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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an 07. 2016

나르시시즘과 타자

사랑하지않음이 곧 나르시시즘은 아니다

나르시시즘.

타자가 탄생하는 순간은 바로

자신 앞에 있는 거울을 걷어낼 때가 아닐까


여전히 타자의 얼굴을 거울로 삼아

나를 보는 행위 가운데는

 존재의 불안함이 있다


사실 공간은 시간위에서 만들어지는데

(많은 사람들은 공간 위에 시간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공간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적 시간은 자신의 시간에

타자의 시간을 맞추는 것의 다름 아니다


그러니깐 나의 시간대, 나의 시간 개념에

타자의 시간 개념을 맞추는 행위가

 나르시시즘 사고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타자를 사랑하는 시간은

전혀 내 것과 다른 시간대이다

예상할 수 없고, 정확히 측정할 수도 없다

다만 예감할 수 있고, 기다림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즘.

종착점은 우울증이다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한가지의 시간대 안에서

공간은 전혀 변화되지 않고 신비롭지 않다

예상하는 것을 넘어서 확연하게 기획해 놓은

미래의 시간대는 절대 움직이지 않도록

현재를 미래에 헌신하게 만든다


종교, 사회, 문화, 정치

이 모든 것들이 나르시시즘적

시간대로 변화가는 요즘

그 뒤에는 인간의 욕망을 옷입은

자본주의가 있고,

자본주의의 내면에는

래 시간에 정초한 나르시시즘이 있다


(나르시시즘과 정확히 대칭하는 것

사랑이다)


시간이 차원을 더해가면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의 공간 안에 존재하게 되는데

이것을 카이로스라고 한다

수직적인 시간대이다


그러면 수평적 시간대에서는

오직 한개의 공간만 움직일 수 있던 개념이

수직적 시간대에서는 여러개의 공간을 갖는다

(이것을 인터스텔라에서는 5차원이란 개념으로

이야기했다)


16세기까지만해도 시간 개념은

수직과 수평이 공존했었고

흔히 주관적 시간대를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발명품인 시계의 탄생으로

시간개념은 객관적인 크로노스만 남게 되었다


입체적 프랙탈구조인 인간의 시간이

하나의 시간대안에 사로잡히면서

공간을 지배하는 자들이 생겨나고

결국 인간은 공간안에 갖혀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게 자본주의가 확산되는 양태이다

시간의 전체주의화 말이다


타자가 탄생하는 시간은

정확하게 나를 부정하고

타자를 신비의 장소atopos에 놓을 때에만

가능하다

타자에게서 나를 발견한다는

동일성의 원리가

아니라


타자와 함께 다시태어난다는

의미에서 영원한 현재의 경험이다


오직

사랑할때만

이 영원한 현재에 머무르고 싶은

인간의 본성을 생각하면


미래를 정초하거나

과거를 회상하는 지금시점의

나는, 사랑하지 않음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에 빠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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