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빈곤 2_1권 용어정리와 임금과 자본의 관계
다시 철학으로, 다시 현실로, 다시 고민에 빠졌다. 문제를 문제로 두지 않고 공부로 두고 지냈던 시간들이 지나간다. 그리고 이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이고, 만들어가야할 시간이 온다. 지금은 전간기라고 해두자. 이제 만들어갈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헨리조지의 사상을 배우는 시간이다. 철학아카데미에서 듣는 시간. 3시간동안 힘들지만 다시 생각이 깊어지는 것 같다. 질문이 생기고, 해답을 찾으려고 끙끙거린다. 오늘은 1권 노동과 이익의 결과로 자본이 생긴다는 당연한 사실을 정치경제학적으로 살펴보고, 우리가 허상으로 여기고 있는 '교환'의 원리가 사실은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고 있음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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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증가와 임금의 최저 수준으로의 감소 현상을 한번 생각해보자. 과연 이게 맞는가?
생산력의 증강에도 불구하고 왜 임금은 생존을 겨우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가? 임금은 자본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헨리 조지에 따르면, 임금의 결정요인은 아담 스미스 이래로 여러 무수한 정치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노동’과 ‘자본’ 사이의 양의 비율이 아니라 ‘노동의 생산성’에 기인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임금은 자본으로부터 혹은 자본과 노동자의 비율로부터 나오는 것(임금기금설: 임금은 자본에 의해 결정된다)이 아니다. 실제로 임금은 그 대가로 지불되는 ‘노동의 생산(물)성’으로부터 기인한다는 점, 즉 동행관계”가 강조된다.
임금이란 노동이 벌어드린 것 또는 노동이 생산한 것이지 자본의 일부를 미리 받는 것이 아니다.
부, 자본, 지대, 임금(정치경제학에서 부의 3요소: 토지, 노동, 자본)이란 각 추상적인 개념의 의미를 정리해야 한다. 자본과 연동된 부와 임금, 토지의 정의는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게 만들기 때문에 다시 정의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자본의 일상적 정의
“가치를 가진 것 혹은 소득을 발생시키는 것”
아담 스미스(A. Smith)가 『국부론』, 제2권 1장에서 논한 8가지 구분(고정자본과 유동자본)한다. 아래와 같이 8가지로 구분해보자.
1) 노동을 수월하게 해 주거나 절약시켜 주는 영업상의 기계와 도구
2) 주택을 제외한 건물로써 영업의 수단으로 볼 수 있는 것(예컨대 점포나 농장의 건물 등)
3) 경작이나 재배를 위한 토지의 개량 부분
4) 국민이 후천적으로 취득한 유용한 능력, (이상은 고정자본임)
5) 화폐
6) 생산자나 상인의 물자로서 판매하여 이윤을 얻으려고 하는 것
7) 생산자나 상인의 수중에 있는 원료, 반제품 기타 생산물,
8) 생산자나 상인의 수중에 있는 완제품(이상은 고정자본이라고 부름)
자본에 대한 다른 견해
데이비드 리카르도(D. Ricardo)의 정의: “자본은 한 나라의 부 중 생산에 제공되는 부분으로서 노동에 필요한 음식, 옷가지, 도구, 원료, 기계 등을 말한다.” (『정치경제학의 원리』, 제5장.)
매켈로크(John R. McCulloch)의 정의: “한 국가의 자본은 국내 산업의 생산물 중 인간의 생존을 지원하거나 생산을 용이하게 하는 데 직접 제공될 수 있는 부분이다.”(『국부론에 대한 주석』, 제2권 1장)
존 스튜어트 밀의 정의: "작업에 필요한 건물, 보호시설, 도구, 원료 등 생산적 노동에 제공하기로 되어 있는 물자와 생산 기간 동안 노동자가 먹고 생활하도록 되어 있는 물자가 자본이다.”(『정치경제학의 원리』, 제1권, 4장)
이 밖에 웨이랜드(Francis Wayland), 캐리(Henry C. Carey), 페리(Arthur L. Perry), 송턴(William T. Thornton), 프랜시스 워커(Francis A. Walker), 니콜슨(N. A. Nicholson), 아마사 워커(Amasa Walker) 등의 정의가 소개된다.
토지, 노동, 자본이 ‘생산의 3요소’라고 할 때, 토지와 노동의 개념에 따라 양자의 결합에 의해 생산된 것만이 ‘자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부’란 “정치경제학적으로는 교환가치를 갖는 물자가 모두 부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며, 증권·저당권·약속어음·은행권 등이나 노예의 경우, 토지나 자연의 경우처럼 상대적인 부로서 마치 종이 한 장에 잉크 몇 방울로 완전히 소멸될 수 있는 것과 구분되는 진정한 부로 그 생산이 사회적 부를 증가시키고 그 소멸이 사회적 부를 감소시키는 것만이 부이다.”
“모든 자본은 부이지만, 모든 부가 자본인 것은 아니다. 자본은 부의 일부분이며, 부 중에서 생산을 지원하는데 배정되는 부만을 의미한다. 부 중에서 자본인 것과 자본이 아닌 것 간의 경계를 잘못 그으면 또 다른 오해가 발생한다.”
요약하자면, 자본이라는 용어는 정치경제학자들이나 일반 사람들이나 다 같이 아담 스미스가 표현한 어느 사람의 축적물 중에서 자신에게 수입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는 부분이 그의 자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리하여 자본을 ‘교환과정에 있는 부(wealth in course of exchange)’라고 정의한다면, 그리고 이때의 교환이 단지 거래뿐만 아니라 자연의 재생산력 내지 변형력을 통해 부를 증가시키는 것과 같은 변환까지도 포함한다면, 일반적으로 자본이라고 하는 내용을 모두 포괄할 수 있으며 자본이 아닌 것을 모두 배제할 수 있다.”
자본은 교환되지 않는 순간, 멈춰 있는 순간 '가치'를 잃게 된다. 따라서 계속해서 교환되고 유통되어야만 자본은 살아 있는 존재가 되어서 그 자체로 영속할 수 있다.
임금노동(공장 노동)과 여타 노동(자가 노동)의 구분 필요하다.
자가 노동자와 노동의 대가에서 나오는 임금의 예들을 살펴보면 '노동'이 왜 자본에 우선하는지를 알 수 있다.
분익소작제(metayer), 세어-데어 가축소작제(saer and daer stock tenancy), 야곱과 라반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근원은 자본이 아니라 노동이다.
포경선의 임금 계산, 샌프란시스코 만의 패럴론 선에서의 산란철 알 수집 등은 모두노동생산성을 통해서 미래에 얻게될 자본을 예측하는 것이다.
반면, 해상법이나 변호사의 상담료(retainer), 뱃사람들의 ‘피 묻은 돈(blood money)’의 경우처럼 임금이 선불로 지급되는 경우도 있지만, 중요한 사실은 임금 지불은 늘 노동의 사전 제공을 전제한다. 아울러 가치 창출의 과정은 지속적인 과정이며, 이는 운하나 터널 혹은 농업의 경우에서처럼 분명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노동이 투입됨에 따라 가치도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자본은 왜 필요한 것인가? 자본은 노동에 대한 선불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노동생산물로 장사와 투기를 하고 축적하기 위한 것이다.
소비에 대한 수요가 생산에 투입될 노동의 방향을 결정한다.
마치 굽은 파이프처럼 생산자가 생존물자와 임금으로 받는 것은 바로 자기 노동의 생산물에 다름 아니다.
정치경제학은 노동이 자본으로 부터 생존물자를 공급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든 노동에 투입되는 사람들의 노력이 중지될 경우에 더이상 사회를 유지할 수 없다.
자본은 더 많은 부를 획득하기 위해 사용되는 부이며, 이런 점에서 욕구의 직접적 만족을 위해 사용되는 부와는 구별된다.
헨리조지는 자본은 부를 생산하는 노동의 힘을 1) 노동의 능률 향상, 2) 노동이 자연의 재생산력을 이용할 수 있도록, 3) 분업을 가능하게 해준다라고 생각한다. 이부분에서는 마르크스와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이 산업을 ‘제약할 수 있다’와 ‘제약 한다’의 용어상의 차이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문명국가의 대중 빈곤이 심해지는 이유는 ‘자본의 결핍 vs. 적절한 분배의 결핍’ 가운데 어떤 이유에서 일까? 적절한 분배를 하지않아서 그렇다.
“임금이 자본이 아니라 노동생산물에서 나온다면, 빈곤을 덜기 위해 현재 제안되고 있는 각종의 처방, 예를 들면 자본의 증대, 노동자의 수적 제한, 노동자의 작업능률 향상 등의 제안은 폐기되어야 한다.”
물동이에 아무리 물을 많이 부어 넣더라도 한 물동이 이상의 물을 담을 수 없듯이, 자본으로 사용된 부도 주민의 지성, 관습, 안전, 인구밀도 등에 가장 어울리는 생산과 교환의 장치에 필요한 정도 이상은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다음 권에서 다룰 주제는 “인구 증가에 의해 자연의 이용이 늘어나면, 자연의 생산력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가?”의 여부와 관련된 문제이다.
http://www.landliberty.or.kr/page.php?idx=0103
민네이션, 생각
자본의 목적은 '가치증식'이다. 기존의 상품들이 가치증식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치가 분산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다. 따라서 메타버스나 디지털가상공간과 같은 새로운 영역을 창조하고 거기에 '가치'를 불어 넣는다.
인간적인 욕구를 만족하기 위한 것인지를 고민해보자. 더 많은 분산을 위해서 자본이 사용되지 않을 때 자본의 가치는 올라가지 않는다.
자본은 하나의 가치를 넘어서 신앙이 되었다. 물건을 화폐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신앙이다.
교환이 멈추면 자본의 증식이 멈추게 된다. 자본의 증이 멈추면
사회보험이 많아질수록 자본의 교환은 줄어들게 된다. 사회민주주의에서 복지가 늘어나면 자본의 교환이 줄어들고 자본 자체의 증식보다는 새로운 방식의 가치 증식이 일어나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사회를 지배하는 방법은 '욕구를 조종'할 수 있으면 된다. 다시 말하면 욕구를 욕망으로 치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이 사회에서 욕구를 자본으로 교환하고, 자본을 다시 실제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다.
오늘 알아본 헨리조지의 주장은 아직 '토지'로 넘어가지 않았다. 중앙일보에서 기고한 글에 대한 반박은 아직 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조지가 본격적으로 토지에 대한 지대를 가지고 논의할 것이다. 나름대로 대안을 만들어 가자. 아직은 제대로 모르니까 숨 죽이고 바짝 업드려서 배우자.
민네이선, 질문
메타버스와 같이 가상자산에 대한 '지대'나 '토지공개념'등은 사용될 수 있는가?
막스베버와 같이 '관념론' 혹은 상상력을 인간의 기본으로 보는 입장과 마르크스와 같이 물질에 토대를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헨리조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헨리조지가 말하는 지대에 관한 세금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작인가? 아니면 이후에는 '자유주의'에 맞기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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