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
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
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
그 춥고 큰 방에서 서기(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
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
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 밖에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
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 밖으로 눈이 퍼붓는다
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형도_기억할만한 지나침
그리고 나는 습관처럼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구름하나 없는 하늘에 거리는 가로등으로 빛났다
움직이는 것들을 반짝이고 있었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떤 버스정류장이었는데
어떤 소년과 소녀가 앉아있었다
그 좁고 누추한 정류장이 환하게 밝아지고
그들의 웃음으로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지난날이 생각나서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짧은 순간의 지나침으로도 웃음이 번져갔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참을 웃었고 우연히 그 소년을 생각하게 되었다
햇빛이 없이도 가로수만으로 밟게 빛났던
고작 그 정도의 지나침으로도
40년을 지나온 것 같이
마음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민네이션_고작 그정도의 지나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