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10 진짜 행복해진다는 건
결국 도청사실을 들켜버린 지안. 동훈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고서 종적을 감쳐버린 후, 폐인처럼 지낸다. '착하다'라고 자신의 인생을 인정해준 사람 앞에서 지안은 자신이 받았던 인간적인 대우를 '불쌍한 인간'이 받을 수 있도록 자신을 포기했다. 그렇지만 동훈은 모든 사실을 돌이켜서 생각해보니 지안이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을 도청해 왔었고, 그 도청 때문에 위험에 처한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들켜버린 지안에게 평안은 없었다. 편안함은 사라지고 불안과 우울이 가득넘쳐났다. 태어나서 한번들어봤던 '착하다'라고 말했던 사람에게 저지른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면 어디라도 숨어버리고 싶었을 게다.
인간은 그렇다. 누군가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면 그 사람에게만큼은 내 실수나 부족한 부분, 사악한 테두리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 만약에 그 사람에게까지 내 모든 것들이 들킨다면 나를 지지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몇년전에 그렇게 나를 의지하고 인정해주던 지인의 결혼식에 주례 선생님을 모시고 가야 하는데, 아침에 늦잠을 자버려서 그 결혼식에는 아예 못 가게 되었고 주례 선생님은 다행히 혼자 택시를 잡아 타고 가셔서 주례를 잘 하셨다. 그러나 그 이후에 나는 결혼을 한 지인이나 지인의 남편이나 주례 선생님을 정상적으로 못 보게 되었다. 그들의 분노나 실망도 있지만, 나 스스로 서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처럼 나의 잘못이 항상 내 등어리에 빨래집게를 몇십개나 찝어 놓은 것처럼 주뼛주뼛해서. 나는 가끔 그들을 만나면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이상하게 행동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괜찮은데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고 아마 죽는 순간까지 가지고 갈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나를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그 만큼 내가 지지를 받을 사랆인가를 생각해보면 다른 차원이 열린다. '나는 잘 살고 있나?' 이런 질문들이 마음 속을 온톤 수 놓고선 한땀한땀 치밀하게 드리밀기 때문이다.
사람만 죽인 줄 알았지?
별짓 다했지. 더할 수 있었는데.
지안을 찾아온 동훈 앞에서 지안은 어쩔수 없었다. 포기했다. 그리고 자조섞인 울음과 웃음을 연달아 갈아타면서 악랄해져 갔다. 그 동안의 마음 속 가득했던 동훈에 대한 미안함이 오히려 분노와 증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사람만 죽인게 아니라 당신이 아는대로 나는 사람도 속이고, 대표와도 짰고, 당신의 아내도 찾아갔다고 마음속으로 되내이고 "사람만 죽인줄 알았지?"라면서 쓸쓸한 인간이 되어 갔다. 아무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자조섞인 인간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은 냉소적인 웃음과 단어들 뿐이다.
그러니까 누가 네 번씩이나 잘해주래?
동훈 때문이다. 지안이 악해진 건 동훈 때문이다. 동훈에게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악한 사람이 되었다. 지안은 '편안함에 이르기'를 포기하고 결국 쓸쓸해졌다. 보통 사람은 네 번도 가지 않아서 잘해주기를 멈추는데, 동훈은 네번 이상 잘해주었다. 그럼 진짜다. 그런 도움이라면 내일도, 몇년 후에도 도와줄 것 같았다. 도와주지 않아도 도와줄 수도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서 네번 이상 잘해준 동훈에게 지안은 네번의 10배나 더 잘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고마워! 그지같은 내 인생 다 듣고도
내편들어줘서 고마워.
"나 이제 죽었다 깨어나도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동훈은 외친다. 무엇인가 결심히 한듯이, 행복해지길로 결심했다. 쓸쓸하게 행복도 지나쳐 보내는 동훈에게 무슨 일일까? "너! 나 불쌍해서 마음아파하는 거 못보겠고, 난 그런 너 불쌍해서 못살겠다." 동훈은 어른이 자기를 불쌍해 하는 지안이 안스러웠다. 불쌍하게 사는거, 쓸쓸하게 사는거 나만 알고 있으면 되는데, 누군가가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 버릴 때, 말로 할 수 없는 나 자신에게 미안한 감정이 밀려 온다. 다른 사람만 모르면 된다. 내가 불쌍한거, 가족만 모른면 된다 내가 쓸쓸한거. 그런데 알아 버리면, 내가 불쌍하게 사는거 내 마음속 깊이에서 잘게 쪼갠 삶의 구석구석에서 남이 발견하게 되면 살기 싫어 진다. 돈이 많고 적고, 내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정체성의 문제이고, 진짜 나의 본질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해못하지만 많은 이들은 이런 순간에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결심을 실행함으로 남들에게는 자기만 아는 나쁜인간이나, 결국 자기 명예 지킬려고 아까운 삶을 버리는 사람정도로 치부되지만 그게 성공한 거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은 '내가 스스로 불쌍하다는 것, 그래서 그 결론까지도 결국은 불쌍하게 마무리 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 행복할꺼야, 다 아무거도 아니야!
인생망가졌다고 수군대는거, 쪽 팔린거 아무것도 아니야
나 안망가져. 꼭 행복할께!
동훈은 다짐한다. 자기때문에, 자신이 쓸쓸하고 외롭게 사는 것때문에 무슨 짓이라도 다 하는 지안을 보면서, 행복해져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구도 자신의 삶을 걱정 안하고 이 세상에서 폐를 끼치지 않게 사는 방법은 자신이 행복한 거였다. 그래서 동훈은 잘 하지 않지만, 자신의 성격과도 어울리지 않지만 잘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행복해 보기로 결심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행복하게 살길로 결심할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진짜 행복해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의 행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 때, 그 순간 자체가 행복한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나는 당신 편이야!'라고 말한다. 당신이 행복해지는게 내가 행복해 지는 거니깐. 그러니깐 당신이 행복한 것만을로 나는 행복하니, 더 이상 당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아저씨가 정말로 행복했으면 했어요.
지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껴 운다. 되었다. 이젠 되었어. 동훈은 행복해질 꺼다. 그러니 이제 나도 행복해지겠지. 지안에게는 이것이 편안함에 이르는 길이었다. 누군가가 정말로 행복해지는 것이 내가 편안함에 이르는 길이다. 많은 이들은 이 진리를 찾아서 헤메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 진리를 찾지 않는다. 자기 안에서만 행복을 이야기하느라, 자신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가 볼 때 불안해 보인다. 스스로는 행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이 '행복해'라고 느끼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최초의 행복감도 어쩌면 비교에서 오는, 아니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었다면, 더 이상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기로 한 인간의 최후의 행복감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