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간관을 이루는 지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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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지금 내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크게 영향을 준 사건들이 여러번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잘 몰랐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그들도 나름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나는 정말 좋은 기회를 만나서 이렇게 풍부한 관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친구들, 선배들 그리고 함께 이상을 품고 걸어가는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을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미래로 넓이뛰기를 하는 중이라고나 할까? 내면의 여러자아들이 만들어지던 시기, 만났던 사람들과 사상들을 불러 내놓고 밤을 세우면서 이야기하는 중이다. 내 안에 인간에 대한 생각들. 지금까지 내가 썼던 낭만과 여유의 글들과 함께 다시 되짚어 보려고 한다.
#1. 낭만적인 인간, 대학교 선배
대학교 1학년 때, 한참 새내기의 정신없는 열정을 주체할 힘이 없어서 이러지러 돌아다니던 시기. 기숙사 옆방에서 아주 준수하게 생긴 선배를 만났다. 얼굴은 매우 하얗고 눈은 엄청 커다랗는데, 이상하게도 안경을 쓰니 1900년 초에 이육사 시인과 같은 깊은 절재가 느껴지는 그런 선배였다. 나보다 6살이 많은 선배였는데, 초등학교 1학년때 6학년 선배들이 엄청 커 보였던 그런 느낌처럼, 그 선배의 정신은 헤르만헤세가 그리고 있는 데미안과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선배와 급격하게 존경하는 사이로 친해지게 되었고, 이윽고 지급은 카이스트 박사가 된 여자사람친구와 셋이서 함께 어울리는 시간을 가졌다.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사이 저녁, 선배와 앉아서 이야기하는 시간에, 선배는 나에게 물어봤다. '경인아~ 대학은 뭐하는 곳일까?' 고등학생의 주입식 교육에 그때까지만해도 사로 잡힌 나는 답이 없는 이 질문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이 사람은 머하는 사람이야?'라는 이상한 질문만 떠올리고 있었다. '음, 글쎄요, 지식의 상아탑이라고 하니 나름의 지식을 배우는 곳이 아닐까요?'라고 대답하고는 나도 사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때 나는 내가 마음에 드는지 않드는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그 답이 멀까?이러면서 선배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학은 낭만을 배우는 곳이야, 우리가 가진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사실은 우리에게 선물이란 걸 느끼는 시간인 거지!' 이런이런이런. 이게 무슨 말인가? 낭만적인 인간의 절정이라니? 낭만이 밥먹여주나?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보다는, 이 대화가 앞으로 나의 인생을 많이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예감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낭만이라는 것은 현실을 떠나서 어디론가 가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대학에서 낭만을 꿈꾼다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어 보였다. 시간이 지나서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낭만에 대한 심상들을 떠 올려 보니까, 낭만은 하나의 공간이고, 여유와 시간의 제한이 없는 무한의 공간이었다. 대학에서 낭만을 꿈꾸다는 것은 무한한 상상력과 함께 아름다움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았다. 카푸카의 이방인을 들고 다니던 그 선배의 그림자를 밟아가면서 나는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는 더더욱 후배들에게 그 선배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인생의 낭만을 배우는 곳에서 나는 최대한 인생을 낭만적으로 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시나 소설로 낭만을 구사했지만, 시간이 지나서 내 전공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낭만적으로 시를 쓰고, 산문을 쓰게 되었고 결국에는 나의 별명이 '낭만 민네이션' 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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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낭만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꿈을 꾸고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어떤이는 언어로, 어떤 사람은 그림으로, 어떤 사람은 노래고 그 낭만을 노래하면서 살고 있는 중이다. 낭만이 사라져 버린 도시에는 어둠만 가득한 노예들의 천국이 아니던가? https://brunch.co.kr/@minnation/555
#2. 용서하는 인간, 양치는 언덕
대학교 2학년이 되던 어느날이었다. 나보다 6살이 많은 95학번 선배형이 대뜸 누런갱지의 책을 건넸다. 잊혀지지도 않는 '청목사'의 허스름한 표지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양치는 언덕'이었다.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표지에 어떤 여자가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의례이 어떤 아름다운 동화인가보다 생각했다. 작가는 미우라아아꼬라고 했는데 그 때는 책을 거의 안 읽었던 날것의 소년시기를 바로 지난 나로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 선배형은 엉뚱하기로 소문이 나 있던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 이 책을 줄 때는 매우 분위기 있고 낭만적으로 전해줬던 것 같다. 누런 책 표지를 넘기자 마자 ‘경인에게’라는 짧은 필체가 들어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런 의미도 투영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책은 나의 서랍속 어딘가를 떠돌고 있었고 1년이 지나고난 어느날 아르바이트를 하러가는 출근 길에 우연히 집어들게 된 것이 '양치는 언덕'이었다.
미우라아야꼬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고 '길은 여기에', '이 질그릇에도', '빛이 있는 동안에'라는 자전적 소설도 많이 쓰고, 유명한 '빙점'을 통해서 일본 및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가였다. 기독교인인 그는 항상 영혼의 갈망과 인간의 죄악을 대비시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는 '용서'와 '사랑'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나는 책을 들었을 때 이런 배경지식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주인공인 바람둥이 로이지와 순결하고 창백한 나오미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곧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작가이자, 관찰자인 다케야마는 나 자신의 투영이었다.
양치는 언덕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안에 '용서'란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다른 사람을 관대하게 대하라! 왜냐하면 너 자신도 그렇게 대접받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기 때문이다'라는 구절과 함께 시작하는 청목사의 누런 갱지 위에 그려진 인간의 본성과 반대급부로써의 가능성을 들여다 보느라 거의 1주일간 푹 빠져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서는 내면의 울음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가 폭포처럼 터지면서 내가 사랑하지 못한 사람들, 내가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다시 나에게로는 '용서할 수 있음'에 대한 마음의 공간을 선물 받았다. 인간 주체를 어떻게 놓고 볼 것인가? 그것은 결국 '용서하는 주체'로 돌아가는 여정이었던 것이다. 그 때 내 나이 22살때 말이다. 지금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마음 속의 양치는 언덕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어느 공간을 선물하고서는 비판의 여백을 만들과 판단의 공백을 만들기를 여러번 시도한다.
#3. 윤리적인 인간, 엠마누엘 레비나스
철학에서는 보통 '인식론-존재론-윤리론'으로 사랑을 전개해 나간다. 독일철학에서는 당연히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가 결정되면, 그 기준으로 존재들을 설정하고, 그 존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윤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들길의 사상가라고 하는 하이데거의 전형적인 생각의 흐름이었고, '존재와 시간'에서는 존재가 존재자로 가는 사이 나치즘의 원초적 사상이 잉태되고 있었다. 하이데거의 젊은 두 제자는 하이데거의 인식론과 존재론에 깊은 상처를 받고 그를 떠나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한다. 젊은 애인이자 제자였던 한 사람이 '인간의 조건'을 쓴 한나아렌트였고, '시간과 타자'를 쓴 다른 제자가 바로 엠마누엘 레비나스였다. 두 사람은 정확히 자신의 스승이 가지고 있던 존재론과 인식론을 전복하면서 새로운 윤리를 만들어냈다. 한나아렌트에게는 '행위'할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이 탄생했고, 레비나스에게는 '무한한 얼굴, 타자'가 탄생했다.
레비나스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철학의 순서를 뒤집에서 '윤리론-존재론-인식론'으로 들어갔다는 점이다. 인간은 상대의 얼굴을 보자마자 무한한 윤리가 발생한다. 존재인지 아닌지 인식하기도 전에 무한한 윤리가 요청되는 것이다. 정의내릴 수 없는 인간의 얼굴은 신의 얼굴과 같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항상 윤리가 먼저이다. 누군가 타자를 죽이려고 한다면 두 가지 중에 하나이다. 타자의 얼굴을 지우거나, 자신의 눈을 가리거나. 하이데거는 타자의 얼굴을 지우는 동일성의 철학으로 존재자들의 왕국을 만들었다. 그러나 레비나스에게는 '그저 있는' 존재들의 존재를 '부정성' 자체로 놓고 어떻게 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과 마주치는 순간 무한한 '윤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레비나스를 만나고 나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신비한 기운이 감돈다. 특히 어떤 사람의 얼굴도 순간을 잡아낼 수는 있어도 계속해서 그 사람을 똑같이 인식할 수가 없다. 당연한데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것이 신기했다. 인간이 완전히 정의내릴 수 없는 타자의 얼굴 앞에서, 자신의 존재도 정의당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내가 그랬다. 수줍어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은 나에게 너무 많은 잣대들로 내면의 공간으로 언제나 도망치던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러한 순간에 스스로의 얼굴을 지워버리고 그들처럼 되어버리고 싶은, 그래서 비판과 판단에서 자유롭고 싶은 노예근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레비나스를 만나고 나서는 나 자신에게도 '윤리와 무한'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을 느꼈고, 나를 이해하고 화해하자 결국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때부터 였던 것 같다. 내 삶 속에서 다른 이들을 표현할 때 '신비'라는 단어와 함께 '무한'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던 것 같다. 누구도 정의내릴 수 없고, 누구도 평가할 수 없는 주체. '한 말'은 기억할 수 있지만 '하는 말'은 예견할 수 밖에 없고 잠재태로만 존재한다는 것을. 상대의 얼굴을 볼 때마다 무한한 영감과 존재의 향연이 일어나는 순간들을 경험했고, 비로소 나는 자유롭게 사랑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언제나 윤리가 먼저다. 만나보면 달라진다. 우리는 인간이라서 아무것도, 어떤 것으로도 타자를 평가내릴 수 없다. 동일자의 철학에서 걸어나오면 함께 다음과 같은 전제 위에 서게 된다. '같음을 상정하고 다름을 찾게 되면 발견되는 순간마다 적이 되지만, 다름을 상정하고 같음을 찾을 때마다 서로에게 선물이 된다' 원초적으로 우리는 타자의 내면에 절대로 들어가 볼 수 없는 다름의 존재들이다. 그게 사실이고 그게 진리이다. 다름에서 시작하는 무한과 신비로 나아가는 길, 레비나스에게서 배웠던 인간 주체의 본질이었다.
#4. 사랑하는 인간, 줄리아 크리스테바
힘겹게 라캉과 무의식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정신분석학자들이 '주이상스'라고 부르는, 인간이 비껴나갔던 '큰사물'과 마주치는 순간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본질'을 일으켜 세워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프로이트보다는 라캉이 훨씬 깊이있고 멋지다고 생각하던 순간 나는 철학아카데미에서 크리스테바의 사상을 만났다. ‘주체’라는 것에 있어서는 알튀세르를 통해서 '호명에 따라서 존재가 결정되는' 호명이론을 생각했다.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순간 나는 아빠의 정체성을 갖게 되고, 학생이라고 부르는 순간 학생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정체성은 결국 구조나 세계, 국가나 사회가 주는 것들이었다. 이정도의 주체'를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는 프로이트나 라캉이나 모두 '욕망하는 주체'는 당연히 그들이 그리고모든 사람들이 상정하는 자연스러운 주체 개념이었다. 실제로 삶 속에서는 나 역시도 욕망하고 그 욕망을 때론 이기지 못하기도 하고, 다른 이들도 대부분 그런것 같았기 때문이다.
'경계에 선 크리스테바'라는 주제는 크리스테바의 새로운 방향성을 드러내 주었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데 '모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프로이트나 라캉이 말하는 주체에 대한 탐구는 일단 그들이 '모성' 자체를 경험할 수 없는 자연적인 구조 때문에 틀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야 '인간은 사랑을 받는 주체에서 사랑을 하는 주체가 된다. 사랑은 오직 전이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다가 온다. 모성에게서 나오는 사랑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 이 때 부성의 사랑 역시도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사랑을 주는 존재들이 비천해지는 만큼 더 주체적인 인간이 된다. 바로 사랑받는 주체말이다.' 크리스테바의 사상이 매우 어렵다고 하는데 이렇게 나름의 이해를 갖게 된건 진지한 사랑과 응원으로 직접 사랑하는 주체라는 것을 알려주신 철학아카데미의 김선하교수님 덕분이었다.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그 동안 애매했던 남성과 여성에 대한 경계가 사라지게 되었고, 그 둘이 어떻게 공존하여 인간으로 변해갈 수 있을지를 알게 되었다.
인간은 오직 사랑을 받아야만 사랑을 줄 수 있으며, 그렇게 경험된 사랑을 통해서 다른 이들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실존주의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자기 안에서의 의미를 찾아나서는 여행보다는 자기에게로 흘러들어오는 것들을 기억해보고 되짚어 보는 사이에 인간은 점점 사랑을 받는 것에서 사랑하는 하는 것으로 바뀌어 갔다. 내가 그랬다. 내 안에 쌓여 있는 사랑으로 나는 다시 시작되었다. 크리스테바를 만나고 나서 인간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어떻게 더 사랑을 받을 것인가?'에서 '어떻게 더 사람들을 사랑할 것인가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서 내 안에 발동하는 ‘욕망’들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사랑받지 못함에서오는 사랑하고 싶은 것들의 변질이 많았다. 물론 존재 자체가 생동하는 ‘코나투스’로써의 욕망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하기 위한 욕구이기에 존재하는 새로운 연결방식이 찾아오면 그 과정이 지나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하는 인간으로서 나는 오늘도 다시 나를 보기 시작한다. 내 근원에서 끌어오는 사랑받음과 사랑함 가운데서 나오는 수 많은 관계와 연결들이 기대가 된다. 크리스테바에게서 많은 교훈과 깨달음을 얻었다. 아래 내용들은 강의를 들으면서 정리했떤 내용들이다.
#5. 계획하는 인간, 비그포르스
어려서부터 꿈은 정치가였다. 정치꾼은 ‘다음선거를 준비하고’ 정치가는 ‘다음세대를 준비한다’라는데 사실 내게는 다음세대를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몰랐다. 역사상 유명한 사람들은 항상 타고난 천재가 많았고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위인이라는 사람들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비교적 나는 그런 위인이 되지 못하였다. 자라면서 수 많은 실수들도 많았고, 인생의 여러 굴곡과 함께 그 굴곡을 만들어내는 구조에서 내가 좀처럼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른이들과 같이 조금씩 운명의 지평선 아래로 추락하는 중이었다. 대안이라는 것이 지식이 많다고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몇년 공부한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항상 추구는 하지만 닿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있는 ‘대안’이었다.
대학원을 오면서 ‘체제의 상보성’이라는 것을 배웠다. 체제들 간에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개념이었는데, 이것은 내가 계속 고민하고 생각했던 바로 그런 ‘유기체적 정치체제’의 근간을 이루는 생각이라서 빨려들듯이 배우고 탐구했다. 정치체제regime에는 ‘선거제도-정당제도-권력제도’가 서로 내구성을 갖추고서 체제의 상보성을 이루는데 이것은 시작이었다. 이렇게 정치체제의 내구성을 갖춘 상보성은 몸통과 같은 체제로 넘어가는데 그게 바로 ‘경제체제’였다. 경제체제 안에서는 내구적으로 ‘자유시장경제 제도Liberal Market Economy’와 ‘조정시장경제Cooperational Market Economy’의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 그리고 각각의 LME 와 CME 안에는 ‘운영구조(주주자본주의, 이해당사자 자본주의’, 중앙은행과 개별은행, 산별노조와 기별노조, 직업훈련체제’ 등의 세부 제도들이 상보적으로 연결되었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몸통을 지나니까 나타나는 것들이 바로 복지체제였다. 복지체제 안에는 ‘잔여주의(자유시장경제)와 조합주의(독일식의 조합원, 길드주의) 그리고 보편주의(북유럽국가모델)’로 나누었고 그 안에 ‘연금제도, 사회부조, 교육제도’ 등등의 내구적 제도들이 존재했다. 결론적으로 ‘정치체제-경제체제-복지체제’로 이어지는 제도적 상보성을 통해서 한 나라의 국가모델이 완성되고 이것들의 유기적인 조합이 민주주의 국가모델이 되는 것이었다.
바로 이러한 공부를 하는 가운데 스웨덴 복지국가모델 발제를 맞게 되었다. 내가 맡은 부분은 비그포르스의 정치적 노선이었는데, 여기서 나는 ‘계획하는 인간’으로서 스웨덴 재무장관인 비그포르스를 만났다. 34살의 나에게는 24살의 비그포르가 스웨덴 노당당의 강령으로 내놓은 대안들은 신기함을 넘어서 엄청난 도전장을 신청하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도 이걸 어떻게 하나’ 이러고 있는데 비르포르스는 말그대로 청년정치를 동시대의 청년그룹들과 함께 시작했던 것이다. 이론의 빈곤을 많이 느끼는 요즘인데, 비그포르스는 자신이 이론을 만들어가서면서 실제로 스웨덴의 정칙체제에서 시작해서 경젝체제, 복지체제를 개혁하는데 평생을 바친다. 그래서 1934년에 노동자와 경영자의 합의를 이루는 협약을 넘어서, 경제적으로는 노동당의 ‘렌-마이드너’와 함께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대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복지체제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스웨덴의 복지제도를 뒷받침하고 있는 켄트제도까지 구성된다. 말그대로 체제의 상보성에 입각한 나름의 대안들을 가지고서 스웨덴 ‘사회적 합의주의 국가모델’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때부터 100년을 계획하는 비그포르스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도 그런 100년을 책임질 계획을 하려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내 답은 교육이었다. 아동교육에서 청소년과 성인교육까지 고민하게 되었고, 아동의 작업지능에서부터 성인의 평생학습개념까지 배우고 연구하고 있다. 언젠가 우리에게 맞는 대안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확신과 기대를 가지고서 부단히 노력하는 ‘계획하는 인간’으로서 나도 살아가게 된 계기는 바로 비르포르스의 존재 때문이었다. 비그포르스의 사상과 이념을 자세히 설명해 준 홍기빈 선생님의 노력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비그포르스가 그렇게 대안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뤼드베리가 가지고 있던 이상주의적 인본주의와 룬드대학의 급진주의가 하나로 만나서 ‘이상주의적 현실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이상적 현실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이상을 품고 매일매일 현실을 살아내며 나름의 대안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한 고민의 하나로 유기체적 정치체제가 만들어지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McOTxqXsVc
나오면서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책들으 만난다. 그리고 그것들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인간관’에 기둥을 이룬다. 나 역시 이렇게 내가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지?라는 고민에서 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과 책, 그리고 제도와 이론과 사상가들을 되짚어 보니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인간은 이렇게 복잡한데, 한가지의 잣대로 어떻게 인간을 규정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나의 내면이 복잡한 만큼 내가 들어가 보지못한 타인의 내면은 얼마나 더할까? 인간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