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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y 10. 2022

케리그마 중독이라는 말이 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케리그마 중독이라는 말이 있다

'선포'라는 뜻의 케리그마는 항상 의지를 건드린다

케리그마를 듣는 사람은 말하는 이에 의지에
반응해 자신의 의지를 선뜻 내어 준다

점점 자신이 선택해야하는 것을 선포하는 이에게
전가함으로써 안정감을 얻고 자존감도 지킨다

문제는 케리그마를 듣는 사람보다 그것을 계속
발화하는 사람이 중독된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권력욕심은 케리그마중독의 다름아니다
선포는 점점 선동과 명령으로 바뀌게 되고

곧 자신의 선포가 자신에게도 향하여
스스로를 붙잡아 놓는다

왕관을 쓴 사람은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곧 선포는 그의 비명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이런 역사 쌓이면서 인류는 권력을 학습하고
한 개인에게 주어진 숙명으로 바꾸어 버렸다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이면서
자신고 괴롭고 남도 괴롭게 만들었다

케리그마에 중독되지 않는 방법은 한가지이다
일상의 언어인 파라클레오를 사용하는것

왕관을 쓰고 일상의 언어를 쓴다는 것은 다른이를
움직여 존재를 증명하는 게 아닌   


자기자신의 존재로
왕관의 무게를 버텨내는 것을 말한다


마치 정의를 심판하는 저울처럼

영혼의 무게와 삶의 무게를 지고 있는자만


견딜 수 있는 왕관이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은 왕관을 쓰면 비명을 지르고


곧 케리그마를 사용해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명령으로 자신의 왕국을 만들려고 한다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대통령 취임식이다

민주주의가 승리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절차적 민주주의는 항상 그 빈틈을 보고

달려드는 이들에 의해서 붕괴된다


절차가운데 여러 지름길이 생기면서

절차를 지키지만 빠르게 갈 수 있는 샛길을 만든다


왕관의 무게를 견지지 못하는 자에게

빠른게 이동하는 절차는 곧 무력감과 피로감을 줄 것이다


땅굴을 나온 두더지는 다시 땅굴로 들어가려 한다

아니면 자신이 나온 세계를 땅굴로 만들던지.


자신의 존재로, 스스로 설 수 없는 사람은

결국 어디론가 피할 깃을 찾을 것이다


그것이 국방부이든 외교관 관저이든

아니면 지하 벙커이든 간에 말이다


'공정과 정의'라고 외쳤던 케리그마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라도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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