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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ul 24. 2020

도시 이야기

흥사단 청년리더_도시와 건축 분과 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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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흥사단이 함께 '청년리더'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작년에 이어서 올해 2기를 뽑았는데, 지원해서 나이제한에 딱 안걸리고 되었다. 올해는 조준접경지역에 가지는 못하지만, 철원과 임진강 그리고 울릉도와 독도를 다녀오는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오늘부터 총 5번의 강의가 아카데미로 진행되고 그 다음에는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한 발표를 준비한다. 





오늘 강의 목차

1. 인류최초의 도시
  1) 세계최대 선사 취락 
  2) 신석시 시대 대성당
2. 우리 역사의 도시
  1) 신시를 만들다
  2) 평양성에 도읍하다
  3) 천명을 받은 새도읍
3. 서울과 평양이 만들 공간


차탈휘위크 유적은 아나톨리아 반도에 있다.


아나톨리아, 터키

(Anatolia, 터키어: Anadolu, 그리스어: Aνατολή, 문화어: 아나또리아)는 서남아시아의 한 지역으로, 오늘날 터키 영토에 해당하는 반도(半島)를 말한다. 아나톨리아는 이전에는 소아시아(Asia Minor, 그리스어: Μικρά Ασία)라고 불렸다. 한글성서에서는 소아시아를 아시아라고 번역했다. 이 지방의 북쪽에는 흑해, 북동쪽에는 캅카스, 남동쪽에는 이란 고원, 남쪽에는 지중해, 서쪽에는 에게 해가 있다. 아나톨리아는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문명의 터전이었다. 아카드아시리아히타이트아르메니아로마셀주크 투르크오스만 제국은 아나톨리아에 있었던 중요한 나라들이었다.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어 수많은 문화적 교류와 충돌의 장(場)이 된 곳이기도 하다.현재 터키령의 아시아 측 흑해와 에게 해, 동지중해로 둘러싸여 서쪽으로 돌출한 대반도이다. 지리상으로 아나톨리아 반도의 삼면은 흑해, 에게 해, 지중해와 접하고 있고, 지역의 대부분은 넓은 고원 지대이다. 아나톨리아의 북쪽과 동쪽에는 산이 더 험하다. 흑해와 에게 해가 이어지는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 사이에 마르마라 해가 있다. 마르마라 해 북쪽은 유럽 대륙이며, 보스포루스는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던 지점이다.이 지역의 유구한 역사 덕분에 인구 역시 매우 다양하다. 

남동부에 주요 무슬림 소수 집단을 이루고 있는 쿠르드족 이나 아나톨리아 남쪽에 주로 사는 아랍인 외에도 아나톨리아 각지에 알바니아인 보스니아인 유대인 조지아인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이 소수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다.

아나톨리아는 그리스어 Anatole <태양이 솟는 곳>에서 유래되었다.



1. 인류최초의 도시 


  1) 세계최대 선사 취락 

인류 최초의 '취락', '도시' 등으로 불리는 터키의 '차탈휘위크 유적'은 bc 7000~6000까지 소급된다. 유적의 중심시기는 bc 5000~2000년 내외이다. 

초기 농경 도입기로, 주로 수렵채집으로 사회가 유지되던 '신석기 시대' 5000명에서 1만명까지 1천에서 2천호가 거주했다. 당대에서는 세계 최대의 선사취락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진흙 벽돌로 지은 직사각형의 집으로 지붕에서 사다리로 진입하도록 되어 있으며 외벽에는 문이나 창문이나 전혀 없는 특이한 모습이다. 

집 안에는 벽난로와 회덕이 있고 바닥보다 조금 높은 단은 잠을 잘 때 또는 앉거나 일할 때 사용되었다. 

식용 곡물과 유료, 종자와 견과류를 재배했으며, 가축을 길렀던 흔적이 있다. 

종교 구역에서는 놀랄 만큼 뛰어난 벽화가 그려진 신전들이 발굴되었다. 

상징이나 사용한 도구를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다. 

인류가 사냥-채집 생활에서 점차로 동물을 사육하고 식물을 재배하는 생활로 이주해, 이제 한 곳에 모여 사는 인류 최고의 마을 형태였다. 


사각형의 벌집모양으로 구성되었다. 홍수나 맹수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구조이다.
신전이라고 상상되는 공간에


  2) 신석시 시대 대성당_괴베클리 테페(배불뜩이 언덕)

유적 안에는 기원전 1만년 전부터 8000년 전에 지어진 건축물들이 섞여 잇고, 사회적 혹은 종교적 중심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오래된 유적은 거대한 t자 모양 돌기둥들인데, 토기없는 신석기 시대에 지어져 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거석 유적이다. 

가장 오래된 건물은 기원전 1만년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그 보다 조금 작은 석조 건축물들은 기줜전 9000년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괴베클리 테페에는 오히려 인간의 형상을 띤 조각들은 많이 발견되지 않았다. 몇몇 t자 모양 돌기둥 하부에는 인간이 팔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는 신과 정령을 상징한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상단에 있는 석재 들보는 사람의 어깨를 뜻한다고 생각되는데, 이와 같은 장식들이 초자연적인 인간을 숭배할 것인지, 조상을 떠 받드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인류의 종고, 신앙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bc 1만년 경에 지어진 인류 최초의 신전으로 지금껏 우리가 알던 '농업 - 정착 - 종교의 탄생 - 도시화'라는 문명발전의 이론을 무너뜨렸고, '정착-종교-신전-농경-도시화'의 이론이 등장하게 된다. 



2. 우리 역사의 도시


  1) 신시를 만들다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 밑에 신시가 있었다. 

신시에 나타난 상징은 왕권도 넘어설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고기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옛날 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어, 널리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홍익인간이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였다. 이에 천부인 3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물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 밑에 내려와 신시라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_삼국유사 권 1, 기이편 고조선 조 / 국존 일연 왈 고려충렬왕 7년 1281년의 기록



단군왕검, 평양

이에 한웅이 잠시 사람으로 화하여 웅녀와 혼인하였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이라고 하였다. 

단군왕검은 평양성에 도읍하고 조선이라고 불렀다. 

평양은 단기와 역사적 기록을 합쳐보면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2) 평양성에 도읍하다

4000여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로서 단군왕검이 도읍한 이래 기자조선, 위만조선, 낙랑과 고구려 등의 도읍지였으며 옛 이름으로는 왕검성, 기성, 낙랑, 서경, 호경, 유경 등이다. 

427년 장수왕이 이 곳으로 천도해 평양은 고구려의 수도가 되었다. 신라 발해의 남북국 시대의 평양은 신라와 발해양국의 변경으로 남겨졌다. 

고려시대에는 서경으로 불려 중요시되어, 황폐해진 평양을 부흥시켰다. 947년 고려 정종은 도참설ㅇ레 따라 서경성을 쌓고 천도하려 하였으나 귀족들의 불만과 백성들의 묘청, 정지상, 백수한등이 서경천도론을 건의하여 추진되었으나,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문벌 귀족들의 반발과 민심의 이탈로 좌절되었다. 


동명왕릉과 을밀대



  3) 천명을 받은 새도읍_한양


도읍을 옮기고 나라를 세우는 곳에 대하여 지리책을 상고해 보니, 대개 말하기를 '만갈래의 물과 천봉의 산이 한 곳으로 향한 큰 산과 큰 물이 있는 곳에 왕도와 궁궐을 정할 수 있는 땅'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산의 기맥이 모이고 조운이 통하는 곳을 말한 것이다. 또 이르기를ㄹ '지방천리로써 임금이 된 사람은 '수도'를 4방 5백리로 하고, 지방 5백리로 임금된 자는 수도를 4방 50리로 하였다 하였으니 이것은 4방 도로의 거리를 고르게 하기 위하여 말한 것이다라고 중추원 학사 이직이 말하였따. 

한양은 우리 나라의 거의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어서 전국을 관리하고 통치하는 데 유리하고 병풍철럼 둘러싼 백악산, 목멱산, 낙산, 인왕산은 북쪽에서 불어 오는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막아주고, 무엇보다 군사적인 방어에 유리한 지세를 갖추고 있다. 

일러한 군사적인 이점에 더하여 또 하나의 중요한 요건이 교통의 편리함이다. 한강의 물길을 이용해서 전국에서 세금과 곡식을 운송하기 쉽다. 산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평탄한 분지지형이고, 그 안쪽으로 청계천이 바깥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있어 식수를 구하기 쉽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자금성의 배치는 어떤 상징을 가지고 있는가?



경복궁의 교태전과 광화문의 원리는 무엇인가? 


유교철학을 표현한 건축

조선 초기 유행한 성리학에서 우주의 근본인 무극은 음과 양이 생성되어 내부에서 역동하는 태극과 같은데 음과 양의 궤적은 오행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 남녀와 세상만물을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경복궁 ‘교태전’은 음과 양이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태극이자 우주의 근본인 무극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대대손손 왕자가 잉태될 왕비의 침전이 지니는 의미와도 소통될 수 있다. 또한 교태전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을 양의문兩儀門으로 하여 음양이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하였다. 양의문을 벗어나면 왕이 잠자는 곳인 ‘강녕전康寧殿’이 나오는데 강녕전을 포함해 5개의 건물주2을 두어 음양의 자연운행 법칙을 표현하였다. 이처럼 조선의 궁궐은 외향적인 권위보다는 유학을 토대로 내면의 깊은 철학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유교적 계획원리는 경복궁 교태전 서쪽에 있는 국내 최대의 누각과 정자인 ‘경회루慶會樓’에서도 볼 수 있다. 주3 경회루는 임금이 외국의 사신을 접대하거나 연회를 하는 2층 건물로 기둥의 수가 48개이고, 전체 칸수는 35칸이다. 경회루를 둘러싸고 있는 연지는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연못 조성법으로 중국이나 일본은 자유곡선형의 연지를 조성한 데 비해 조선에서는 경회루처럼 궁궐에서 일반 민가에까지 모두 사각형의 형태를 고집했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이 투영된 것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대부분의 연못은 사각형의 연못 가운데 원형의 작은 섬을 두고 있다. 경회루는 세 개의 섬을 배치하여 역시 하늘의 세계를 표현하였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건축은 그 이전 시대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방정方正함과 검소儉素함을 강조하는 유교적 이념이 궁궐에서 부터 시작해 교육기관과 백성이 사는 민가에까지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유학이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를 받아들여 더욱 집대성한 것은 조선이고, 조선인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건축에서도 국가를 운영하는 도덕 철학을 깊숙이 반영했던 것이다.


이천오백년 전의 공자는 “예를 알지 못하면 사람으로서 설 근거가 없다不知禮無以立也”고 했다. 매우 바쁘게 살지만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현대인에게, 집 하나 지을 때도 그 의미를 생각하며예에 맞게 지었던 선인의 지혜가 다시금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https://ggcf.or.kr/pages/display/view.asp?MU_IDX=11&Dis_Idx=489



3. 서울과 평양이 만들 공간 


2050년 메가수도권 구상


평양과 서울은 비슷한 강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앙리 르페브르, 공간이론

행위주체와 공간의 변증법을 중심으로 르페브르는 다음과 같은 이론을 제시했다. 공간이론은 공간적 실천, 재현공간, 재현적 공간으로 구분된다. 

1. 공간적 실천 : 지각되고 실천되는 공간 경험을 의미한다. 
2. 재현공간 : 국가 혹은 공간 기획자들이 기입한 상징으로 존재하는 재현을 의미한다. 
3. 재현적 공간 : 공간을 경험하고 실천하는 이들이 재현 공간을 해석하고 재전유하여 생산된 공간을 의미한다. 


사람들에 의해서 경험되는 공간과 재현 공간 사이의 역동적 관계성에 따라서 행위 주체가 적극적으로 재현하기에 나서는 재현적 공간이 구성된다고 앙리 르페부르는 주장하고 있다. 

재현적 공간은 새로운 공간의 생산을 추동하며, 결국 생산 양식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상징으로 존재하는 재현된 공간은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과 상호 관계를 맺으면서 다른 공간으로 진화하게 될 것이다. 

체제와 도시 건설자들이 직접 나서서 기입한 재현 공간이 이곳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공간적 실천과 긴밀하게 연동되면서 또 다른 재현적 공간으로 이행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이나 재현된 공간의 의미가 모든 곳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https://ggcf.or.kr/pages/display/view.asp?MU_IDX=11&Dis_Idx=489





팀프로젝트, 아이디어

북한에 남길 수 있는 우리의 이상적인 도시 계획을을 만들어 보자. 

시간개념으로 볼 때, 과거를 볼 것이냐 현재를 볼 것인가? 미래를 볼 것인가? 

르페브르의 공간이론으로 볼 때 공간적 실천, 재현 공간, 재현적 공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남과북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서로 분석해보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남과북의 대표적인 도시와 기능을 살펴보고 앞으로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를 논이해보자. 

도시뿐만 아니라, 도시근교나 시골 지역에서 어떤 특성들이 나와야 하는지를 알아보자. 

평안이나 서울 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들의 도시건축의 역사를 알아 보자. 

도시의 대표적인 공간인 '광장'이 가지고 있는 미시적, 거시적 측면에서 분석해보자. 문화기술적인 요소나 사회적인 차원에서 논의해보면 좋겠다. 

북한의 도시는 생산의 도시이면서, 녹지의 도시, 상징의 도시의 역할을 모두 기능한다고 생각한다. 미래에는 결국 '상징의 도시'의 변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김일성 광장이나 그 외의 평양의 상징 공간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될 텐데, 상징적인 공간들의 변화를 살펴보면 좋겠다. 

미래의 도시, 광장 프로그램을 기획해보자. 남북통일 후 남북의 상징적인 '통일'광장은 어디가 되어야 하는가? 통합 후 미래 프로젝트 기획을 해보자. 

북한에서 '지하철 산업'을 생각해보자. 기차를 타고 통일이 되면 유럽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 보면 너무 신난다. 한반도의 평화지하철을 기획해보자. 

한반도 수도를 만들어 보자. 상징성이 있는 화합의 도시로 '신도시 건설 프로젝트'를 해보자. 

1. 북한에 이상적인 도시 계획 전달하기
2. 적극적 평화를 재현하는 공간
3. 도시기능 분석과 필요한 도시 기능 연구
4. 평양의 도시계획 및 앞으로 발전 가능성
5. 광장의 상징성 예측
6. 북한 도시공간 변화 예측
7. 통합 후 현실적 미래 도시 프로젝트
8. 한반도 평화의 지하철 사업
9. 지구평화 공원 내의 한반도 신수도 프로젝트 


위와 같은 주제가 나왔고 투표에 의해서 '9. 지구평화 공원 내의 한반도 신수도 프로젝트'가 앞으로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발전시킬 프로젝트가 되었다. 




민네이션, 생각

앙리 르페브르의 공간이론에서 '미래'를 시점으로 남북이 함께 '평화'를 생산과 재생산할 수 있는 재현적 공간을 기획해보자. 여기서는 평화를 요한 갈퉁의 '적극적 평화'의 개념으로 보고 이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적극적 평화를 재생산할 수 있는 공간을 기획해보자. 

상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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