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와 토대구조
#1
우리 안에 시스템변혁은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시스템의 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언어와 노동으로 간단하게 표상될 수 있다. 언어를 통해서 우리의 내면이 형성되고 움직인다. 먼저는 flow가 생기고 중첩되면 stock이 되어서 어떤 이미지를 남기게 된다. 노동을 통해서 우리는 경험한 것들 stock을 가지고 flow를 만들게 된다. 그래서 언어와 노동의 stock과 flow의 변증법이 발생하게 된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런식으로 우리의 정체성, 역사, 구조, 국가, 사회를 만들어 왔다. 이에 대해서 비판적 위기학은 근본적인 질문을 이데올로기비판에서 언어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이것이 루소의 시도이다. 노동의 문제에 있어서는 마르크스에게서 비판의 위기학의 단초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궁금한 것은 그렇게 해체된 언어와 노동을 어떤 방식으로 연결시킬까?이다. 과연 연결을 시킬 것인가? 코젤렉의 개념사에 나오는 역사의미론의 방식으로 다시 결합시킬지 궁금하다. 또한 열린총체성 개념으로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도 매우 기대된다.
#2
구조변화에 대해서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언어로 연결된 구조를 ideology로, 노동으로 연결된 구조를 structure로 구분하고 이것들의 합이 전체 system이라고 본다면. system transformation은 언어와 노동으로 구분된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ㄹ면 이데올로기의 변화, 구조(토대'로 볼 수 있으면 이후 토대구조로 사용)의 변화가 결국 최종적으로 시스템전체를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를 형상철학, 토대 구조 심층철학으로 놓고 보면 새로운 도식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두 철학 사이에 코라가 존재한다. 경계선이라고 할 수 있다. 코라는 어떻게 보면 현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라캉의 구조를 가지고 오면 형상철학은 상상계, 심층철학은 실재계 그리고 둘의 경계인 코라는 상징계로 볼 수 있다. 여기서 다시 코라를 두개로 구분하여 형상에서 오는 시뮬라크르를 상징계로 보고(이것이 언어이다) 심층에서 오는 시뮬라크르를 기호계로 볼 수 있다.(기호계적 코라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논의를 따라서 오게 된다.) 위와 같이 정리된 구조에서 심층철학에서는 폴리스가, 형상철학에는 노모스가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노모스들은 흘러가는 flow의 성격을 가지고 있고, 폴리스들은 정해져서 구조를 형성하는 stock으로도 볼 수 있다. 이 둘은 변증법적으로 연결되어서 형식과 내용이 된다.
#3
이러한 구조에서 기호계적 코라와 상징계적 코라 사이에서 시스템변화가 일어나게 되면 어긋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떼 '노마디즘에 따라서 노마드'들이 생겨나게 된다. 노마드들은 자신들이 출현할 수 있었던 심층과 형상에서 각각 잠재성을 가지고 유목하다가 하나의 집합이되거나 공동체가 되거나 사회, 국가가 되기도 하고 개인으로 남기도 한다. 노마드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다. 이들이 언어를 가지고온 경우 루소가 되고, 토대구조를 가지고 온 경우 마르크스가 된다. 노마드를 위한 열린총체성, 열린총체성을 만들어내는 노마드들을 생각해 보라.
#4
노마드 논의에서 한편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다중-공통체'의 논의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미 기존의 닫힌 총체성으로 만들어진 '제국'의 시스템을 언어와 노동으로 분화시켜서 해체하고, 그렇게 해서 생겨난 노마드들을 다중mulitude로 연결하며 이들의 노모스가 폴리스의 형태로 구성되는 것이 공통체common wealth가 된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