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자기일에 충실하고 스펙도 좋으며 자기 만족이 높은 '즐거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 사람들은 성과도 잘 내고 세련된 삶을 살기도 하고 지식인처럼 말도 잘한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머?"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자신의 삶을 즐기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 타자에 대해서는 사실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과 얼마나 멋진 명품 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도 "그래서 머?"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 말이다.
조직에도 당연히 이런 사람이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자기 시간을 자기꺼 처럼 잘 쓰고 누군가를 돕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하고 그 사업이나 프로그램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삶이 나아졌는지는 잘 돌아보지 않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그 사람들의 선택이고 책임이지"라고 말이다. 자유주의적인 시선에서는 당연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럼 그 사람이 있으나 마나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위해서 일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자기 자신을 위해서 멋지게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건 그 사람들의 선택이고 책임이지
요즘들어 기업은 사회적책임에 대해서 CSR을 넘어서 CSV라는 공유가치까지 나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없이 나만 잘 사는 것이 죄책감처럼 느껴지는 시기에 이제는 기업들까지 착한 기업이 되면서 착한소비와 환경적 소비 그리고 타인을 생각하는 비지니스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기업들에 손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기업들은 사람을 뽑을 때도 월급이나 복지제도가 아니라 '미션과 비전'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돕는 것'에서 그 사람이 인재상이라고 본다. 물론 실력이나 전문성은 당연히 기반이 되어야겠지.
같은 의미에서 기독교는 예전부터 삯꾼과 선한목자의 뚜렷한 대비가 있었다. 물론 명확하게 이 사람은 선한목자다 혹은 삯꾼이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경향성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만약 어떤 조직에 대표가 삯꾼이라면 사람들은 열심히 일을 하겠지만, 그 조직은 조금씩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자신들의 조직의 안위와 성과와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그에 대한 성과급을 받고,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지만 사실 그런 조직은 이 세상에 필요가 없을 경우가 많다. 그 조직이 만드는 프로그램이나 생산품이나 비지니스모델은 오히려 세상을 더 어둡게 만들 수가 있다. 삯꾼들이 있는 곳에서는 대부분 자기자신이 왕이라고 하는 외침들이 많이 들려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을 문제다, 바꿔야 한다고 비판할 수만은 없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인것처럼 살아가게 이 사회가 만들어 가니깐 말이다. (그래서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주 '뒷모습 거인'들을 언급한다. 앞에서는 초라한데, 뒤에서는 아주 큰 거인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선한목자와 같은 사람들이다. 자신을 잘 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한목자처럼 자신이 만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목숨까지 줄 수 있는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이다. 일을 하다보면 이런 사람들이 잘 보인다.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람들의 안위와 이해와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 어떻게 하면 이 친구들이 성장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사업이 이 세상을 조금 더 이롭게 하고 사람들이 삶의 문제에서 일어나서 자신의 당당한 삶을 살고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는사람. 조금은 느려도 옳은 길을 갈려고 하는 사람. 선한목자처럼 살아가는 이들에게서 나는 인간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나는 소위 말하는 선교를 핵심으로 하는 단체에서 어느정도 일했다. 신앙이 있다고 삯꾼처럼 살지 않고, 신앙이 없다고 해서 선한목자처럼 살지도 않는다. 그런데 사람의 특징이 '사회성'에 있는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보게 되면 그 조직이나 모임에 웃도는 어떤 분위기가 있다. 선한목자 한 사람 때문에 그 조직이 다른사람들을 위해서 일할려고 하거나 삯꾼 리더 한 사람 때문에 그 조직 전체가 이기적인 마음씨를 공유하는 것을 본다.
아침에 출근하다 보면 이 사람이 출근한 것과 출근하지 않은 것이 다른 것을 본다. 출근해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어디 지저분한 대가 없나? 불편한 게 없나라는 것을 돌아보는 친구들을 본다. 물론 나도 잘 못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이기적이다'라고 말하기에는 그 친구들의 뒷모습이 아른거려서 인간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게 된다. 세상은 공유지, 다시 말하면 '공유지의 비극'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푸른초장'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들. 항상 고민이다. 갈림길에서.
선한목자의 길을 갈 것인가? 삯꾼의 삶을 살 것인가?
없다. 당연히. 선한목자의 길을 간다고해서 돌아오는 것은 거의 없다. 잘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좀처럼 이 길을 잘 가지 않는다. 예수님은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지만, 나는 선한일처럼 보이면 바로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있다. 망했다. 인생. 어쩔 수 없지만 이 바닥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선한목자처럼 살고 싶어서 원함은 있으나 아직은 그렇게 살지는 못하고 있다. 사람인지라, 그런 선한목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잘 안보이면 외로워지고 쉽게 의기소침해지는 것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나는 가고 싶다. 그리고 속한 조직, 공동체, 삶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삯꾼들 그만 욕해야겠다. 시간이 아깝다. 내가 얼른 선한목자의 길을 들어서는 수 밖에 없다. 이게 논리적이지 않아서 머라고 설명을 못하겠지만 '타자로서의 자기자신'인 나의 무의식이 이끌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사람들은 내 뒷모습을 보고 판단을 하겠지. 내 앞모습이 멋질 수록 앞에서는 칭찬하겠지만, 나의 뒷모습 그러니깐 사람들이 아무리 무슨 말을 하더라도 내가 들을 수 없는 영역에서 나의 진정성이 드러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