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홍은 신남철, 박치우와 함께 1세대 근대한국철학자이다. 그 기준은 경성제국대학에서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했으며, 전통을 이어 받지만 비판하고 외부의 철학을 배우지만 비판적으로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문제의식은 비슷했지만 대응방식은 달랐다. 신남철은 문화를 중심으로 대중운동을 했으며, 박치우는 빨치산으로도 활동한 총을 든 철학자였다. 반대로 박종홍은 처음부터 강단의 철학자였다. 1960년대 이전까지는 철학을 했고 그 이후에는 박정희정권의 독재에 부역한 철학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그 이전에도 조선총독부에서 일한 것과 일제치하에서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을 비판하는 것보다는 받아들였다는 부분에서 평가가 갈린다. 가장 유명한 것은 ‘국민교육헌장’을 작성한 것이다. 그의 철학은 여기에 모두 함축되어 있다. 10월 유신을 긍정함으로써 독재에 부역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박종홍의 철학은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시작해서 헤겔로 간다. 박종홍은 1903년에 평에서 태어났으며,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고 1916년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따. 17세에 삼일운동에 가담해서 일본경찰에 연행되어 유치장 신세를 지기도 했다.
철학은 나에게서 부터 시작해서 우리로 간다. 존재는 현실적 존재이고 이것은 실천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박종홍은 부정성을 중요한 모티브로 잡았다. 인류의 역사로 보면 부정없이 창조가 있을 수 없다. 세대에 대한 부정이든, 현재 존재하는 시스템에 대한 것이든, 이전의 이데올로기이든 부정을 통해서 현실에서 방향을 찾는 것이 인간이다. 나의 철학이 우리의 철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일제치하에서 이승만, 박정희까지의 역사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문제는 공동체의 확장을 어디까지 갈 것인가?와 ‘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이다. 부정성 자체가 현실이다. 주체는 객체와의 상대적 주체가 아니라 객체를 발전의 계기로 삼는 역사적인 실재이다. 객체와 주체의 대립이 아니라 객체까지 내표한 주체를 설명한다. 인간은 부정성의 자각에 의해서 역사적 현실에 있어서 주체적인 실천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인간은 현실에 창조적으로 대응한다. 이것을 박종홍은 ‘창조적 부정’이라고 불렀다. 현실적인 창조는 ‘기술’과 ‘정책’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이것은 과학철학과 사회철학의 대응이라고 볼수 있다.
박종홍은 한국철학에 대해서 분석적으로 접근한다. 일제시대에는 조선의 역사에서는 ‘철학’이 없었다는 일제철학자들을 반박한다. 특히 박종홍은 한국철학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 ‘퇴계이황’의 철학을 강조했다. 박종홍이 이황의 철학에서 중요하게 여긴 것은 ‘경’이다. 이황은 참된 도리를 이론 속에서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쉽고 분명한 일상 속에서 찾으려는 데 있었다. 스스로 참되려는 방법이 바로 경이다. 경은 외면의 용모와 행동을 스스로 단속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면의 생각과 감정까지 스스로 제어하는 노력이다. 이를 통해 인간은 도덕적 심성의 수양은 물론 보편적 이치의 탐구를 준비한다. 성리학에서 경은 도덕함양과 이치탐구를 위한 태도이며 방법이다. 따라서 박종홍은 ‘경’을 현대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향내와 향외, 이론과 실천을 관통하는 진정한 ‘참’을 구하는 방법이 된다. 경이 일상의 퇴폐성, 즉 비본래성 속에서 본래적 존재방식을 잃어버린 내가 본래성을 회복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현실적 존재의 실천적 기반을 설명할 수 없는 실존주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경은 향내와 향외,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종합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적 근거가 된다.
박종홍의 퍙가는 엇갈린다
박종홍은 경이 내면의 참을 통해 외면의 참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고, 내면의 참과 외면을 참을 통일시킬 수 있다고 본다. ‘향외적인 진과 향내적인 성은 본래 하나의 참이었던 것이다’라는 주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전통철학 전승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답습이 아닌 새로게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고저누흥이 모순된 기현상일 수도 있고, 외래문화가 내면적으로 충분히 숭요되지 못하고 성급한 추종에 급급한 상황에서다시금 뒤섞이는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창조와 새로운 건설에 있어 고전이 옛것이면서도 가장 새로울 수 있고, 먼 것이면서도 가까울 수 있다.
박종홍은 야스퍼스가 주장하는 신에 의존하는 타력에 의한 초월과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주체에 의존하는 자력에 의한 초월이 아닌 이를 넘어선 ‘부정을 통해 창조로 나아가는 힘’, 즉 변증법적 과정을 중으로 해석한다. 박종홍의 후기에는 부정과 창조의 철학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나 박종홍은 중요한 것은 간과한다. 지금의 현실이 과거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전통과 고전에서 우리는 무엇을 극복하고 무엇을 전승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 새로운 창조와 건설에 전통철학이 중요한 요소고 될 수 이다는 박종홍의 주장은 현재에 대한 역사적 분석과 사유, 과거의 냉철한 평가와 반성 위에 있지는 않다.
나눔 1.
박종홍의 철학은 흥미롭다. 그러나 ‘소외된 사람과 배제된 인민’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다면 국가주의자나 독재에 편입한 사람이라는 불명예는 듣지 않게 되지 않았을까?
박종홍의 이러한 평가는 생각과 실천이 분리되어서 일어난게 아닐까?
박종홍에게는 철학적 실천을 할 수 있는 모델이 박정희가 아니었을까?
아직도 국민교육헌장이 생각난다. 그 당시에 못 외우면 체벌을 당하기도 했고, 생각을 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도구였다.
공동체라는 개념도 존재하는 개념은 아니었다. ‘공동체’라는 것은 상상의 공동체에서 나왔다. 민족개념도 사실 만들어진 개념이다.
나눔 2
삶과 철학이 분리된 것이라기 보다는 ‘본인의 철학’대로 실천한 것이 아닌가?
현실적인 실천이 기술과 정책으로 구현되는데, 이것을 실행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이것이 국가가 아닌가? 그의 철학에서는 이러한 ‘우리’, ‘공동체’, ‘국가’ 안에서 ‘나’라는 주체가 소멸되어 버린다.
일그러진 모더니스트갔다. 사실 ‘부정’이라는 것은 현대에서는 자연적인, 히피같은 느낌이 아닌가? 그런데 박종홍은 그렇지 않았고 다시 현대성으로 나아간다. 부정성을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응으로써 창조는 바로 외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리학을 변증법에 연결시키는 작업은 매우 재미있다.
‘우리’라는 정체성은 착각을 동반한다.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다양성이 무엇인가 하나로 통일되는 것 같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청년’을 규정할 때 호명되는 청년담론은 한국계하국인으로서, 남성이면서 수도권 거주, 4년제, 이성애자가 붙는다. ‘우리’에게. 배제된 존재들이 있다.
킹덤 아신전을 보면서 ‘국사’를 생각했다. 민족이라는 개념을 ‘혈연’을 중심으로 계속 정제된 개념들이 있다. 백의 민족이라는 테제말이다. 아신전에서는 난민의 대한 비유, 민족의 바운더리, 한반도에서 사는 사람들의 민족정체성, 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중앙정부의 착취 등등 말이다.
나눔 3
왜 그에게 유신은 중요하게 되는 것인가? 박정희와 함께 정치행위를 했다면 그 당시의 부정성을 왜 대응하지 않았을까?
융의 내향성과 외향형으로 구분하는 것을 가지고 향내와 향외를 구분하는 부분은 흥미로웠다. 현재 mbti와는 조금은 다르다.
민네이션
현실에 발을 두고 이상은 다른 곳에 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박종홍처럼 되지 않을까? 강단철학자들은 현실은 왠만큼 살만하고 문제점이나 부정성을 시간이 지날수록 경험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부정성은 기억으로만 남게 되고 부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부정성이 된다. 그래서 현실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 되고 자신들은 안정한 성벽 안에서 cctv를 관람한다.
하이데거와 헤겔 철학은 결국 ‘관념론’이다. 말과 생각이 현실을 지배하도록 만든 것이다. 관념론의 한계는 현실의 변화를 생각의 범주에 포함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연히 인간의 모순과 범죄, 다양성과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다. 박종홍에게는 그게 너무 많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