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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Feb 24. 2022

나의 이야기를 쓰자

언젠간 찾아온다

누구나 언제가는 자기의 이야기를 쓸 때가 온다. 


그것이 독백이든 에세이든, 사업계획서든, 소설이든.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이야기를 쓸 때가 말이다. 태교에서 듣던 노래가락에서부터 어릴적 기억들이 쌓여진 삼층 석탑,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과의 이야기,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혹독한 성인식이나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추억.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질 때 자신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작가가 직업인 시대라서 꼭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써 주어야만 자신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이제 자기가 써야 한다. 아니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세상의 구석진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이들은 이 방법을 일찍 터득해서 여러번 쓰다보니 다른 사람보다 잘 쓰게 된 것 같다. 어딘가를 여행하고 나면 남겨진 여운과 감정을 단어에 대입해보니 멋진 글이 되어 있는가하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애매한 실타래를 풀어본 사람이 소설의 주인공들에게 그 실타래를 하나씩 맡기면 거대한 장편소설이 되기도 한다. 


학자들은 이론을 중시하고 무엇이 그것의 기본이 되는지 출처를 중요시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이는 출처가 없으면 불안해하고, 출처에 맞지 않는 자신의 이야기가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고 한다. 대부분의 강연이나 토론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보다 다른 사람이 써 놓은 글들을 읽고 요약한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모든 지식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언어를 쓴다. '~누군가 말했는데, 누가 이런 이야기를 책에 남겼는데, 누군가에 따르면' 그래서 그것이 자신의 지식이나 수준을 높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구간. 어느순간 비판하고 나면 그 비판이 부메랑이 되어서 나에게 돌아오는 시간. 지금 이 시간. 누군가를 대상으로 놓지 않고 오롯이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할 때 겸손해지는 두 손가락. 그 손가락에서 나오는 오묘한 나의 마음. 아무도 이해할 수 없고, 재현할 수도 없는 그 때의 감정과 이미지 그리고 그것을 다시 글로 표현할 때에만 느껴지는 가느다란 실오라기. 나는 비로소 글을 쓰면서 자유롭게 된다. 오롯이 나만 즐길 수 있는 이 시간이라서. 


나는 작가가 되는 것이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무엇인가를 잘하는 것이 천부적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것을 더 먼저 접했는지가 더 재능의 앞단을 차지하는 것 같다. 태어나자마자 모든 것을 열러진 모든 구멍으로 빨아들이는 인간의 특성상 호흡인지, 시선인지, 음성인지, 땀인지에 따라서 더 많은 것들이 축적된 만큼 더 재능으로 다가온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작가가 되는 건 그 사람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더 많이 글을 만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고 싶어서. 


글쓰는 걸 특별하게 만들어 버리니깐,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은 못 쓰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작가가 환영받는 시대에는 사람들의 인생은 그렇게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소설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는 그렇게 빛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한시대가 가고 한 세대가 지나가고, 한 세기가 넘어가도 사람들의 삶 보다는 그 시대를 빛낸 작가의 이야기만이 진리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긴 사람들의 역사라던지 살아 남은 이들의 기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쓰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루종일 이야기에 치여 살다가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들은, 본 이야기' 밖에 할 수 없는게 서글픈 저녁시간이다. 오늘은 나는 무슨 생각을 했고, 나는 어떤 감정에 휩싸였을까? 분노와 오만, 겸손과 두려움 사이에서 오고가면서 나오는 목소리들이 때론 언어가 되었고 가끔은 탄성이 되었던 시간. 오롯이 인간이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이야기로 풀어낼 때에만 느낄 수 있는 생의 감각. 나는 어쩌면 너무 쓰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질려 버린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쓸 때가 되지 않았나? 이런 생각들에 사무쳐서.


나의 이야기를 쓰자!


라고 한마디 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문장들이 나와버렸다. 그렇다면 이 문장들이 나오기까지 나의 감각과 마음에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맺혀있었을까? 굳이 특별하지 않는 밤을 맞이하는 나에게 조금은 의미있는 밤이 되길 원하는 마음으로. 내가 보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써보자. 처음에는 낯간지럽지만, 조금씩 이해가 가는 시간이 오고 있다면 나는 조금은 성장해 있을 것이니깐. 인정하고 생각해보고 다시 걸어가보는 시간이니깐. 나의 이야기를 써보자. 제주도에 있는 아는 동생이 가장 좋아할 짧은 글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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