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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Aug 07. 2021

철학은 어떤 일을 해야하는가?

박치우의 생애와 위기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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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양철학 1세대는 신남철, 박치우, 박종이다. 1세대라고 하는 것은 유학을 다녀온게 아니고 스스로 철학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모두 경성제대 철학과를 나왔고 가장 급진적인 철학자는 박치우이다. 신남철은 휴머니즘의 차원에서 문화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박치우는 인민민주주의 차원에서 총을  철학자였다.



내용요약


철학이 당파성을 가져야 한다고 박치우는 생각했다. 당파성이란 무엇인가? 이데올로기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말은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실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실천이 없는 철학은 철학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박치우는 조선일보에서도 일하고 중국에서도 활동하고 학교 선생님으로도 일했다. 중국활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박헌영과 함께 남로당 활동도 했다. 미군정 하에서 불합리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는 결국 전체주의로 치닫을 것으로 예상하고 인민민주주의에서 더 나아간 근로인민민주주의를 주장했다.


미군정은 일제치하에서 활동하던 친일파들을 그대로 행정직에 유지시켰고 그러한 불합리를 감추기 위한 다양한 요소들이 박치우가 더이상 남한에 머무를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물론 북한에서도 평탄치만은 않았고 세력이 쪼개지면서 결국 빨치산으로 남한에 급파되었다가 사망했다.


위기란 사회적인 모순이 격화되어서 생명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이러한 모순을 적대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모순은 교섭적 파악, 모순적파악, 실천적파악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발견되고 극복될 수 있다. 이러한 모순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이론에서 실천으로 넘어갈 수 있다. 박치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실천적 파악에서 실천적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실천이란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전략적으로 기획된 행위이다.


당파성은 박치우의 철학에서 중요하다. 철학이 진공상태에 있거나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주체의 조건에 따라서 달라진다. 철학을 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당파성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론이든 이즘이든 당파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철학은 이론적으로 당파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박치우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해서 ‘관조, 제작, 실천’을 이론, 사상, 실천으로 바꾼다. 실천 속에서는 이론과 사상의 변증법을 이야기한다. 순수한 탐구를 해서 이 세상이 어떻게 된다는 이론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결국 그것은 사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론들을 만들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론은 그 자체로는 공허하고 실천이 따라와야 한다. 그럴려면 제작이 있어야 하는데, 그 제작은 툴이 될 수도 있고, 틀이 될 수도 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이론적인 질문이다. 철학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혹은 철학은 어떤 책임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이즘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더 중요하다고  박치우는 생각한다.


파시즘의 비판에 대해서는 박치우는 파시즘이 등장한 근본원인은 자유주의라고 생각한다. 자유주의 정신 안에서 위기가 발생할 때 필연적으로 파시즘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일어나는 공간은 시민사회라는 것이다. 박치우는 이러한 형식적 논리에 의해서 이론에 그치는 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실천을 동반한 주체설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유주의는 형식논리이고 전체주의는 분유논리이다. 형식논리는 현실에서는 ‘개인주의’로 표현되는 데 개인이 1이라고 하고 그 1의 비중에 맞게 투표가 되거나 권리가 부여되는데 이것이 정말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1+1은 2가 절대로 될 수 없다. 박치우는 또한 분유논리를 비판한다. 이것은 신비주의적 유기체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주의는 전체에 부분으로 개인을 파악하고 이것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전체를 위해서 개인이 사라지는 논리인데, 이것도 박치우가 보기에는 형식적이거나 이론에 그치는 것이고 실제로는 계급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자유를 잃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치우는 근로인민민주주의를 주창하면서 사람들이 근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자신이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사회주의 사상을 옹호한다.


철학자 박치우




나눔 1.

박헌영과의 논쟁에서 순서와 역사적인 변증법을 생각하고 활동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조선공산당을 모태로 인민당과 여러 정당이 합쳐져서 남로당이 되어다는 것도 흥미로운데, 이것이 그 당시에는 합법적이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조선은 하나의 국가였기 때문에 조선공산당의 남쪽 분극으로 남로당이 만들어 졌다는 것도 재미있다.

철학이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책임을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정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박치우는 실천을 하는 사람이여서 계속해서 이러한 논리들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론과 이즘이 있는데, 이즘없는 이론은 쓸모가 없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즘을 이해서 이론이 존재한다고 본다. 그럼 교조주의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도시 계획은 당파성이 드러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의 모습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추구하는 이즘에 따라서 다른 모습일 현실에서 건설될 수 밖에 없다.

연구는 비당파적으로 해야 한다?는 맞는가? 그런데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는 결국에는 어떤 도구를 선택할 수 밖에 없고 결국은 가치 중립적일 수 밖에 없다.

퍼실리테이션이 가진 당파성은 무엇인가? 퍼실 안에서도 다양한 접근방식과 도구들이 있는데 말이다.


나눔 2.

이시대의 철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위기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시대의 위기는 삶과 직결되는 위기는 무엇인가?

박치우의 시대와 우리의 시대는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겪는 위기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생명과 삶이 곤경에 처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고민들을 해보아야 한다.

우리시대에는 ‘이즘’은 박치우가 말하는 것과 다르게 ‘실천’이 빠져 있다. 이것은 오히려 우리 사회가 이즘을 없애기 위해서 만들어낸 프레임이라고 할 수도 있지않을까?

방법론이나 플래폼 등등 혁신적인 것이 출현하고 이것은 진보적이다. 그러나 일정시간이 지나면 거기에 당파성이 부여가 된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을 보라. 문자를 보낼 때 돈을 내던 시절이 있었다. 카카오톡도 유료화하려고 하다가 무료가 되었다. 문자가 했던 기능을 카카오톡이 대체했고, 무료로 사진과 동영상, 금융까지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플래폼이 독재화되었다. 세계적으로 독재적인 플래폼이 되었다. 산업과 연결해서 다른 방식의 독재가 시작되었다.

삶에서 모순이 계속 생긴다. 그런데 나의 신념대로 사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박치우는 그런 의미에서 신념대로 살았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생각한 이론과 철학을 실천으로 이어진 것 같다.

생명에 대한 위협에 대해서 ‘자살’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철학이 자살과 연결해서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철학적 기반이 사람들에게 삶의 의제를 다루어줄 수 있지 않을까? 의지와 희망이 없어져서 자살을 하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 철학은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나눔 3.

하루하루 위기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다. 역사적으로 위기는 모두 다르다. 해방정국에서는 더 거대한 위기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위기는 코로나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살아남는 것이다.

위기는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면 위기가 아니다.

약자들은 항상 위기에 처해 있다. 엘리트 중에서는 자신이 위기에 처해 있지 않지만 그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런데 위기를 정작 겪는 사람들은 위기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위기에 처한 약자들은 주체가 되지 못한다. 엘리트의 전유물이 된 정치는 이렇게 모순이 되어 간다.

철학적개념을 이야기 하는 것도 그 시대와 사람들을 떠나서 생각할 수는 없다.

이데올로기가 ‘이즘’인데, 오히려 ‘이즘’이 ‘현실모순’과 연결되면 우리가 사용하는 이데올로기의 부정적인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당파성에 대해서도 고민이 된다. 이즘을 실천하기 위해서 당파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이즘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다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우울은 모순과 위기의 핵심에 있지 않나? 어떻게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되는가?라는 책이 생각이 났다.


나눔4

‘형식주의’에서 개인을 다루다가 결국 시민사회 안에서 부르주아 혁명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인간의 특성을 추상화시키지 않고 규정할수 있는가? 주권이 특권층이 아니라 당사자에게 주어져야 하는게 아닌가?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라 직접민주주의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권력이나 힘이 누군가에게는 몰리게 되지 않는가? 욕구를 어떻게 받아줄지, 수용될지? 이런 고민들이 있다.



질문과 토론


‘박치우의 인간론이 실제로 혼돈을 만들지 않을까?’


박치우의 비판은 현실에서 1/n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각자가 주권을 나누어 갖자고 하는 것보다는 당파성의 관점에 서 봐야 하지 않을까?

박치우의 문제의식은 무엇을 위한 문제의식인가?

최대한의 공평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최대한으로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근로 인민을 추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자유와 평등을 지향할 때 ‘노동’이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근로 인민을 이야기할 때 지금의 개념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국가개념이나 구조를 놓고 이 당시의 문제나 대안을 생각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민네이션, 생각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는 과연 정치인가? 그것은 아마 정치가 아니라 통치일 것이다.

오랜시간 변증법을 고민해왔다. 이런말을 하면 누군가는 사회주의로 바로 가려고 하지만 사실 변증법은 오히려 ‘생활’, ‘모순’, ‘갈등’과 연결되어 있다. 실제 우리의 삶은 갈등의 연속이다. 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변증법’으로 볼 때는 결국 한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야 가야하는 과정이다. 갈등을 통해서 해결할 수있는 수 많은 위기들이 있지 않은가?

변증법은 모순의 논리인 동시에 화해의 논리이며 결합의 논리이다.


http://ephilosophy.kr/han/5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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