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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Oct 12. 2020

나는 암울한 세대를 살고 있구나

후손들에게_베르톨트 브레히트


1
참으로 나는 암울한 세대에 살고 있구나!
악의 없는 언어는 어리석게 여겨진다.



주름살 하나 없는 이마는
그가 무감각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웃는 사람은 단지 그가 끔직한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줄 뿐이다.
 
나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그 많은 범죄행위에 관해 침묵하는 것을 의미하기에


거의 범죄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란 말이냐!


저기 한적하게 길을 건너는 사람을
곤경에 빠진 그의 친구들은 아마 만날 수도 없겠지?
 
내가 아직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믿어다오.


우연일 따름이다.  내가 하고 있는 그 어떤 행위도

나에게 배불리 먹을 권리를 주지 못한다.


우연히 나는 해를 입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행운이다하면, 나도 끝장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 먹고 마시라고. 내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기뻐하라고!


그러나 내가 먹는 것이 굶주린 자에게서 빼앗은 것이고,
내가 마시는 물디 목마른 자에게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내가 먹고 마실 수 있게는가?
그런데도 나는 먹고 마신다.
 
나도 현명해지고 싶다.
옛날 책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쓰여 있다.


세상의 싸움에 끼어들지 말고 짧은 한 평생
두려움없이 보내고 악을 선으로 갚고


자기의 소망을 충족시키려 하지 말고 망각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을 나는 할 수 없으니,
참으로 나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구나!
 
 2


굶주림이 휩쓸고 있다.
혼돈의 시대에 나는 도시로 왔다.


반란의 시대에 사람들 사이로 와서
그들과 함께 분노했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싸움터에서 밥을 먹고
살인자들 틈에 누워 잠을 자고


되는대로 사랑에 빠지고
참을성 없이 자연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나의 시대에는길들이 모두 늪으로 향해 나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도살자들에게 나를 들어내게 하였다.


나는 거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내가 없어서 더욱 편안하게 살았고,

그러기를 나도 바랐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을 그렇게 흘러갔다.
 
힘은 너무 약했다. 목표는
아득히 떨어져 있었다.


비록 내가 도달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히 보였다.


이 세상에서 내게 주어진
나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3


우리가 잠겨 버린 밀물로부터
떠올라 오게 될 너희들,


부탁컨데, 우리의 허약함을 이야기할 때
너희들이 겪지않은 이 암울한 시대를 생각해 다오.
 
신발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꾸면서
불의만 있고 분노가 없을 때는 절망하면서


계급의 전쟁을

뚫고 우리는 살아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였단다.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 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는 것을.


아 우리는 친절한 우애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자

애썼지만 우리 스스로 친절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세상을 맞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 다오. (1934/1938)
 

후손들에게_베르톨트 브레히트






1.

울고 있는 사람들이 울음을 그칠 때쯤

잦아드는 숨소리가 확성기처럼 내 귓가에 들린다


조현병에 걸린 사람처럼

이상한 옷을 입고 무도회장에 나타난 사람처럼


나는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같다

기대하지 않았던 무리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누군가에게는 전달해 달라는 외침을


어느정도는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시간이 도래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다

암울한 세대에, 그것이 암울하다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근근히 하루를 버티고 있기에

무감각한 이들보다 더욱 예민한 감성은


오히려 생각하는 것을 멈춰버렸다

끔찍한 소문에도 침묵하게 되는 것은


인간에 대한 기대 저벌렸기 때문일지도.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들에게도


침묵하게 된 것은

나뭇잎들은 계절을 따라서 옷을 갈아 입지만


여전히 비참한 이들의 세상에서는

모든 옷이 회색빛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기에. 


 나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세상의 싸움에 끼여들지 않고


나의 욕망을 소명으로 둔갑시켜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질식시켜버리는 구나


이 모든 것들을 '어쩔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걸 보니

나는 참 우울한 세상을 살고 있구나


민네이션_후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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