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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Oct 22. 2020

언제까지 스펙 타령할래?

이제 좀 바꾸자 제발

1.

오랜만에 아침 일찍 출근했다. 날씨가 꾸리꾸리한게 마치 나의 마음과 같았다. 요즘들어서 마음이 사납다. 무엇인가에 짖눌린 것처럼 가슴 한켠이 내려 앉은 느낌이다. 보통은 나로부터 시작해서, 사회 곳곳의 문제들, 그리고 일어났던 일들의 원인, 사람들의 말 속에 숨겨진 저의까지. 모든 것들이 한 번에 영화럼 엮여 버릴 때가 있다. 보통은 금요일 저녁 집로 가는 버스를 탔을 때쯤 밀려 오는 감정인데 오늘은 새벽부터 몰려와서 혼났다. 오늘은  벨벨 꼬인 소리들을 해볼려고 한다.


https://brunch.co.kr/@minnation/1925


2.


그러니깐 남자들은 빌빌거리는데 여자들은 다 스펙 엄청 좋아


점심에 스터디를 하다가 우연히 듣게된 말이었다. 대형교회를 다니는 동료가 쉽게 내 뱉은 말이었다. 몇 만명이나 다니는 교회에서 언니들은 학벌도 좋고 스펙도 좋고, 집안도 화려하고 이쁘고, 몸매도 좋아서 어디 내놓아도 괜찮은데. 교회 오빠들은 생긴것도 특한게 없고, 집도 못살고, 학벌도 좋지도 않고 어디 하나 내 놓을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 언니들은 당연히 결혼을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남자랑 누가 사냐고. 그러면서 나에게 "민경인이랑 살면 너무 이상적이여서 책이나 보고 살림 신경 하나도 안쓸꺼야~돈도 못 버는데 말이지"(제 본명은 민경인입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던 다른 동료들이 "에이 아니에요~경인님은 책도 쓰고 강연도 하면 돈 많이 벌 것 같지 않아요?"라고 하면서 넘어 갔다. 나를 생각해주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 내내 우리는 스스로 같은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고, 일종의 사명감으로 이 일을 선택했음을'부끄럽게' 만들었다. 아니 왜 부끄러워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가슴에 가득찼다. 화가났다.


그 스펙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대형교회.

 


3.

한참 말이 많았던, 기안84의 복학왕의 일부를 보았다. 나는 이제야 '광어인간'의 성적폄하 발언이나 묘사, 기안84의 이상한 세계관에 발을 내딛은 셈이다. 그러나 오히려 광어인간 이전에 그가 그려 놓은 우울한 세계관을 기이하게 보는 중이었다. 어떤 중학생이 곱게 접은 성적표 배를 강에 띄워보내고 공부를 포기한 후에 빵공장에서 매일 단순노동을 하면서 참다가 결국에는 사기를 당한다는 우울한 내용이었다. 통장에 있던 3000만원도 다 날라가고 말이다. 그냥 이런 웹툰이 삶의 일부라는 것이 짜증이 난다. 비판하고 무시할 수 있지만 엄현히 현실로 존재하는 일이라서 말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공부'라는 것으로 스펙을 삼으면서 인간이기 이전에 직업, 직업이기 이전에 월급, 월급이기 이전에 '스펙'을 찾아야 할까? 더군다나 그 스펙이 이제는 신체까지 전이되면서 아름다운 몸매나 얼굴이 재산이 되었다. 그 사회 속에서 잘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 실제로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 내세울게 없는 교회 오빠 같은 사람들, 착하기는 어마무시하게 착한 사람들 혹은 악한 행동이 도를 넘은 사람들을 본다. 언제까지 이런 세상에 살아야 하는 걸까? 현실주의자들은 현실을 인정라고 하는데 그럼 이런 현실은 그냥 인정하고 나면 나의 계층이 어디쯤에 위치해있는지 알게 되고, 결국 그걸 받아들이라는 기득권의 논리가 되는 것이 아닌가?




4.

아직도 개새끼같다. 봉준호 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그의 영화에서 어떤 냄새를 맡는다. 인간을 '감상'의 대상으로 놓고 인간 내면의 분석과 이해가 자신의 일에 재료로 사용되는 것을 본다. 그가 사용한 상징과 인물묘사와 '기생충'의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의 일상을 본다. 청년들이 실제로 그걸 보면서 영화관을 떠나지 못하고 주저 앉았다는 이야기도 생각이 난다. 스펙을 바꾸기 위해 김우식과 그의 동생이 했던 장면들은 너무 사실적이다. 비오는날 반지하로 넘쳐들어 오는 꾸정물 속에서의 상황도 너무 리얼하다. 그런데 그래서 머? 그 분들의 삶이 이 영화로 좀 나아졌나? 김우식과 같은 친구들이 이제는 공부 열심히 해서 자기 친구 명문대생처럼 유학을 갔나? 그냥 냄새맡는 사람들로 전락시켜놓고 세계적인 감과 배우가 된 사람들에게서 나는 또 '개새끼'가 되어서 어떤 냄새를 맡는다.


https://brunch.co.kr/@minnation/1369


5.

대학원에서 댄스동아리회장도 하고 정부예산론도 듣고 총학생회 활동도하며 이리저리 싸 돌아다니곤 한다. 이미 대학원을 나왔지만 또 대학원을 다닌다. 철학아카데미에서 철학을 열심히 수련했고 이미 국제학을 전공했지만 또 방통대 교육학과 편입해서 이제 졸업을 앞두고 있다. 학위콜렉털라는 말을 들을 정도다. 흥사단에서 하는 아카데미에도 참석하고 서울시 청년리더도 하고, 다양한 외부행사와 함께 일하는 곳에서는 나름 10년을 채웠다. 일주일에 몇번 지역아동센터에서 멘토링도한다. 이정도면 괜찮은 인간일까? 몇 번 강의하고 몇십만원씩 받는다. 그런데 그게 머? 그게 한 사람의 어떠함을 결정할 수 있어? 이러면서 고귀한 인간이 된다고? 이런게 '스ㅡ펙'이라면서 내면에서 우쭐 댈 시간도 없이 나에게 묻는다. 스스로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데?" 도대체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 나에게 다시 물어보는 중이다. 어떤 이는 나를 보면서 지방대 나오고 재산도 없으니깐 그거 만회하려고 그러냐는 둥 그래봤자 너는 산동네 출신에 빈털털이라며 너의 분수를 알라는 둥 여러가지 핀잔을 준다. 이제는 그래도가볍게 쳐낼 수 있는 멘탈은 되는데, 도대체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https://www.youtube.com/watch?v=bofk1fRX-AE


6.

그러다가 문득 뒷모습 거인들을 만난다. 앞에서 보면 초라한데, 뒤에서 보면 거대한 산맥같은 거인들. 스펙이 아니라 리스펙할 수 있는 거인들. 그들은 전혀 자신의 스펙을 자랑하지 않고 별로 중요해 하지도 않는다. 벌써 20년 전이지만 충북 진천의 작은 마을에 봉사를 하러 갔더랬다. 거기에는 결손가정들이 많았고, 교회는 매우 낡고 허름했다. 거기 전도사님이었던 분은 아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면서 말씀도 전하고 삶의 여러가지 문제들도 마주하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 분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생물학과 의학을 공부하고 한국에 와서는 진천 시골마을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다. 말그대로 스펙을 리스펙으로 만든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이런게 스펙이 대단한데 와 어쩜 그럴 수 있지?하는데 말이다. 같이 일하던 동료는 미국명문대를 나오고서 하나도 티를 안내다가 갑짜기 미국에서 손님이 오면 아주 세련된 언어로 대화하고 또 일상에서는 영어를 잘 못한다고 안쓴다. 지금 그 동료는 내 사명은 우리아이들 제대로 키워보는 것이라면서 양육에 집중한다. 유학파에 이어서 이대에서 아동학을 석사로 따고도 별로 그런게 중요한것처럼 살지 않는 것 같다. 한 지인은 유학도 다녀오고 박사까지 땄지만 청소년들의 놀이문화를 회복하기 위해서 고금분투한다. 뒷모습 거인들이 이 뿐 아니라 도처에 앞모습 소인들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본다. 꽤 많이.


7.

한가지 방법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을 속물이라고 불렀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문화는 속물근성을 장려하며 그 욕심 때문에 경제가 돌아가는 판국이다. 더 높은 스펙을 위해서, 또 그 스펙을 가진 사람들이 되고자. 스펙이 돈이 되기도 하고 몸매가 되기도 하고,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고, 학벌이 되기도 하고, 집안환경이 되기도 하고, 부모님의 직업이 되기도 한다. 그 어느 것 하나 없는 사람들은 그럼 나가 죽으란 말이냐?라고 물어보면 "어 수 없지"라는 사람들 앞에 서 있다. 그러면서 현실이 어떻고 부동산이 어떻고 주식이 어떻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는 자신은 어쩌다가 좋은 패를 들고 태어났나보다. 만약 아무런 패도 없는 사람들은 그럼 어쩌냐는 말이냐? 이런 볼멘소리 해보았자 바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다.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너 정말 하나도 없구나?라는 말만 듣는다.


https://brunch.co.kr/@minnation/1683


8.

다시 뒷모습 거인들의 길로 간다. 그런데 조금 다른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간다. 이상적이다. 이건 이상적이지만 이상적인 사람들이 있어야 새로운 미래 비전이 있는 법이다. 나는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자가 되던지 아니면 이상주의적인 현실주의자가 되려고 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현실을 인정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속에서 쌓여 있던 사나운 감정들이 울화통으로 바뀌는 지점에서 나는 뒷목을 잡고 다시 책을 편다. '공부해서 남주자'보다는 '공부해서 바꾸자' 또한 공부만으로는 바꿀 수 없으니 함께 '모여서 바꿀 궁리를 해보자'한다. 그러면 어느새 '스펙 타령'은 저 만치 물러 간다. 스펙마귀는 썩~물렀거라!!


https://brunch.co.kr/@minnation/4


9.

대학원에서 소위 댄스 동아리 회장을 하면서 몇 가지 모함을 받았다.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지금 200명이 넘는 단톡방에서 내가 모함을 받고있고 다른 동아리회장이 나와 카톡을 한것을 캡쳐해서 올렸다는 것이다. 상황을 파악하고 보니깐 앞뒤 다 짜르고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악마적으로 편집을 했다. 그래서 그 전화를 건 사무총장은 나에게 이래도 괜찮냐는 것과 너가 정말 이랬냐는 것을 물어본 것이다. 차초지종을 설명하고 나니 "아니 그럼 이건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라고 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아 저는 대학원 공부하러 간거라서 체면이나 명성은 안중요해서요, 만약 이것 때문에 왕따를 당하면 어쩔 수 없고요 해명할 기회가 오겠죠?아니면 말고요!"라고 이야기했다. 그 분은 왠지 겸연쩍어서 당황한 듯이 전화를 끊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이상과 현실사이에 끊임없이 대립하지만 본분을 지키고 왜 공부하는지를 다시 되짚어 보는 시간이었다. 네트워킹하려고 간게 아닌 이상 나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10.


이제 제발 스펙타령 좀 그만하자


마무리하자. 자~이제 제발 스펙타령 좀 그만하자. 현실을 너무 인정하지 말자. 바꿀 생각을 하자. 이제 좀 바꿔보자. 이런 생각으로 사나운 마음을 진정시킨다. 어떻게 바꿀 것인가? 어떤 전략을 쓸 것인가? 이런 부분은 현실적으로 가지고 가되, 미래를 긍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새로운 꿈은 날마다 꾸고 또 꾸자.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시 새롭데 내 마음을 돌아보고 뒷모습 거인들을 만나러 가야겠다. 가는 길 내내 나는 더욱 더 내가 누구인지 잃어버리면거 가는 것이다.



https://brunch.co.kr/@minnation/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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