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할 수 있는 용기를 다시 생각해 본다
누군가를 미워할 때가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미움을 살 때가 있다
가끔은 그러한 감각을
잃어 버리고 살다가
누군가 나를 대할 때의
태도에 무엇인가가 감지될 때
기분이 나빠지는 다음의
자연스러운 감정은
미움이다
누군가의 미움이 전달된다
마치 전염된 감기처럼
그 미움의 정도는 사람마다
전염한 누군가의 것보다도 더 심할 수가 있다
미워하는 감정은
의외로 쉽게 시작되는데
나의 가치관이 확실하고
나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여기며
나의 감정이 다른 사람의 감정보다
귀하다고 여기면서도
자기 스스로에게는 정당성을 부여해서
기만하게 만들면 된다
이것도 한 두번이지
몇번 하다보면
자연스레 다른 이를 미워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매일 아침 냉수를 마시듯
습관이 된다
미움은 사람들의 존엄을 깨뜨리고
관계의 깊이를 메워버린다
미움은 감정의 결과라고 하지만
그러한 판단이 가능하게끔 조력한
지적인 능력과
그러한 감정을 먹기로
결단한 의지의 합작품이다
지성과 의지과 감성과 만나서는
삶 자체를 비인격 적으로 만든다
전인격적인 비인격성 말이다
미움이 축적되어 점화되면
미움이 구조화되고
그 속에서
화로 번지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화를 내는 자신에 대해서
잘 돌아 보지 않는다
스스로 매우 반응적인 대처에
인각적인라는 변명을 해 내지만
실상은 그 안의 미움을 해결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잘 다스리지 못하는 것의 다름아니다
사회적인 악이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대응하는 방식이 사람에 대한 미움이나
분로로 표출되면서도
의분이라고 말하는 경우
대부분은 의분이 아니라 화다
자신이 맞다는 화' 말이다
진정한 의분이면
십자가 지고 그 곳에 가겠지
그 방법 밖에 안 보여주셨다
의분으로 사람을 죽이고
국가를 말아 먹고
생화확 무기에,
총을 난사하면서도
정작은 스스로의 정당성도
갖지 못하는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나도 안다
이러한 글도 역시 미움의 원천이 되고
어떤 판단의 기준을 만들어 냄을.
그래서 우리의 대응 방식은 철저하게
정의가 되지 않으면서도
사랑이 되는 방식이겠다 한다
사랑이 방식으로 작동하게 되면
일단 답이 없다
일단 어떻게 해야 겠다는
명확한 룰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수동적이 되고
용서하게 되고
융통성이 자동적으로 체화된다
함브로 할 수 없고
쉽게 미워할 수 없고
상대방의 얼굴읗 무시할 수 없고
다른이의 이야기를 안 들을 수 없고
작은 사람이라 생각해도
존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인격적이 된다
비인격적인 언어에
인격적인 행동이 담기지 않으며
인격적인 방식에
비인격적인 목적이 부합되지 않는 것은
이전세대는 말로만 가능하다 했던
공과 사의 구분이 실제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새술이 새부대에 담기지 않고도
새술이 헌부대에 담겨진 것처럼,
삶을 사는 방법을 학습시킨
분들을 거부하면서 부터,
거절하면서 부터
깨닫게 된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다시 미움에 대해서 생각한다
미워하는 것
그것은 인간의 길이 아니라는 것
정의를 기반로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은 사랑의 빚이 아니라
악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맛 잃은 소금은
지나가던 고양이도 관심없다
사랑이라는 새술에 담길
새로운 부대는
우리의 삶이다
자자
다시 시작하자
다시 살아보자
날마다 장미처럼 피어나는
새로운 미래를
미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비인격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깊음으로.
아무도 걸어가 보지 않아서
방법론이 존재하지 않는
그 길 말이다
오직 사랑을 바라보아야만
보이는 희미하지만
뚜렷한 그길
다시 미움받을 용기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랑받을 용서에 대해서 생각하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