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민네이션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나는 어려운 길을 걸어왔어야 했다. 문면서생이나 이상주의자라는 오명 때문에 낭만적이라는 것은 그저 감성적이면서도 현실을 모르는 사람으로 보여졌다. 그러나 철학을 배우면서 17세기에 시작된 독일의 초기 낭만주의는 사실 내가 주장하는 이상주의적 현실주의나,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와 같은 이종교배의 특징을 잘 가지고 있었다. 오늘은 낭만주의에 대해서 더 깊게 들어가는 날이다. 특히, 프레더릭 바이저의 책을 기본으로 해서 철학적인 부분에서 접근해본다.
낭만주의의 명령은 모든 시 예술의 융합을 요구한다. 모든 자연과 학문은 예술이 되어야 한다. 예술은 자연이, 그리고 학문이 되어야 한다.
시는 윤리적으로 되어야 하고 모든 윤리는 시적으로 되어야 한다
_프리드리히 슐레겔
1. 낭만주의의 구분
낭만주의는 보통 세가지의 시기를 거쳤다.
1) 초기 낭만주의 : 1797년부터 1802년까지예나를 중심으로 형성된 초기 낭만주의는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학적인 관점에서 철학적이고 이론적이었다.
2) 절정기 낭만주의 : 절정기 낭만주의는 하이델베르크와 베를린을 중심으로 1802년부터 1815년까지 이루어졌으며 문학, 비평, 미학적인 부분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3) 후기 낭만주의 : 1815년부터 1830년까지 지방적, 목가적, 보수적인 낭만주의 특징을 보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낭만주의는 보통 후기 낭만주의를 일컫는다.
2. 초기 낭만주의의 특징
초기 낭만주의는 서서히 문학적일 뿐 아니라 철학적인 운동이었다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1)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기계론적 자연개념,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 확실한 제일원리에 대한 토대주의적 믿음 그리고 자기를 조명하는 주체와 같은 데카르트적 유산의 주요 측면과 단절했다.
2) 계몽 이성주의의 여러 근본 가정들, 즉 비역사적인 이성, 비판의 고전적인 기준들 그리고 자명한 제일 원리가 존재할 가능성을 의심했다.
3) 사실상 철학의 모든 분야에서 혁신을 가져왔다.
형이상학에서는 계몽의 기계론적 패러다임과 경쟁하는 유기체적 자연개념을 발전시켰다.
윤리학에서는 칸트와 피히테 윤리학의 형식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사랑과 개인성을 중요시했다.
미학에서는 고전주의의 기준과 가치들을 약화시키고, 대신 텍스트의 맥락과 개별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비평방식을 발전시켰다.
정치학에서는 근대 계약론의 개인주의를 문제 삼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공동체주의 전통을 부활시켰다. 아노미, 원자주의, 소외 같은 근대 시민사회가 갖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처음 발견하고 주제적으로 다룬 이들이 낭만주의자들이었다.
3. 초기 낭만주의 철학의 목표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많은 현대 철학자들처럼 비판을 존중하면서도 회의주의를 벗어나는 인식론 토대주의의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상대주의에 굴복하지 않은 인식론을 추구했다. 심리철학에서 그들이 목표했던 것도 자연주의이되 환원주의적 유물론이 아닌 것, 이원론과 기계론의 양극단 사이의 중도를 추구했다. 그들은 정치철학의 주요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핵심적인 쟁점이다. 공동체의 요구와 개인적 자유의 요구를 화해시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낭만주의자들은 언제나 이원론을 부정하며 이것을 하나로 연결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원래 이렇게 생겼었다. 모든 것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자연스럽게 생명을 잉태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고 포용하고 있는 형태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있기 오래전부터 낭만주의자들은 토대주의, 비판의 보편적 기준, 완결적 체계, 자기를 조명하는 주체의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그들은 푸코보다 몇 세기 앞서 성적 자유를 주창했고, 성적 고정관념들을 비판했으며, 개인적 자유를 옹호했다. 그들은 또한 해석학을 발전시킨 선구자들이었고 역사주의 문학 비평을 만들었다.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 가다머, 듀이가 해석학과 역사주의, 반토대주의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낭만주의자들이 시작했던 것이다.
3. 초기 낭만주의의 한계
초기 낭만주의가 현대성을 담지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대착오적인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몇가지의 한계를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 사실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18세기의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계몽의 자식들이었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포스트모너지즘과 멀리 있는 특징들도 보였다.
1)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플라톤주의, 유일한 보편적 이성에 대한 믿음, 자연과 역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원형들, 관념들 혹은 형상들에 대한 믿음에서 달랐다.
초기 낭만주의자들에게서 진리와 가치가 개인이 결정할 문제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횔덜린, 셸링, 슐라이마허, 프리드리히 슐레겔과 노발리스에게 미친 플라톤주의의 심대한 영향을 설명하지 못한다.
낭만주의자들은 개인성에 커다란 중요성을 부여하면서도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근본적인 도덕법칙 혹은 자연법칙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2) 낭만주의자들은 통일성과 전체성을 향한 그들의 노력과 열망 그리고 근대적 삶의 분열들을 극복해야 한다는 요구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과 거리가 멀다.
낭만주의자들은 차이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환호했지만, 국가와 사회 그리고 자연의 더 넓은 전체 안에서 그것을 재통합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도 믿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반면, 이 분열들이 기정사실이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주장에서 시작한다.
3) 낭만주의자들은 종교적이었고, 심지어 신비주의적이었다. 그들은 종교는 유신론적 혹은 이신론적이 아닌 범신론적 토대를 가지기는 했지만, 그들은 세계를 대하는 종교적 태도의 여러 결정적인 측면들을 전혀 잃어 버리지 않았다.
사실은 이 태도를 부활시키는 것이 프리드리히 슐레겔, 노발리스, 셸링과 슐라이허 마흐의 의식적 목적이었다.
이는 근대 세계를 위해 그들이 새로운 종교적 신화와 '성서'를 요구했다는 사실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포스트모니즘에 절대적인 것을 위한 자리가 있는가?
낭만주의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고 즐겁다. 특히 초기 낭만주의가 시도했던 합리성 속에 변화, 변화 속에 일정한 체계는 오히려 더욱 현실적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 비교해보아도 손색이 없다. 무심한 상대주의가 아니라 무엇인가에서 계속 뻗어져 나가는 제한된 합리성과 같은 것이다. 나 역시 계속해서 분열된 것들을 연결하고 깨어진 것들을 주워담아 하나의 체계를 만들고 그것을 아름답게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다.
세계를 낭만화하라. 원래부터 그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