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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Aug 26. 2021

인생의 벼랑끝, 망한 기분이 들때 신앙이란

이런 기분 요즘 자주들어요

1.

인생의 벼랑끝에 몰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신앙이 없을 때는 내일이 다시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일 울며 안타깝게 이 목숨을 붙잡고 있는 것이 구차하게 여겨졌다. 자아에 대한 인식이 생기기전 미래는 뿌옇게 김이 서린 암흑 속으로 타들어가고 있었다. 관계로 형성된 세계에서 뾰족한 관계들이 주는 상처들은 누가 이야기해도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없게 만들었다. 대체 세상을 누가 아름답다고 한것일까? 이런 핀잔을 스스로에게 주며, 이 구렁텅이에서 구조되는 것보다는 아예 구렁텅이에 있는 나 자신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 

신앙이 생기기 시작했다. 캄캄한 밤 속에서도 빛이 나는 북극성을 발견하던 때였다. 나의 머릿속에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 새벽별은 '약속'이었다. 무엇인가 그분과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기다린다는 것은 미래가 아무리 어렵고 보이지 않더라도 기다릴 수 있는 설레임이었다. 누군가 미래가 밝지 않은 이유는 '약속'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와의 계약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채무를 상환해야 하는 만기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보드라운 사람과 만나는 약속. 그것 때문에 인생은 살맛이 나는 것이었다. 그런 약속이 생겼다. 


3. 

자인식이 강해지면서 세상에 내가 우뚝 서 있다고 생각했다. 인생은 나부끼는 깃발처럼 펄럭이지만 그 깃발을 꼭 붙잡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손근육을 키우며 단단히 착지를 하면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나 거센 폭풍우가 불어오자 내가 착지하고 있던 땅 자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삶의 기본적인 토대가 흔들리기 시작할 때의 불안이란. 실업이나 이별, 누군가의 죽음, 열심히 시도했던 것들의 실패, 남부끄러운 질병, 깨어진 관계. 이런 것들은 조금씩 내가 서 있는 땅을 갉아 먹더니 이륵고 균형을 잡을 수 없을 만큼 흔들리게 만들었다. 자인식과잉이 자인식 부족으로 바뀌어 갔다.


그건 당신이 1만시간을 하면 바뀌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 반복된 일은 로봇에게 빼앗기는 제2의 기계의 시대에는 1만시간은 인생이 갈려가는 시간.


4. 

어떤 일도 10년을 하면 전문가가 된다는 말이 있다. 소위 1만시간의 법칙이었다. 그런데 10년을 살아보니, 그것은 미래가 매번 달라질 수 있는 분야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더욱이 내가 서 있는 토대가 흔들리는 불안한 구조에서는 10년을 해도 매번 제자리에 몰리다가 뒤에 오는 사람들과 경쟁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러고 나서 알았다.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던지, '너의 노력이 부족하다'라던지, '게으름은 인생의 질병'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위치에 서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삶을 조망하는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 그들이 하는 이야기가 정말 맞는 줄 알았다. 교수님들의 말이 진리인줄 알았던 시절, 세상은 다시 약속없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5. 

불안한 사람들. 먼가 잘 되고 있으면 불안한 사람들. 그래서 나는 불안하지 않아라고 하면서 벼량끝에 서 있는 사람들. 리플리증후군 같이 자기가 처한 환경을 부인하고 나는 잘 될꺼야라고 하는 사람들, 그 가운데서 나도 조금씩 역사의 진보와 삶의 성장을 맛 보다는 것 같았다. 불안하지 않다고 애써 외면하면서 밤에는 불면증이 걸려서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빠져 나오는 길을 찾느라 여기저기 뒤져봤지만 이 동굴을 빠져나가는 지점을 찾지 못해서 몇년을 헤메였다. 버티고 버텼다. 불안하다 못해 초조하기까지 하지만 '나는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라는 주문을 외우면서. 



6. 

다시 그 분을 만났다. 다시 신앙이 생겼다. 그러나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분을 만났다는 것이 현실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에서 몇개를 지워야만 했다. 그렇게 지우고 나니 대부분의 선택이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미래에는 현재보다 더 힘들게 살아야 했다. 항상 이길을 선택하면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힘들었다. 예측할 수 없는 나락 속으로 다시 떨어졌다. 신앙이 생기고 믿게 되면 잘된다는 말은 다 뻥이었다. 복불복이었다. 로또에 당첨될 확률. 그대신에 이 사회에 문제들에 민감하게 반응해야했고, 아프고 병들고 힘든 사람들에 마음을 더 써야했다. 나도 아픈데. 


7.

믿음이 무너진게 아니라 현실이 무너저 내렸다. 수 많은 의문들이 풍성처럼 마음 속에 떠돌아 다녔다. 주인도 없는 풍선들이 곳곳에 날아들었다. 햇빛을 가리고 사람들 사이를 막아서 버렸다. 의문에 대한 대답은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다. 그분은 조용하게 있는 것 같았다. 그러는 도중에 많은 이들이 그 분을 떠났다. 얻을게 없었떤게다. 믿음이라는 것도 기브엔테이크였던 모양이다. 다소 의리가 있다고 자부하는 나는 그분과 의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의리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점점 화석처럼 자리에 굳어서 내가할 일을 해 나갔다.

세상은 바꾸지 않았고 사람들은 더더욱 아파했다. 


모가디슈에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한국이들을 구했다지만.


8.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다. 헛된 믿음이 아니라 진짜로 변화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 꾸미지 않았으나 함께 손을 잡고 갈 수 있는 사람들. 조용히 골프체를 내려놓고 사람들의 손을 잡으러 이 구정물 통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만히 기다려보니 정말 있었다. 그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불안함을 선택한 사람들. 나는 그 속에서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고, 다른 약속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바뀌어서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지는 상상을 하면서 웃는 날들이 많아졌다. 힘든 일들로 낙심하기보다는 이 어둠을 뚫고 가면서 붙은 굳는 살들이 자랑스러워졌다. 그렇게 또 몇년을 건너갔다. 구름에 달가듯 가는 나그네처럼. 


9. 

아직까지는 없다. 변화되는 것이. 그러나 앞으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바꾸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준비하자고 했다.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어떤 변화도 예상할 수 없는 곳에서, 시작하자고 했다. 포기하지 말자고 했다. 불연듯 손을 잡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 분이었다. 아니 그렇게 보이지 않더니, 삶을 아무리 뒤져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더니. 함께 잡은 사람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등을 떠밀어서 내가 할수 있도록 지지하고 있었다. 버티고 있었다. 



10. 

태양은 다시 뜨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길을 잃고 있었다. 헤밍웨이가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보노가 노래한 것들이 거짓말인것도 알았다. 존 레논의 상상은 그저 상상일 뿐이었다. 현실은 계속 바뀌고 삶은 계속 진흙 속으로 파져들어간다. 블랙홀 속에서 계속 문제들이 나온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왔다갔다하는 코사인곡석같다. 그런데 한가지는 그 분이 계속 계시고, 약속을 계속 만드시고, 미래를 계속 밝히신다. 하나하나 바뀌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는 여전히 손을 잡고 있다. 사람들과 그 분과. 폭풍우는 몰아붙이지만 그것을 뚫고 가고 있다. 그 분이 만든 세상이라면 반드시 원래대로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겠지. 이것은 믿음이라고 보기보다는 나에 대한 다짐같이 보인다. 


상상이 아닌 현실에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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