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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Aug 22. 2021

폭풍우가 내리는 마음 속.

내일이 우울한 청년들을 생각하면서.

0.

좋은 음악과 문제없이 편안한 사람들, 괜찮은 음식과 사랑해도 문제 없는 낭만적인 공간들. 그 사이에서 나를 계속 발견해가는 시간들이 때론 흥미롭고 아득하고 인생의 따스한 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삶은 이렇게 누리고 영글고 마음의 부담없이 날마다 새로움을 주는 것 같다. 이렇게 인생은 한걸음 앞으로 걸어가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더욱 커다란 세계가 만들어지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어서 정말 오롯이 나 자신이 주인이 된 것 같은 생의 감각. 그 속에서 태어나서 그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1.

뉴스에서 흔하게 흘러나오는 청년실 150만명에 하루에 한끼를 먹는 청년들이 30만명이 넘어가는 이야기들. 편치않은 새로운 이야기인 '뉴스'를 얻어듣기 보다는 차라리 채널을 돌려서 종편에서 연예인들의 흥미로운 '혼자사는 이야기'나 청년플렉스인 힙한가수들을 보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기억의 한쪽 구석도 모자라서 아예 의식의 바깥으로 쓰레기처럼 버렸던 뉴스들이 저녁이되고 밤이 되면 깊어지더니 점점 먹구름이 되어서 마음 속에 폭우를 뿌린다.


2.

언제가부터 병을 얻은 느낌이다. 누군가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병. 그것은 주위에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탓도 있겠지만, 생각의 거리가 넓어진 탓인지 내일을 두려움으로 놓고 사는 사람들의 미래가 너무 쉽게 그려지기 때문이겠지. 밤새 내리던 비는 마음 속에 한 가득 홍수를 만들어 놓고 그 세계가 너무 작았던지 의식 바깥으로 흘러 넘쳐 버린다. 가만히 있는데 눈물이 흐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미래와 과거가 겹쳐서 보인다.


누구나 행복하게 살고 싶을 텐데.


3.

사회를 이롭게 하겠다가 신념으로 들어갔던 단체에서 10년이 지나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이것이 정말 변화를 만들어냈겠지 하는 합리화도 하다가. 금요일 저녁 즐거운 마음으로 퇴근하는 거리에서 아르바이트에 지친 청년의 뒷모습이 보인다. 낭만적인 금요일 밤에 다시 비가 내린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가 잘 안되시거나, 어머니가 암으로 투병하시거나, 동생이 급성패혈증에 걸리거나, 자신이 공사장에서 다치거나. 불현듯 찾아온 재앙은 가난한 이들에게 더 큰 무게를 가진다. 다시 일어서지 못할 만큼.


4.

에세이로, 글로, 몇장의 사진으로 마음이 달래지지 않아서 역사를 훑어본다. 지난 몇천년간의 역사들이 하나하나 의식속에서 새겨져 가는데. 루소는 '허영'이란 것이 만들어낸 '불평등의 기원'을 밝혀냈고, 로크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권리를 주기 위해서 '토지'를 분배하자고 했다. 모두가 싸우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던 사람들은 싸움을 지키기 위해서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가난이든, 불평등이든 어쩔 수 없다고만 한다. 나는 역사속에서 한참 머물다가 답을 찾지 못하고 현실로 걸어 나온다. 어디로 가야하지? 어떻게 할까?


5.

나만 낭만적으로 사는 것은 진정한 낭만이 아니다. 나만 행복하게 사는 건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자신이 행복을 누린 덕분에 누군가는 불행하고, 어떤이는 아프다면 그건 행복을 빙자한 범죄일 것이다. 그런데 태어나보니 모두가 일종의 범죄를 행하고 있었고, 나도 거기에 동참하도록 강요당했다. 미래를 도둑 맞은 사람들에게 자본주의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계속해서 범죄자들을 양성한다. 모든 것을 바꾸라는 명령을 듣는 이들이 계속 길러진다. 그리고 목숨도, 시간도, 노동도 모두 바꿔버린다. 돈으로.


6.

벌써 10년이나 넘게 이 지점에서 서성이고 머뭇거린다. 볼멘소리처럼 누군가에게 들릴 것 같지만, 나에게는 계속해서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지점이다. 고통스럽고 비가 심하게 몰아치는  곳이지만 매번 이 지점으로 돌아온다. 생각만 하면 낭만이 산산히 깨어지고 행복해하는 사람들과 멀어지고, 내일도 암울한 사람들과 같은 온도를 느끼며 썩어가는 하천 바닥에 앉아있다. 어찌할바를 몰라서 두리번 거리기도 몇년째, 아예 잠수를 해서 이곳을 빠져나갈 길을 찾아야 겠다는 생각 뿐. 따스한, 멋, 흥미로움, 여유와는 담 쌓고 부지런히 잠수하면서 의식의 가장자리로 나간다. 한번씩 나갈 때마다 좀 더 멀리, 좀 더 깊게 다녀온다.


7.

40년을 살아오면서 이제는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 속에 폭풍우는 계속 내린다. 운명이 만들어 놓은 두 갈래의 길은 항상 한쪽으로만 더 짚게 파여 있는 발자국들 투성이다. 시간도 다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조금만 나아가보자. 조금만 더 깊게 걸어보자. 사람들 안에서 인정받지 못하거나 무시당하거나, 업신여김을 당하는 것쯤이야 그냥 흘러보내자. 그리고 문제의 중심, 모두가 고통스러워하는 곳으로 발길을 돌리자. 아무도 찾지 않는 그 곳에서 마침내 그를 만나게 될 때까지.


8.

청년들을 볼 때마다 다양한 생각들이 들어간다. 나의 청년시기는 끝났지만 그렇게도 힘들었던 시간들이 아직도 아물지 않았고 학자금 대출도 끝나지 않았다. 무엇인가를 하려면 모든 것이 돈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깨닫기 까지 참 오래도 걸렸고, 그럼서도 그러한 세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조망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을 다시 바꿀 수 있다는 믿음도 생기는 것 같다. 일단은 등록금 전액 무료에 학교간 불평등 해소와 생활비 매달 100만원씩을 지급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


9.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하니 불쑥, 아니 그럼 누가 그돈 냅니까? 그런 나이브한 생각은 어디서 나온거에요? 아니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어요? 공부안하고 열심히 안사는 대학생들이 문제지요? 이런식으로 핀잔을 준다. 마음 속으로 삼킨다. 정말 자신이 내일을 불안함으로 가득 채우고 당장 한끼 먹을 돈이 없어서 고민하고 있다면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얼마나 반가울까? 낭만적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독일을 보고 스웨덴을 보고, 역사를 보면 이미 그런 세상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있었다. 점점 긍정성이 잠식해가는 사람들의 세상은 점점 스스로를 성안에 가둘 것이니깐. 그길은 안가겠다.


10.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나만 행복한 세상 말고, 나만 여유롭고 낭만적인 세상 말고. 누구나 즐겁게 내일을 설레임으로 열어볼 수 있는 세상. 아직 그 미래로 가는 문을 만들기에는 부족하다. 잘 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이 길을 쭉 걸어갈 것이다. 문제도 제대로 분석하고, 대안도 제대로 만들고 마음이 상한 사람들도 함께 힘을 내자고 화이팅도 하고. 마음 속에 폭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내리지만 우산을 쓰고 걸어간다. 앞으로 앞으로. 언제가 함께 맑게 게인 하늘을 보면서 무지개를 볼 수 있는 날까지.


내일이 우울한 청년들의 삶을 생각하다가 연민에 빠지기보다는
무엇인가 바꾸어 보겠단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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