며 의도된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해석해야 하며, 그것들을 지워서는 안된다.

마이클폭스의 해석을 보자. 모순에 대해서말하고 있다.

헤벨의 긴장관계는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존재하는 영원한 현재에 관한 것이다.



3. 헤벨의 의미


8가지, 헤벨의 의미

안개, 증기

허무, 공허

무nothingness

불가해성incomprehensibility

사기, 허위deceit

덧 없음ephemerality

어리석음senselessness

우상


Hebel 그리고 전도서

수고와 부

기쁨

정의

지혜


생물

죽음

모든 것


코헬레셍서의 헤벨

수증기의 특성은 쉽게 사라지고 덧없음인데 문맥에 적절히 적용이 될까?

수증기스러운 특징은 잘 적용되지 않는다

일시적이으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서 인간은 일시적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일시적인 순간의 연속을 살고 있다.

비실재적인 것은 아니며, 아무것도 아니다. 현재 속에서 실재하는 어떤 것이다.

헛됨도 아니며, 그것은 쓸모 없는 것도 아니다.


코헬렛 헤벨, the absurd

이러한 것들은 부조화된 결혼들, 도전들, 원한들, 침묵들, 전쟁들 심지어 평화 조약들이다.

이러한 각각의 부분들에서 부조화하는 비교로부터 발생한다. 나는 부조리의 느낌이 사실 혹은 인상의 단순한 검증으로부터 산출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은 날 것의 사실과 어떤 현실 사이에 비교에서 발생하며 행위와 그 행위를 초월하는 세상 사이의 비교에서 터져 나온다고 말함으로서 내 주장의 타당성을 검증받으려 한다.

부조리는 필수적으로 하나의 혼인 무효 판결이다. 그것은 비교되어질 요소에 있지 않으며 그것들의 대결 속에서 태어난다.


코헬렛 헤벨, the incomprehensible

어울리지 않음이나 아이러니이고 신비러움이나 퍼즐, 수수께끼, 무지의 인정이다.

마이클폭스의 해석에 의하면 이렇게 다양한 헤벨의 뜻은 전도서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로 나오는 것이다.


헤벨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


헤벨의 해석

그러면, 헤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다른 의미와 뉘앙스를 반영하는 다른 말들로 해석하면 연속성의 문제가 생긴다.

부조리, 불합리, 착각이나 망상, 헛됨이나  모든 것들이 헤벨을 대처하는 단어는 없다.

다만 문맥에서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기대감과 실제 사이의 모순에서 헤벨이 탄생한다.

원인과 결과의 부당함에서 헤벨이 발생한다.

코헬렛은 부조리함이 전체 시스템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에 대한 궁극적인 저항이면서 실패와 굽어진 하나님의 의도이면서 작은 일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코헬렛, 전반적으로 보기

코헬렛은 인간 행동의 총체적 무익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자연만물을 관찰한다.

한세대는 가고,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드고 해는 지되 그 떳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라고 표현하는 문장이다.

모든 일의 발생에는 그것을 적절하게 하는 시간이 있다.

그 환경에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인생은 가지지 못한다.

운명론과는 다르다.

시간에 대한 조화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

코헬렛은 새로운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활동의 반복과 그 속에서 새로운 것이 없는 인간 역사에 대한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한다.

유한한 인간의 기억 때문에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잊혀진다.

시간의 카탈로그 안에서 인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4. 불확실성의 세계


시간과 우연

나는 세상에서 또 다른 것을 보았다. 빠르다고 해서 달리기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며, 용사라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더라다. 지혜가 있다고 해서 먹을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총명하다고 해서 재물을 모으는 것도 아니며, 총명하다고 해서 재물을 모으는 것도 아니며, 배웠다고 해서 늘 잘 되는 것도 아니더라. 불행한 때와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친다. 사람은 그런 때가 언제 자기에게 닥칠지 알지 못한다. 물고기가 잔인한 그물에 걸리고, 새가 덫에 걸리는 것처럼, 사람ㄷ르도 갑자기 덮치는 악한 때를 피하지 못한다.

시간의 연속성은 인간 세계의 사태들과 무관하게 펼쳐져 있으면 그것은 기회이며 우연의 영역이다.

지혜의 불확실성을 안다면 가난하다고 지혜롭지 않고 지혜롭다고 부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절대적 법칙이라고 하는 것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결론

역설적으로받아들여라.

포기해야 할 것들은 포기해라. 성취하게 될 때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그런데 포기해야 할 때는 포기해라.

헤벨의 세상은 인간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거대한 통제와 계획 속에 있다. 기쁨과 희락은 최상의 신적 선물이고 제한된 인간의 지혜와 지식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와 불완전성을 제어하지 못한다.

회의주의 성격이 크지만, 여호와를 경외하고 바른 인간의 행동들을 강조하고 여호와의 심판에 대한 믿음이 있다.

코헬렛은 삶이 주는 거짓된 환상과 망상을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결국 노동에 대한 맹신, 인간 탐욕에 대한 거짓 망상, 죽음에 대한 거짓된 생각, 행위에 대한 정당한 보상에 대한 거짓됨 믿음, 시간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지혜에 대한 망상, 미래에 대한 거짓된 망상, 근거 없는 낙관론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결국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다




민네이션, 생각

일반적으로 잠언과 전도서, 욥기는 고난과 지혜에 대해서 나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잠언의 저자가 전도서의 저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중학교 때 성경을 읽으면서 매번 고민하던 부분이다. 왜 같은 저자인데 이렇게 다르게 쓸 수 있는지? 잠언의 핵심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삶을 제대로 살아라인데, 전도서는 오히려 이 모든 것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럼 지혜롭게 사는 것이 무엇이 중요할까? 이런 고민들이 한 20년은 만들어진 것 같다.

헤벨'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허무하다'라는 것이 전도서의 뜻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허무하다는 것은 모든것들이 시간과 공간의 연속 안에 갖혀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필연과 우연의 사이에서 인간은 '영원한 현재'를 살 수 밖에 없는데, 영원한 현재는 사실 모든 사람이 실시간으로 살고 있는 상황이다. 헤벨이다. 해석할 수 없는 영역, 해석할수 없다는 것은 다른 관점으로 우리가 볼 수 없음을 뜻한다.

오늘의 특징은 '코헬렛이라는 원저자'와 그것을 번역한 '번역자', 그리고 그 번역한 것들을 모아서 정리한 '편집자'가 다르다는 가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는 이 세 사람이 하나라고 보았던 '솔로몬'의 통전성, 인격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맹목적'일 만큼 전도서를 신명기의 관점이나 이사야의 관점으로 퉁칠려고 했던 미명에서 깨어나는 시간과 같다.

오늘은 그래서 '코헬렛'은 원저자이고 원저자는 편집자나 번역자와 다르게 인간이 경험하는 시간과 사건에 대해서는 불연속적이며 사건적이며 우연적일 수 밖에 없고 그 가운데 하나님은 시간의 주관자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에게 하는 말은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지혜를 가진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를 지켜보아라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잡을 수 없다. 직접적으로. 그런데 간접적으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가 들어 오신다. 들어오셔서 어떤 일들을 하시는가? 이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mos1r4-DP2s

시간과 인격의 상호관계, 헤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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