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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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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Nov 17. 2020

오늘도 나는 일어나서 걸어간다

"선생님, 물이 움직일 때에 저를 연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연못에 닿을 즈음이면,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거라."


그러자 그가 곧바로 나았다

그는 그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요한복음 5장_메시지 성경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었든지 혼자 결정했던지

어떤 자리에서 결정할 수 있는 순간


제도와 규칙으로 정해지면

그것에 자기 자신도 귀속된다


그래서 그 법칙이 누구에게데 통하도록

유지하고 보호하는 수호자가 된다


일명 '내자식 프리미엄'이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꺼다


그런데 내가 만들었으니깐

이제 나갈 수 없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정해진 규칙과 틀 속에서 나갈 수 없는 인간

더욱이, 자신이 만들지도 않은 규칙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운명

제한된 합리성 혹은 합리성의 저주에서


인간은 항상 애멀게 돌아다니다가

일탈을 하거나 순종을 하며 규격화된 인간이 되어 간다


그런데 일탈을 한다고 해서

좋은 것처럼 보여지는 것도 해답은 아닌 것 같다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38년된 병자가 경험했던 합리성은

'베데스다 연못'에 가장 빨리 도착하는 것이었다


경쟁과 승자독식의 세상 속에서

38년된 병자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고


그래서 그는 항상 뒤쳐지는 을 살다보니

어느새 마음도 생각도 육신도 뒤쳐지게 되었다


우리시대가 만들어 놓은 합리성의 덫은

우리를 이렇게 말하게 만든다


"어쩔 수 없어, 그 사람이 문제지~그렇다고

그 사람 인생도 책임질 수 없는데 괜히 말려들지 말자!"


그러고 나면 한결 수월해지는 마음과 시선으로

세상의 '밝은 부분'만 보고 살아갈 수 있다


물론, 등가교환으로써 38년된 병자가 있는 곳이나

그런 사람들이 지나갈 때 눈이 안보이는 병자가 되지만.


그 사람들이 없다고 느끼도록 애써 마음을 고쳐먹어야하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도 맛보아야 한다


그런것만 아니면 38년된 병자를 무시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우리가 가진 합리성에서는 아주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예수님은 그러지 않았다

38년된 병자를 들처매고 베데스다에 던지지도 않았고


존재하지 않은 사람들처럼 무시하지도 않았다

마치 문둥병자를 만나면 우리가 문둥병자가 되지만


문둥병자가 예수님을 만나면

문둥병자가 나았던 것처럼.


예수님은 한 마디로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과

몸의 상태까지 모두 바꾸었다


원래 그 사람이 만들어진 그 모습 그대로

회복된 그 모습 그대로.





38년된 문둥병자에게서 39세가 된

나는 무엇을 느끼는 것일까?


38년동안 살아온 고목과 같이 굳어져버린

마음의 한켠의 이상과 희망을 기대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가 살았던 그 시기의 사람들의 마음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동일하다고 여겨서


마치 역사의 평행이론같은 느낌을

지울수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누군가는 말씀을 읽고 너무 적용하게 만드는 것이

힘들다고 하지만 나는 모르겠다


말씀을 읽고 그가 일어날 수 있게 하려면

오늘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정밀의료도 있고, 일론머스크처럼 기술혁신도 있다

그 사람의 마음에 의지를 일으키는 일도 할 수 있다


무엇이든, 어디서든.

38년된 병자가 내 모습이라서


나는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예수님이 내 맘에 말씀하셔서


오늘도 나는 일어나서

걸어간다


내가 바로 그 병자이고

내가 바로 일어나야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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