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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Sep 18. 2020

존 폴킹혼_신은 정의로운가

점심시간에 짧게 철학하기_신정론

이론물리학자였다가 신학자가 된 존 폴킹혼은 성공회 사제로서 과학과 신학을 연결해서 신정폰을 풀어 간다. 신정론은 아주 오래전부터 고민이 되던 철학적인 주제로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신은 과연 정의로운가? 정의롭다면 왜 악한 사람을 처벌하지 않는가?

신은 과연 전지전능한가? 그렇다면 왜 자연재해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가?

만약 신이 정의로운데 전지전능하지 않다면 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신이 전지전능한데 정의롭지 않다면 신이 선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과 '악'의 개념, '도덕'과 '윤리'의 개념은 신으로 부터 만들어진게 아닌가?


오늘은 지난시간 안토니 플루를 지나서 존폴킹혼의 신정론을 짧게 살펴보려고 한다.


https://brunch.co.kr/@minnation/2112


존 폴킹혼은 이 세상의 악과 재난을 두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한가지는 '도덕적 악과 재난'이고 다른 한가지는 '물리적인 악과 재난'이다. 이론물리학자답게, 신학자답게 두가지를 나누어서 신정론을 펼쳐 나간다.


첫번째, 도덕적 악과 재난이 있는데도, 신은 과연 정의로운가?


일단 도덕적 악에 대해서 이런 고민을 해볼 수 있다. 신이 정의롭다면 도덕적으로 악한 사람들을 왜 당장 처벌하지 않는가? 명령한번만 내리면 전지전능한 신은 모든 악을 청산해버릴 수 있는데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존 폴킹혼은 2+2=4라는 명제가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세상에 질서가 잡혀 있는 상황에서 신이 명령을 내려서 2+2=5가 된다면 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신은 사랑의 신이기 때문에 독재자가 될 수 없고 사랑을 실천하는 신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기존에 만들어 놓은 질서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무엇인가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 말은 악인이 바로 잘못했다고 처벌 받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는 인격적이기 때문에, 사랑의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고 심지어 악을 선택하더라도 그의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악을 행한다고 해서 신이 사랑이 멈추면 그 전에 행했던, 그리고 앞으로 행할 사랑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악인의 인생에 개입해서 실시간으로 악을 선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랑의 신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된다. 틀린 선택을 하는 여지도 남겨둘 수 있는 것이 신이 가진 사랑의 영원성일라고 존 폴킹혼은 말한다


(물론 이렇게 되면, 이 세상에 악이 점점 더 넘쳐날 텐데 그럼 선하게 살려는 사람들만 손해보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럼 그 때도 신은 가만히 있을 것인가? 이런 고민들이 연이어서 나오기도 하고 심지어 '이신론'처럼 신은 그래서 세상을 만들어 놓고 개입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일단, 더 들어 보자)


두 번째, 물리적 악과 재난이 있는데도, 신은 가만히 있는가?


물리적 악과 재난은 자연재해를 말한다. 존폴킹혼은 여기서 물리학적인 진리를 설파한다. 맨틀의 움직임으로 자연스럽게 지진이 날 수 밖에 없고, 이에 대해서 쓰나미가 나고 이것이 기후를 변화시키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유전병과 같은 질병을 가지게 되는 것도, 유전자의 왕성한 활동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유전자를 빼면 인간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지구가 맨틀의 운동을 멈추고, 사람의 유전자가 활동을 멈추는 순간 생명은 생명으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이론물리학적 입장에서의 존 폴킹혼의 논지이다.


(그럼, 인재에 대해서 머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이 만든 자연재해는 다시 첫번째 질문은 인간의 도덕적인 악과 연결되어 버린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짧게 살펴본 것이라서 깊게 고민을 해보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해두자. 어차피 답은 제각각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생각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두면 좋겠지)



세 번째, 그럼 신은 도덕적이 악과 물리적인 재난을 가만히 지켜만 보는가?


여기서 존 폴킹혼은 자신이 사제임을 드러낸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이 이 세상에 왔고, 세상의 고통과 악에 대해서 공감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현실적인 치료와 대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 선악의 가르마길에서 '선'을 선택하고 자연재해 앞에서 미리 '예방과 준비를 통해 지혜롭게 대응'하고, 사랑의 신의 모습을 현재로 가지고 와서 사람들에게 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말이다.


예수님이 그것을 보여주었고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사람들은 모두 그 길에서 예수님처럼 도덕적 악과 자연적인 재해를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생명체 전체를 주관하고 있는 인간을 변화시켜서 이 세상의 도덕적인 문제와 재해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71vRjtns4GU&list=PLv8JyKtFz65cSWuiCY2P8LTdThi9HlX3D&index=17


오늘은 여기까지! 점심시간 30분동안 영상보면서 잠시 생각한 결과이다. 이제 이런 고민을 좀 더 깊게 해봐야겠지만 점심시간 머리회전이 아주 잘 돌아가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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