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 줄 알았는데

나의 아저씨 #8 사랑을 말하는 사람

by 낭만민네이션
핸드폰 고장났어서요. 전화했을까봐서


"너 어디야? 그만두면 그만둔다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아냐?" 동훈은 화가 난 듯이 지안에게 따진다. 불현듯 회사에서 사라진 지안, 상무이상 심사에서 불려가서 동훈을 좋아한다고 실토하고, 그래서 이 회사가 좋았다고 하는 순간, 회장이 들어온다. 그런 회사라면, 그렇게 느낀 회사라면 보람을 느낀다는 말에 이사들은 어리둥절해 한다. 지안은 동훈을 위해서 자신이 피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사라진다. 그리고 걸려온 공중전화에서 그녀의 목소리. 동훈은 머뭇거리면서 받고는 한참을 서성이고, 눈물을 글썽이다가 따지듯이 묻는다.



불쌍한 인간이 화가 났다. 불쌍한 인간은 자기처럼 불쌍한 사람이 생겨나는 것에 화를 낸다. 불쌍해본 사람만이 불쌍함을 안다는 인류 보편적인 철학같이. 내내 신경쓰여서 지안의 자리를 서성이고, 지안이 다시 선물한 슬리퍼를 꺼내들어다가 넣었다가, 신지는 않아도 신발 옆에 놓는다. 불쌍한 인간이 외로운 인간이 되어 가는 사이에, 쓸쓸한 인간은 불쌍한 인간이 되어 간다. 그래서 다시 외로운 인간과 쓸쓸한 인간이 대화를 나눈다.


외로운 인간은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하지만, 쓸쓸한 인간은 외로운 인간의 '외로움' 때문에 더 이상 마주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쓸쓸한 인간은 자주 외로운 인간을 떠나서 혼자 쓸쓸해 한다. 쓸쓸함은 누군가가 없을 때만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서, 쓸쓸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떠나야 한다. 자기 속으로 한 없이 빠져드는 쓸쓸함 때문에 눈에는 초점이 없어지고 생격은 점점 무의 경지에 다다른다. 차라리 불쌍한 인간이었다면 다른 사람을 찾기라도 할 텐데.



센 줄 알았는데, 그런거에 끄덕없을 줄 알았는데.


"지겨워서요, 내가 사람죽인거 알고 좋아할 인간들" 이사들을 통해서 지안이 사람을 죽인 것이 소문이 난다. 지안은 알고 있었다. 어디가나 사람들은 언젠가는 자신의 과거를 알아내고, 누군가의 과거가 자신들의 현실을 가리지 못하게 쫓아낸다는 것을. 그 사람이 선량한 사람이든 착한 사람이든 상관없이. 지겨웠던 거다. 인간실격. 인간이 한 인간의 과거를 재멋대로 평가하고, 자신의 현실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이의 미래를 지워내는 것. 인간실격이다. 문제는 인간실격의 사회가 일상이 되어 버리면, 그 동안 인간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는 것.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세상에서. 실격된 인간들은 다른 사람도 실격시키기 위해서 이상한 길을 만든다. 그 길을 지나가면 모든 사람이 실견된 체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게. 그 길에 들어서지 않을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을 실격된 인간들은 데려다가 낭떨어지에 슬그머니 밀어 버린다. 결국 사회에서 실격된다.


센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건 세니깐 버티는게 아니라, 인간이되고 싶어서 버티지 않는 것. 그러니 주위에 실격된 인간들과 버티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정말 인간일까? 사회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실격되지 않은 인간으로 찾아가는 길. 잘 시도해보지 않는데 간혹 가다가 역사 속에서 한 두명 있다. 불쌍한 인간 같은 사람들이 한 두명.



처음이었는데, 4번이상 잘해준 사람.
나 같은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미안하다"라는 동훈의 말에 나 같은 사람 4번이나 잘해준 사람을 처음 만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동훈은 말을 잇지 못하고, 지안은 눈물을 흘린다. "나 이제 다시 태어나도 상관없어요 또 태어날 수 있어, 이제 괜찮아" 매번 새로 태어나도 떠나지 못하고 그 자리로 돌아온다고 생각했던 지안. 그러나 이제는 다시 태어나면 그 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다른 곳,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던 곳으로 갈 수 있다고. 100만 송이 장미의 한 대사처럼 사랑을 받으면 이제 천사가 되어서 떠날 수 있는 것처럼.


사랑하면, 연인들이 하는 사랑으로만 전락해버린 사회에서. 사랑은 아주 작은 것에 묻어있는 얼룩처럼 가끔 내가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때론 그 얼룩 때문에 이 옷이 좋아지기도 한다. 사랑은 멀리 있지 않고 말한마디, 작은 배려의 손짓, 마냥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드러난다. 말로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육체의 언어를 말의 언어보다 높이 생각한다. 그러니깐 말로 사랑을 남발하고 무게도 많이 나가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육체의 언어가 상대방에게 전달되기 까지 기다리지 못한다. 그래서 사랑은 점점 소멸해 간다. 육체로 말하는 사람들, 이 사회를 그나마 작은 얼룩처럼 버티고 지키고, 빛을 내고 있는 사람들. 그러나 세상에서는 소용없고, 필요없는 사람들. 기록되지 않은 역사에서 말로 하는 사랑은 항상 맨 위에 있었고, 육체의 언어로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기억되지 않았다.


인간은 죽을 때 그걸 알게 된다. 내게 육체의 언어로 사랑을 말하고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준 사람들 때문에 내 삶이 조금은 의미잇고 가치있었다고. 그리고 육체의 언어로 사랑을 보여준 사람들 만이 몸이 기억하는 한 그 사람을 계속 기억한다. 4번이나 잘해준 사람, 그 보다 더 많이 잘해준 사람.



우연히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건가?


"응! 할머니 돌아가시면 전화해 꼭!" 지안은 안도의 한숨을 쉰다. 전화할 수 있겠다. 지나가면서 반갑게 인사할 수 있겠다. 동훈이 있어서 따뜻했던 동네. 이제 지안에게는 따뜻한 동네는 없어졌다. 다만, 반갑게 만나면 인사할 수 있는 사람이 사는 동네만 있을 뿐. 지안은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