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신비에 대해서 레비나스는 '윤리와 무한'에서 애무에 대한 예시로 자세하게 들어간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에 대해서 사랑을 느끼고 서로의 눈을 보면서 키스를 하거나 몸을 만진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애무는 계속해서 쓰담듬고 만지고 스치고 머무르려고 해도 계속해서 미끄러진다. 만지면 만질수록 상대방을 모르게 된다. 쓰다듬을 수록 더더욱 쓰담듬고 싶지, 이제 알았으니 더 안 만져도 된다가 안된다.
몸의 신비, 타자의 신비는 결국 애무를 통해서 드러나는 계속해서 사라지는 타자에 대한 인식과 쌍을 이룬다. 우리는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야라고 하는 순간 그 사람이 다른 삶의 모습을 보이고 말을 해도 기존에 쳐 놓은 '세계관'을 통해서 타자의 신비를 가두어 두려고 한다. 그래서 계속 사라져가는 타자의 신비를 계속 그 자리에만 존재하는 내가 인식하는 타자로 만들어 놓을려고 한다. 생각 속에서 타자에게 신비와 생명을 빼 버리고선 내가 정의내리고 다스리고 움직일 수 있고 쉽게 치울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시키려고 한다.
애무의 신비 속에서 결국 타자가 태어난다. 서로의 관계가 깊어져서 임식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게되면, 정말 신비한 일이 생긴다. 그것은 완전히 모르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타자 '자녀'가 태어나는 것이다. '나'의 일부분이면서도 절대로 '나'가 아닌 존재가 태어나는 것이다. 신비 속에서 신비가 태어나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인류는 계속해서 신비함 속에서 타자들의 연대가 이루어져 왔다. 프로이트의 욕망과 리비도와 무의식으로 사로잡힌 성도착과 히스테리의 세계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신비로운 타자가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자녀를 키울 때 어떤방식으로 그 존재를 바라볼 것인가는 바로 이러한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내가 오늘 그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현상학의 물음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신비함으로 놓고 항상 움직이는 아이들의 성장을 기쁨맘으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의 성장에 대해서 자신의 원하는 삶의 모습을 투사하여 자신의 인식 속에서 원하는 아이를 만들려고 조치를 취할 것인가? 이것은 비단 아이들에게만 투사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더 가지고 있을 수록 자신의 인식의 감옥을 더 넓히는 작업들을 해 나갈 것이다.
0. 나오기
같음에서 시작해서 다른 것을 발견하는 것은 불안의 요소가 되지만 다름에서 시작해서 같음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은 선물이 된다.
타자는 무한하며 신비로운 주체인데, 그 타자와의 공통점이 발견될 때마다 나 역시도 신비로운 인간인 것을 깨닫게 된다. 같다고 전제하고 다른 것이 발견되면 그것은 타자를 바꾸던지 내가 바꾸어야 하는 불안의 요소가 된다. 대게는 자신이 힘이 있을 때는 타자를 바꾸려고 하고, 자신이 힘이 없을 때는 도망치려고 한다. 작은 경쟁들이 국가적 차원으로 연결되면 전쟁이 되기도 한다. 나의 내면에서부터 존재론을 뒤집어서 윤리를 먼저 실천하는 일은 그래서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쉬운 일이된다. 내가 갖혀있는 인식의 감옥에서 나오기 위해서 나의 구원자는 바로 내 옆에 있는 무한한 타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럼 옆에 있는 사람은 거추장 스럽고 불쾌한 존재가 아니라 나를 구원해줄 무한한 주체가 될 것이다.
레비나스의 이런 주장들은 항상 공격을 받아왔다.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이기적인 주체를 상정해놓고 이기적인 주체들끼리의 경합을 구조와 법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들의 '상상력'으로는 매우 힘든 일이 될 것이다.그러나 자라나는 아이들은 오히려 더욱 쉬울 것이다. 원래 인간은 이렇게 태어났고, 원래는 이렇게 자라나야 하기 때문이다.
레비나스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전공자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니지만, '뭐 어때'라는 생각으로 강의를 준비하고 하나하나 대본을 짜고 있다. 앎을 전제로 하지 않고 서로의 생각을 들어보고 나눔을 전제로 강의를 진행한다고 생각하니 사람의 표정 하나하나가 궁금해진다. 내일은 어떤 질문을 던질까? 이런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에마누엘 레비나스
리투아니아에서 유태인 부모 아래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3년 프랑스로 유학해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수학했고, 1928~1929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후설과 하이데거로부터 현상학을 배운 뒤, 1930년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9년 프랑스 군인으로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어 종전과 함께 풀려났다. 1945년부터 파리의 유대인 학교(ENIO) 교장으로 오랫동안 일했다. 이 무렵의 저작으로는 『시간과 타자』(1947), 『존재에서 존재자로』(1947), 『후설과 하이데거와 함께 존재를 찾아서』(1949) 등이 있다. 1961년 첫번째 주저라 할 수 있는 『전체성과 무한』을 펴낸 이후 레비나스는 독자성을 지닌 철학자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1974년에는 그의 두 번째 주저 격인 『존재와 달리 또는 존재성을 넘어』가 출판되었다. 그 밖의 중요한 저작들로는 『어려운 자유』(1963), 『관념에게 오는 신에 대해』(1982), 『주체 바깥』(1987), 『우리 사이』(1991) 등이 있다. 레비나스는 기존의 서양 철학을 자기중심적 지배를 확장하려 한 존재론이라고 비판하고 타자에 대한 책임을 우선시하는 윤리학을 제1철학으로 내세운다. 그는 1964년 푸아티에 대학에서 강의하기 시작하여 1967년 낭테르 대학 교수를 거쳐 1973년에서 1976년까지 소르본 대학 교수를 지냈다. 교수직을 은퇴한 후에도 강연과 집필 활동을 계속하다가 1995년 성탄절에 눈을 감는다.
서론
1장 레비나스, 그는 누구인가?
1. 레비나스의 지적, 종교적 배경
2. 레비나스 철학의 배경
3. 레비나스 철학의 프로그램: '주체서의 변호'
4. 주체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규정
2장 주체의 물음: 데카르트에서 레비나스까지
1. 근대에 관한 반성과 주체의 문제
2. 주체의 형성과 근대 형이상학
3. 근대 주체와 힘에의 의지
4. 근대적 주체의 이중성: 데카르트와 칸트
5. 탈근대적 주체: 니체, 푸코, 라캉
6. 윤리적 주체: 근대성과 탈근대성을 넘어서
3장 존재, 주체, 타자 - <존재에서 존재자로>, <시간과 타자>를 통해 본 레비나스의 초기 철학
1. 존재론적 분리와 익명적 존재
2. 주체의 출현과 존재 가짐: '여기'와 '지금'
3. 존재의 무거움과 초월의 욕망
4. '존재 너머로'의 초월: 고통과 죽음
5. 시간과 타자: 타자와의 만남
6. 타자성과 여성성
7. 타자성의 철학으로
4장 향유, 거주, 얼굴 - <전체성과 무한>을 통해 본 레비나스 중기 철학
1. 삶에 대한 사랑과 향유
2. 요소 세계
3. 향유와 주체의 주체성
4. 요소 세계의 무규정성과 내일에 대한 불안
5. '여성적인 것'과 집과 거주
6. 노동과 소유
7. 얼굴의 현현
8. 인간 존재와 죽음
9. 죽음 저편: 에로스와 출산성
5장 책임과 대속적 존재 - <존재와 다르게 또는 존재 사건 저편에>를 통해 본 레비나스의 후기 철학
1. 존재와다르게 또는 존재 사건 저편에
2. 나의 책임과 존재 모험
3. 존재 유지 노력과 타인과의 관계
4. 타인의 얼굴
5. '타인에 의한, 타인에 대한 책임'과 대속(代贖)의 의미
6. 대속적 책임의 실현과 비움의 주체
7. 제삼자와 책임: 정의와 국가 제도
8. 응답으로서의 윤리학
6징 고통과 윤리
1. 고통과 철학
2. 레비나스 철학과 고통의 문제
3. 고통은 쓸모 없는 것인가?
4. 고통의 현상학
5. 변신론의 몰락
6. 고통, 윤리, 주체성
7. 윤리와 고통, 대속적 고통, 나의 고통
7장 결론: 레비나스는 철학에 어떤 새로움을 가져다주었는가?
1. 서양 철학 비판과 비판철학의 가능성
2. 제일철학으로서의 윤리학
3. 신과 종교의 문제
본문에 인용된 문헌
부록 1_ 레비나스의 저작과 2차 문헌
부록 2_ 국내 번역된 레비나스 문헌과 2차 연구 문헌 및 학위 논문
강영안 (지은이) _타자의 얼굴
현재 서강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와 미국 칼빈신학대학원 철학신학 교 수로 재직 중이다. 1985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에서 칸트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네덜란드 레이든대학교 철학과 전임 강사로 형이상학과 인식론을 맡아 강의했고, 귀국 후 계명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거쳐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했다. 벨기에 루뱅대학교 초빙 교수로 레비나스를 연구했으며, 미국 칼빈 칼리지에서 초빙 정교수로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을 강의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 기독교학문연구회, 한국칸트학회, 한 국기독교철학회, 대한철학회, 한국철학회 회장, 인문학대중화위원회 위 원장,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두레교회와 주님의 보배 교회 장로로 섬겼다.
저서로는 『철학은 어디에 있는가』『어떻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것 인가』(한길사), 『주체는 죽었는가』『자연과 자유 사이』(문예출판사), 『타인의 얼굴』(문학과지성사), 『믿는다는 것』(복 있는 사람), 『강교수의 철학이야기』『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강영안 교수의 십계명 강의』(IVP), 『도덕 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인간의 얼굴을 가진 지식』(소나무), 『칸트의 형 이상학과 표상적 사유』(서강대학교출판부), 『종교개혁과 학문』(SFC출판부), 대담집 『철학이란 무엇입니까』(효형출판), 『묻고 답하다』(홍성사), 『일상의 철학』(세창출판사) 등이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시간과 타자』(문예출판사), 『몸·영혼·정신』『급변하는 흐름 속의 문화』(서광사)가 있다.
앞으로 진행되는 강의는 다음과 같은 주제로 진행됩니다.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또 내일부터 새로운 타자들과 신비로움에 대해서 나누고 함께 삶을 고쳐나가길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원래 우리가 만들어진 그 신비로움으로 타자의 얼굴에서 비로소 정의를 발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