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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ul 13. 2020

법가와 천하통일

신영복_강의_10장 '법가'

협동조합 친구들과 거의 2년동안 토요일 아침마다 철학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다. 초기에는 독일철학, 프랑스철학, 영미철학을 주로 보았고 다음으로 동양철학으로 넘어 가기 전에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읽으면서 동양철학 워밍업을 진행했다. 공자에서부터 시작해서, 묵자, 순자, 장자, 노자를 거쳐서 오늘은 마지막으로 '법가'를 살펴보았다. 그동안 한비자, 진시황 정도로 이해했던 법가사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시간 이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욱 모르는 일들이 넘쳐난다. 



송나라 사람이 밭을 갈고 있었다. 밭 가운데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토끼가 달리다가 그루터기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 후로 그는 쟁기를 버리고 그루터기만 지키면서 다시 토끼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랬지만 토끼는 다시 얻지 못하고 송나라 사람들의 비웃음 거리만 되었다. 지금 선왕의 정치로 오늘의 백성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은 모두 그루터기를 지키고 있는 부류와 같다. 





법가사상, 미래 사상

유가, 묵가, 도가는 농본적 질서를 이상적 모델로 상정하고 있다. 복고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서 신뢰를 갖기 쉽지 않다. 그래서 곽거의 이상적인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에 반해서 법가는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대응 방식을 모색한다. 

법가의 사관은 미래 사관 또는 변화사관이라서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법가사상의 특징은 변화를 인정하고,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는 현실성에 있다. 인의의 정치는 변화된 현실에선느 적합하지 않은 사상이라는 것이다.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인의의 정치를 주장하는 것은 고삐 없이 사나운 말을 몰려는 것과 다른 없다. 

세상이 변화하면 도를 행하는 방법도 달라질수 밖에 없다. 






옛날과 지금은 관습이 다르며, 시대에 따라서 방책도 달라야 되는 것이다. 만일 관대하고 여유 있는 정치로 절박한 시대의 백성을 다스리려 한다면, 그것은 채찍을 쓰지 않고 억센 말을 다루려는 것과 같은 것이며, 그것은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오늘날 유가나 묵가의 학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선왕은 천하 사람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백성 대하기를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한다.」


어찌하여 그렇게 되느냐고 반문하면 그들은 말한다.


「사법관이 형을 집행하면 그로 인해 군주는 즐기던 음악을 멈추고, 사형의 통지를 받게 되면 그 때문에 군주는 눈물을 흘린다.」


이것이 그들이 극찬하는 현명한 왕인 것이다. 군신관계를 부자관계처럼 하면, 세상은 반드시 잘 다스려진다고 하는데, 그들의 말대로라면 화목하지 않은 부자는 전혀 없어야 한다. 사람에게 부모의 애정보다 더한 것은 없고, 부모면 누구나 자식을 사랑하지만 자식을 반드시 잘 다스리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군주가 아무리 신하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어찌 반란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선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비길 수 없으며, 더욱이 자식이 반드시 반항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으니, 하물며 백성을 어떻게 다스릴 수가 있겠는가. 다시 또 법률에 의해서 법을 집행하고, 군주가 그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그 사실 자체는 인의를 나타내고 있지만 정치를 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형을 집행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 어진 일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형을 중지시킬 수 없는 것은 법 때문인 것이며, 선왕이 그 법을 없애지 않고 눈물을 별로 문제시하고 있지 않은 점으로 보더라도 인(仁)만으로는 정치를 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한비자』 <오두편>

_출처 : 나무위키



지금 정치를 모르는 자는 반드시 말하길, ‘민심을 얻으라’고 한다. 민심을 얻는 것으로 치세가 될 수 있다면, 이윤이나 관중은 쓸모가 없는 것이며, 다만 민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그만일 것이다. 백성의 지혜는 쓸 수 없으니, 마치 갓난애기와 같다. 대저 어린애는 뼈를 발라주지 않으면 복통을 일으키며, 고름을 짜 주지 않으면 점점 (병세가) 더해진다. 머리를 발라주고 고름을 짜는 일은, 반드시 한사람의 품에서 자애로운 어머니가 할 일이나, 오히려 아기가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것은, 갓난애기가 그 작은 고통을 당하는 것이 (나중에) 커다란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윗사람이 밭을 갈고 풀을 뽑으라고 재촉하는 것은 백성들의 생산을 늘리기 위해서이지만 (백성들은) 윗사람을 가혹하다고 여기고, 윗사람이 형벌을 엄중하게 고치는 것은 사악을 금지시키기 위해서이지만 백성들은 윗사람을 지독하다고 여기며, 세금과 곡식을 거두어서 창고를 채우는 것은 또한 기근을 구하고 군대를 준비하려는 것이지만 백성들은 윗사람이 탐욕스럽다고 여기고, 경내에는 반드시 본분을 알아 사사로움이 없음을 설명하고 아울러 신속한 싸움에 힘쓰는 것은 종들을 관리하기 위해서이지만, 백성들은 윗사람이 포악하다고 여긴다. 이 네 가지는, 나라를 편안케 하기 위한 것인데도, 백성들은 기뻐할 줄 모른다.


대저 성인(聖人)에 통하는 선비를 구하더라도, 백성들의 지혜를 참고하는 것은 기준으로 쓰기에 부족함이 있는 것이다.


옛날에 우(禹)임금은 양자강의 물을 틔어서 황하로 통하게 하였으나 백성의 무리들은 기와나 돌을 던졌으며, 자산(子産)은 밭을 개간하여 뽕나무를 심었는데도 정나라 사람들은 그를 비난하였다. 우는 천하를 이롭게 했으며, 자산은 정나라 사람을 보살폈는데도, 모두 백성들에게 비방을 받은 것이다. 대저 백성의 지혜는 쓰기에 부족하다는 것이 또한 명백하다. 그러므로 선비를 천거하여 어질고 지혜로운 자를 구해놓고선, 정치를 할 때 백성들에게 맞추기를 기대하는 것은, 모두 난리의 실마리가 되니, 그와는 함께 정치할 수 없다.


『한비자』 <현학편>

_출처 : 나무위키





술수를 아는 선비(智術之士)는 반드시 멀리 보고 밝게 살피니, 밝게 살피지 않으면 사사로운 것을 간파할 수 없다. 법에 능한 선비(能法之士)는 반드시 강인함을 꾀하며 굳세고 곧으니, 굳세고 곧지 않으면 간사함을 바로잡을 수 없다.
그 신하가 명령에 미적거리면서 일을 좇으며 법을 어루만져서 관리를 다스린다고 하여 중인(重人:권세가)이라 말하지 않는다. 중인이라는 자는 명령없이 멋대로 하고, 법을 이지러지게 하여 자신을 이롭게 하고 나라를 축내어 내 집을 편하게 하는데, 그 힘이 그의 군주에게 까지 이를 수 있으면, 이를 중인(重人)이라 말하는 것이다.
술수를 아는 선비는 밝게 살피니 받아들여서 쓰게 된다면, 또한 중인들의 숨은 뜻(情)을 간파할 것이다. 법에 능숙한 선비는 굳세고 곧으니 받아들여서 쓰게 된다면, 중인들의 간사한 행실을 바로잡을 것이다. 그러므로 술수를 아는 선비와 법에 능한 선비를 쓰게 된다면, 귀하고 중한 신하들은 반드시 줄 밖으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이러므로 술수를 알며 법에 능숙한 선비는, 더럽히는 것이 마땅한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있을 수 없는 원수가 되는 것이다. 더럽히는 것이 마땅한 사람이 중요한 일을 멋대로 하면, 나라 안팎이 그를 위하여 사용되어 질 것이다.
이로써 제후가 그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일에 반응하지 않으므로, 적국까지도 그를 위해서 칭찬하게 된다. 모든 관료가 그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업무가 진행되지 않으므로 군신이 그를 위하여 사용되어 진다. 낭중(郎中:벼슬이름)이 그를 의지하지 않으면, 군주를 가까이 할 수가 없으므로 좌우가 그를 위해 숨겨준다. 학자가 그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녹봉이 박해지고 대우가 낮아지므로 학자는 그를 위한 말을 하게 된다.
이 네가지 도움은 사악한 신하들의 스스로를 꾸미는 수단이 된다. 중인은 '군주에게 충실하여 그 원수를 다가오게끔 하는 것'을 할 수 없으며, 그 군주는 '네가지 도움을 뛰어 넘어 그 신하를 살피고 간파하는 것'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군주가 더욱 더 가려질수록, 대신은 더욱 더 (권세가) 무거워 진다.
          

『한비자』 <고분편>




적용과 나눔 1. 

이전시대의 객관적 상황들이있었고, 극 상황에 맞는 사상이 있었다. 공자와 맹자와 같은 인의예지를 말하는 는 철학도 있지만, 오늘은 한비자를 중심으로 한 법가사상을 보았다. 

난세에 여러각지 상황들을 정리학고 통일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법가는 이것을 '법으로 통일'의 방식으로 대안을 제시한다. 새로운 사회는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우리 사회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방법이나 시스템들이 필요한 것이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사회의 변화이다. 

한비자는 관료제를 통해서 군현에 파견을 보내고 중앙집권을 강화시켰는데, 이것이 지금 우리 시대에 맞는가? 한비자의 시대는 그게 맞더라도, 한비자의 사상을 이어서 생각하면 '변화'를 반영하는 제도여야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공무원사회, 관료제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러한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이 든다. 


한비자는 체계화의 천재였다


적용과 나눔 2. 

법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생각한다면 한비자나 법가와 같은 방식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법가는 서양으로 치면 '근대국가 만들기'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군주론과 비슷하게 한비자는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 '절대군주'를 합리화한다. 만약에 그 시대에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서 시스템을 안정화시키는 방법은 한비자의 방식이 당시에는 맞았지 않았을까? 

현재의 한비자는 그럼 어떻게 행동했을까? 이미 우리의 사회는 오히려 체계가 복잡다단하게 쌓여 있기 때문이다. 관료제도 몇차례를 거듭하면서 만들어지고 있고, 시대적 변화는 더욱 애매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이것을 한비자가 현재화되어서 온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 '법가'에 대한 신영복 선생님의 '불법행위와 범죄행위'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적용하게 되면 불법행위와 범죄행위가 발생하는데, 그 상황에 따라서 다른가치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해 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구분할까? 이에 대해서 '공론장'을 통해서 함께 시민들의 합의를 이루는 장이 필요한 것 같다. 




적용과 나눔 3. 

시황제하면 떠오르는 것이 '분서갱유'인데, 오늘은 법가와 연결해보면서 비이성과 시황제의 이미지가 바뀌게 되었다. 법가사상의 핵심은 변화를 정리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체계'를 잡는 것인데 진나라가 이러한 사상을 기반으로 천하는 평정하는 방식이 새롭게 보였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개인과 사회, 국가와 국가가 서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변화가 복잡다양하게 흘러가고 있다.

'형'으로써 '형'을 없앨 것인가? '예'로써 '형'을 없을 것인가? 형식으로 형식을 없앨 것인가?  


https://news.joins.com/article/4687690


상호 토론

'법'이란 무엇일까? 한자로 보면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만든 것이 '법'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서정적으로 이야기하면 '한사람의 마음에 흘러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법'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단순히 범죄나 행동을 제약하는 방법으로만 '법'을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시민사회는 '법'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절대군주라는 상징으로보면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는 같은 선상에 있는 듯하다.


민네이션, 적용과 나눔

'흐름과 정지' 사이에서 '흐름을 담아내는 체계'는 어떻겍 만들 수 있을까? 

우리 협동조합이 도전했던 '홀라크러시'는 우리의 생각이 투영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공자와 법가의 사상은 '인치'와 '법치'의 싸움이었던 것 같다. 물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사람에게 기댈 것인가? 아니면 법에 사상을 담아 놓을 것인가의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사이에서 플라톤과 한비자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구성했던 것이 아닐까? 결론적으로 철인과 절대군주라는 결과는 같았지만 플라톤은 '이데아를 아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한비자는 '안정된 체계로서 제도'를 담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법전통'에서는 대륙법과 영미법의 싸움에서 독일법철학과 경험주의적 구성주의 법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8세기 볼료냐 대학을 중심으로 로마법이 교회법으로 계수되면서 대륙법은 이전의 사상체계들을 '경성헌법'으로 정립하기 시작했다. 

헤르만칸토로비츠의 '자유법 운동'은 법의 고착화를 바꾸기 위한 자유법운동이었다. 법치 안에 인치가 섞이는 방법을 고민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시황와 연관되어 있는 영화추천이다. 2003년에 나온 '영웅'에서는 법가사상과 한비자의 정신이 잘 드러나 있다. 수용하기 이전에 사상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다음주부터는 '처음읽는 현대 중국철학'으로 넘어간다. 


https://www.youtube.com/watch?v=Zx6udz9xI6E

2003 영웅_이연걸 주연에 장만옥, 양조위, 견자단까지 대거 나오는, '진시황'과 '법가'의 이야기


한비자


젊어서 (秦)의 이사(李斯)와 함께 순자(荀子)의 밑에서 동문수학했다. 겉보기엔 냉철하고 달변가처럼 보이지만 언변이 뛰어난 이사와는 대조적으로 한비자는 말더듬이었다고 한다. 허나 학문에 있어서는 이사가 한비자에 미치지 못했다. 이때 한비자는 법가뿐만 아니라 도가유가묵가 등 여러 학문을 두루 섭렵하고 법에 의한 부국강병의 논리를 정립했다. 한비는 철학자 중에서도 형명가(刑名家)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형명학을 주장하는 사람이란 뜻이며 형명학은 명실론(名實論)[1]을 법의 적용에 응용하려던 일종의 법률학이다. 한나라는 전국칠웅 중에서도 문화가 떨어지고 당시에는 세가 기우는 형국이어서 한비자는 이를 걱정하여 여러 계책을 한왕에게 간하였으나 별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시황이 매우 존경했던 인물로도 유명한데,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한비자가 쓴 저서인 고분(孤憤)과 오두(五蠹)를 본 진시황이 크게 감명을 받아 "이 사람과 교유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라고 했다고 한다. 진나라의 재상이 된 이사는 "한비를 얻고 싶다면 한나라를 공격하라. 그러면 한비가 사신으로 올 것이고 그때 회유하면 된다"라고 진시황에게 간한다. 물론 그게 아니라도 어차피 공격을 했겠지만.

어쨌든 대륙 통일의 신호탄으로 한나라를 공격했을 때 한나라에서는 예상대로 한비자를 사신으로 보내어 침공을 막으려고 하였고, 한비자는 진시황에게 가서 한나라를 공격하지 말고 조나라를 공격해야 하는 이유를 진시황에게 설명했는데
  

    첫째. 한나라는 이미 진나라의 속국이나 다름없어 한나라를 공격하면 아무도 진나라를 믿지 않게 될 거다.  

    둘째. 한나라가 멸망하면 조나라가 즉각적으로 위나라와 동맹하여 조나라를 공격하기 힘들어진다.  

    마지막 이유. 조나라를 먼저 공격해 위나라와 제나라를 정벌하면 한나라는 편지 한통으로 항복하게 되니 굳이 공격할 필요가 없다.  


이상 3가지 이유를 들었다.

한비자는 원래 말더듬이라 달변가는 아니였지만 논리 정연한 글솜씨에 진시황은 넘어가버리고 게다가 한비자는 진나라 같은 대국이 요가를 이용하여 뇌물로 타국의 관리를 매수하는 건 법가사상을 기초로 하는 진나라에겐 맞지 않다고 요가를 욕하였다.

이를 알게 된 이사와 요가는 진시황에게 한비자는 한나라의 왕족 출신이라 진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도 없고 한비자가 이야기한 계책은 전부 한나라를 위한 계책이라고 설득하여 한비자를 감옥에 가두고 독살시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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