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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ul 03. 2021

신채호의 무정부주의

처음읽는 한국현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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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철학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정리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프랑스현대철학, 독일현대철학, 영미 현대철학과 중국현대철학을 공부했었다. 오늘은 신채호 선생님의 무정부주의를 공부하면서 어떤 부분이 현재에 적용 가능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나눔 1.

신채호 선생님의 사상의 흐름을 잘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국가와 민족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무장투쟁을 기본으로 하는 아나키즘으로 바뀌게 된 모습들을 보게 되었다.

대동아공영권과 아시아공동체는 어떻게 다를까? 우리가 생각하는 현재의 아시아적 가치는 무엇일까?

프르동 평전이 최근에 나왔는데, 프르동이 이야기 한 협동조합을 살펴보아도 좋을 것 같다.

'jk깁슨 그레이엄'은 반권위주의로서 아나키즘과 자율적인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코뮤니즘, 국가를 통해서 자본을 통제하는 사회주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탈식민주의에 대해서 공부해보아야겠다. 제국주의때문에 식민지가 되었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식으로 다양한 논리들이 만들어졌는데 그 논리들도 역시 제국의 논리로 귀결되는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그럼 정말로 해결이 가능한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민족이라는 개념을 오히려 '말과 언어'로 다시 재편해볼 수 있지 않을까? 말하는 것과 쓰는 것들이 어떻게 동질감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부분들도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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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2.

학문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성리학, 양명학 등등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신채호 선생님의 경우 자신의 뿌리를 유학에서 시작했지만, 시대적 상황과 민중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과감한 변화를 시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중심에 민중의 철학이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볼 수 있지만, 철학과 사상에 대한 부분은 치열했지만 '조직적 기반'이 약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대중과 민중이 역동적으로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를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일제시대에교육과 외교로만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라는 고민들이 있었다. 어떤 조직은 외교를 통한 부분과 외국군과 연합해야 한다는 부분도 있었고, 어떤 조직은 무장투쟁을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조직도 있었다.

아나키즘을 한국어로 구분할 때 무정부주의라고 하지만, 사실 아나키즘은 무정부주의라고만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크로포트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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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3.

성균관 유학자로 시작해서 아나키스트가 되었다.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의 영향을 직접 받은 것도 아니다. 아나키스트가 된 이유가 궁금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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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철학을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자신이 읽고 느낌이 있는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한 해석을 한편씩 적어보자.

어쨌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행동하고 있는데, 우리가 행동하는 전제와 가정, 관점에 대해서 조금 더 정책적이고 정치적인 대안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다.



민네이션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는 3가지가 남지 않는가? 평등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한 공화주의, 자유를 중심으로 아나키즘이 있지 않나? 누군가는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어떤 사람은 공화주의를 주임으로 하고, 자유를 중심으로는 아나키즘적인 요인이 있지 않나?

우리의 모임은 어떻게 보면 권위자가 아니라 평등과 자유를 중심으로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려고 했다.

'만들어진 권위'에 대해서 우리는 계속 고민했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한 방법론들을 찾았다.

'뿌리에서 뿌리'라고 한다면 우리의 뿌리는 무엇인가? 우리 것에 대한 낭만이 없다고 하더라도 기원은 찾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우리가 '공통선'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한국과 북한이 '자본'과 '노동'으로 분화되기 이전에 우리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선에 대한 관점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무엇으로 우리의 전통을 생각하고 있는가?






① 상호주의, ②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③ 사회주의적 아나키즘, ④ 현대적 아나키즘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상호주의(Mutualism)는 프랑스의 프루동이 주창한 것으로 진정한 자유로운 노동시장이 있다면, 반드시 노동에 따른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어야 한다는 사상에 바탕하고 있다. 프루동의 상호주의는 그의 주저(主著)『소유란 무엇인가』에 잘 나타나 있다. 프루동은 아나키에 의거한 ‘권위는 질서의 적’이며, ‘소유와 경쟁은 전제적’이라고 간주하였다. 그에게 있어 ‘소유(권)이란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즉, 소유(권)은 어떠한 경우라 할지라도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으며, 소유를 토대로 하는 어떤 통치도, 어떤 공적 경제도, 어떤 행정도 가능하지 않다. 프루동은, “소유는 타도되었다!”고 선언하면서 공유와 소유의 종합이라 할 수 있는 ‘제3의 사회형태’를 ‘자유’로 제시하였다. 프루동의 상호주의는 그의 말년에 쓴 저서 『연방의 원리 및 혁명당의 재구성 필요성에 관하여(Du Principe fédératif et de la nécessité de reconstituer le Parti de la Révolution)』을 통하여 연합주의(federalism)로 발전하게 되는데, 러시아의 미하일 바쿠닌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상호주의는 바쿠닌과 그 추종자들에 의해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으로 변용․발전하였다.



둘째, 개인주의적 아나키즘(Individualist anarchism/Individual anarchism/Individualistic Anarchism)은 어떠한 결사체로부터도 독립된 개인의 자유에 중점을 두는 사상이다. 즉, 모든 집단․사회․전통․이념 등의 일체의 체제(시스템)에 의한 결정으로부터 벗어난 ‘개인의 의사’를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주의적 아나키즘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에 대응하는 사상이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이다. 이 사상의 선구자로는 헤겔좌파 출신인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를 들 수 있다. 그는 헤겔의 ‘절대정신’에 입각하여 개인으로서 ‘자기’의 절대자유를 주장하였다. 그 외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 벤자민 터커(Benjamin R. Tucker), 조지아 워렌(Josiah Warren), 로버트 폴 볼프(Robert Paul Wolff) 등이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을 주장한 사상가로 분류된다. 이들은 자신의 주장에 따라 다시 자본주의적 아나키스트(Anarcho-capitalist), 최소요구주의자(Minimalist), 리버테리언(Libertarian)*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방영준, 24쪽).



셋째, 사회주의적 아나키즘(Socialist anarchism)은 프루동의 연합주의에 의거하여 바쿠닌 등에 의하여 발전한 사상이다. 특히 프루동이 주장한 지배(혹은 통치)와 권위에 더하여 자본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의 결속과 결합을 강조한다. 이들은 사유재산의 폐지와 생산수단의 공유 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임금제도를 공격한다. 즉, ‘그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를 ‘그 필요에 따라 각자에게’로라는 슬로건으로 내걸고, 각자의 욕망에 따라 누구라도 공동의 창고에서 필요한 것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코뮌주의 사상을 부활시켰다(방영준, 25쪽). 바쿠닌의 집산주의(Collectivism)와 상호부조론(Mutual Aid), 그리고 아나르코 코뮤니즘(Anarcho-communism)(공동체적 아나키즘)과 아나르코 생디칼리즘(Anarcho-syndicalism)(조합주의적 아나키즘) 등이 이에 포함된다(방영준, 24쪽).



넷째, 현대적 아나키즘(Modern anarchism)이다. 위의 세 가지 유형의 아나키즘이 전통적 아나키즘이라면, 현대적 아나키즘은 평화․생태․환경․인권․민족․채식주의․페미니즘․반자본주의 등의 형태로 분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혹자는 ‘톨스토이주의’라 불리는 평화주의적 아나키즘(방영준, 25~26쪽)과 생태아나키즘(박홍규, 104~106)을 현대적 아나키즘의 주류적 흐름이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나키즘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서 보듯이 과거보다 훨씬 복잡다단한 구조와 형태를 띠고 있는 현대사회를 하나로 규정짓는 아나키즘의 흐름을 상정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인터넷이 등장한 이후 소위 ‘네트워크사회’와 결부되어 전개되고 있는 아나키즘의 새로운 운동 형태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http://newsdg.jinbo.net/detail.php?number=4893&thread=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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