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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ul 17. 2022

왜 신앙의 언어는 그 힘을 잃었는가?

마커스보그_그리스도교 신앙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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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공부같은 스터디를 하고 있다. 책읽으며 드리는 예배라는 방식으로 말씀도 읽고 책도 읽고 있다. 이른바 '사회적 제자도'운동의 일환이다. 너무 공부하지 않은 기독교, 맹목을 넘어 맹신으로 가는 기독교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뾰족한 비판과 미래에 대한 비판을 해보고 싶어서 모임에 참여해서 다양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처음책은 '예언자적 상상력'을 쓴 월터 브루그만의 생각을 알아보았고 오늘부터는 두 번째 책인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라는 책이다. 저자는 나는 잘 몰랐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커스 보그이다. 성공회 신학자 답게 좌우를 넘나들면서 그동안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편협한 신앙을 비판한다. 보수교단에서 자란 나에게도 상당히 도전적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1장에서4장까지 알아보는 시간이다. 


이 책의 목적은 성서와 근대 이전의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길어올린 그리스도교 언어의 대안적인 의미를 제시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하여 오늘날 그리스도교 언어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다루며, 이를 성서에 바탕을 두고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내려오는 의미와 비교하고 대조해야 한다. 문자 그대로 이해하거나 천국과 지옥이라는 틀로 해석하는 방식이 그리스도교 언어의 의미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 언어를 말하는 것'의 보다 고전적이고 진정한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말하다'_서문


https://brunch.co.kr/@minnation/3038

https://brunch.co.kr/@minnation/3031


기독교가 세상을 보는 2가지 흐름


기독교가 세상을 보는 관점은 크게 2가지가 있다. 적실성 모델과 정체성 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상 속에서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이렇게 볼 때 다양한 논의가 나온다. 


1. 적실성 모델

적실성 논의는 기독교와 세상의 연결을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신학이나 성경을 보는 방식을 볼 때 적실성이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폴 틸리히의 상관관계, 보편성의 논의이다. 폴 틸리히는 성경말씀과 현실의 연결을 위해서는 재해석의 방식이나 비판적 관점이 아니라 '상관관계'로 보아야 한다고 본다. 

칼 바르트의 경우 성경의 권위에 질문조차 하지 않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적실성 모델은 현실에서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계속 고민한다는 것이다. 


2. 정체성 모델

정체성 모델은 기독교가 세상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모델이다. 

따라서 성경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기준과 법이 된다. 성경은 자신을 지키는 갑옷이 되기도 하고 세상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의 언어

그리스도교에서 쓰는 언어는 오늘날 일종의 걸림돌의 된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성경의 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구원, 희생, 구속자, 의, 회개, 자비, 용서 등등 말이다. 

이것은 언어를 문자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시대상황이나 편집자의 의도와 배경을 해석하지 않은채 문자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교 언어를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서 단순화시킨 것이다. 

1장_그리스도교 언어를 말한다는 것


그리스도교 언어는 성서, 그리고 성서가 기록된 이후 형서된 그리스도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스도교 언어는 예배와 기도, 교리와 공동체에서 사용하고 노래한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스도교인이라는 것, 즉 그리스도교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하고 그 언어로 자신의 삶을 빚어간다는 것은 그리스도교 언어라는 틀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언어를 말하는 것은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위기는 이중의 위기이다. 우선 많은 이가 그리스도교 언어를 낯설게 느끼며, 그 수는 점차 늘고 있다. 적잖은 사람이 그리스도교 언어를 전혀 알지 못하거나, 듣더라도 무슨 뜻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스도교 언어를 '구해낸다'라는 표현은 '해방하다, 속박에서 풀어주다'라는, 성서가 말하는 구원의 차원에서 쓴 말이다. 그리스도교 언어는 '관습으로 굳어진 현재의 의미'라는 속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언어를 구해낸다는 것은 구원, 희생, 대속, 회개, 하느님, 예수, 삼위일체, 의, 자비, 정의, 은총 등등의 언어를 되살리는 것을 말한다. 이 언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말들은 사용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또한 그리스도교 언어를 구해낸다는 것은 예배에서 쓰는 말들을 구해내는 것까지 포함한다. 


생각해보기

당신은 아래의 그리스도교 언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믿음, 구원, 천국, 회개, 죄, 용서

이장에서 이야기한 천국과 지옥 해석틀이 위 단어들에 대한 이해와 신앙에 어느정도의 영향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가?

그리스도교인에게나 비그리스도교인에게나 걸림돌이 되는 현대의 그리스도교 언어를 대체해야 한다는 그레타보퍼스퍼의 견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2장_문자주의를 넘어서


모든 갈등의 중심에는 바로 이 질문, 즉 성서의 권위와 성서의 언어를 이해하는 법에 대한 물음이 자리잡고 있다. 과연 성서는 하나님의 문자적이고 절대적인 계시로 이해해야할까? 성서 문자주의는 성서가 하나님의 무오한 계시라는 생각과 궤를 같이 한다. 미국 개신교 신자의 절반가량이 이러한 식으로 성서를 라르치는 교회에 다닌다. 이들도 다른 그리스도교인과 마찬가지로 성서를 성령의 영감을 받아 쓴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긴다. 


많은 그리스도교인이 성서 문자주의와 성서가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전통이자 정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며 이를 상기하는 건 중요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리스도교 언어를 이해하는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최근에 나타난 움직임의 산물이다. 개신교에서 성서 무오설과 문자주의가 나타나기는 했어도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활동한 주요 인물들은 그와 같이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종교개혁가들은 성서의 권위를 강조했다. 성서는 그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종교 권력 및 왕권에 맞설 수 있었던 원천이자 기반이었다. 마르틴 루터 신학의 토대였던 오직성서는 종교개혁의 구호가 되었다. 그러나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은 성서 무오설과 문자주의를 주장하지 않았다. 


주류 성서학은 문자주의가 야기하는 지적 걸림돌 없이 그리스도교 언어를 더욱 풍성하고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대안적 방식을 제시한다. 문자주의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 오래되지 않은 최근 몇세기에 이루어진 시도들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 뿌리는 아주 오래전으로, 성서가 만들어진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류 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언어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공유하지만 이를 따로 부르는 이름이 없기 때문에 보그는 '역사-은유적 접근'historical-metaphorical approach이라고 부른다. 


역사적 접근에서 나타나는 질문

창세기에 등장하는 6일간의 창조 이야기는 기원전 6세기 유대인들의 바빌로니아 포로시절이나 그 이후에 쓰였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창조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고대 이스라엘 예언자 대부분은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 사이에 활동했다. 그 시기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맥락에서 예언자들의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신명기는 기원전 7세기경 기록됐다. 그 당시 이스라엘인들에게 일어났던 일은 신명기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까?

예수에게 적용되기 전 '주님,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구원자, 희생' 같은 말들은 무엇을 의미했을까?

니케아 신경에 쓰인 말들을 325년 그 신경을 만든 이들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하나님 안에 세 위격이 있다는 삼위일체 교리를 4세기에 만든 사람들에게 위격person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였을까? 


스터디에서 나온 질문

1. P.44 저자는 현대인이 FACT = TRUTH, 사실과 진리를 동일시하게 된 것이 17세기 이후 계몽주의의 영향이었다고 주장한다. 여러분은 fact와 truth와의 관계애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p.50 저자는 종교적 언어는 곧 은유적 의미를 가리키며, 은유적 의미가 문자적-사실적 의미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라 더 풍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러분은 이 주장에 동의하십니까? 

3. 저자는 2장을 통하여 "문자주의"적 성서 해석의 많은 문제점들을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은유, 비유적" 성서해석의 문제점은 없을까요? 


역사-은유적 접근

역사-은유적 접근을 했을 때 언어, 특히 종교적 언어는 문자적 의미나 사실 그대로의 의미, 역사적 의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종교적 언어는 곧 언어의 은유적 의미를 가리킨다. 은유란 언어가 지니는 의미의 잉여the surplus of meaning에 관한 것이다. 은유적 의미는 문자적-사실적 의미보다 열등하지 않다. 그 이하가 아니라 그 이상이다. 

은유적 접근법이 옳다는 근거는 다름 아닌 성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https://nyun080.tistory.com/3


생각해보기

성서를 이해함에 문자주의가 성서와 그리스도교의 의미를 단순화, 획일화, 축소, 궁극적으로 왜곡하다는 저자의 견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성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역사-은유적 접근이라는 그의 견해는 타당한가?

성서가 하나님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라면,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을 어ㄸ허게 받아들여야 할까?



3장_구원


구원의 통상적 의미가 죄와 용서, 천국이라는 해석틀에서 형성된 것처럼 구원의 성서적 의미도 일정한 해석틀을 거쳐 형성된다. 성서적 해석틀 안에서 구원은 죄와 용서, 천국과 지옥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구원은 죽음 이편의 삶에서 맞이하는 변환을 뜻한다. 즉 구원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서 일어나는 변환, 그리고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삶에서 일어나는 변환을 모두 아우른다.




4장_성서


주요내용

축자영감설을 성서의 기원으로 보기도 하지만, 성서는 선조들, 그리스인 공동체가 가진 신앙에 대한 태도의 책이다. 성서의 권위는 '관한' 것이기에 당연히 다시 고민해보아야 한다. 

성서가 그 기원 때문에 성스러운 경전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의 선조들이 그 문서들을 신성하다고, 권위있다고 선포했기 때문에 성스러운 경전이라는 점이다. 성서가 특별히 하나님에게 직접 영감을 받은 기록이어서가 아니다. 

성서는 법 문서 이상의 것이며 법을 해석하듯 성서를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럼에도 이 비유는 성서가 갖는 권위를 이해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을 준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의 수단이지만 예수님보다 중요하지 않다. 

예수를 통해 드러나고, 밝혀지고, 알려진, 육체를 입은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교인에게 결정적인 결정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는 성서의 기준이다. 성서는 하나님의 관한 책이며 성서는 그리스도를 담고 있는 구유이다. 


생각해보기

성서에 대한 역사적-신학적 연구에 의하면, 성서는 하나님이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인에게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고백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한국 기독교에서 '성서'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해석의 갈등'이 생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오히려 예수님을 덜 다루는 보수교단은 여전히 구약적 관점에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이 기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많은 헤프닝이 있는데 '정의전쟁론'이 그 중에 하나이다. 정의전쟁론도 오늘 본문으로 해석하면 부당한 것이 아닌가?




 


마커스 J. 보그( Prof. Marcus J. Borg, 1941~2015 )


마커스 J. 보그는 미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신약성서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예수 세미나’의 정회원이다. 그의 주요 연구분야는 역사적 예수 연구이다. 그는 세계 성공회 성서학자 협의회(Anglican Association of Biblical Scholars)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보그는 북다코타 지역 루터교 가정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미네소타 콘코디아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처음에 인류학자가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였다. 후에 그는 전공을 바꾸었는데 정치학과 철학으로 전공을 변경하였다. 여러 종교적 의문으로 열병을 치른 대학시절을 마친 후에 뉴욕 유니온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였다. 대학원 졸업 후에 그는 옥스퍼드 대학의 맨스필드에서 그의 D. Phil 과정을 마쳤다.


보그는 1979년부터 오레곤 주립대학(Oregon State University, OSU) 종교와 문화 연구 분야에서 탁월한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2007년 은퇴하였다. 2009년 5월 그의 아내이자 성공회 여성사제인 마리안네 웰스 보그(Reverend Canon Marianne Wells-Borg)가 일하고 있는 트리니티 대성당의 첫 번째 신학 전문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다. 보그는 그의 친구 도미닉 크로산과 자주 공동작업을 하였으며, 그와 신학적 경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영국 성공회 주교이며 성서학자인 톰 라이트와 좋은 우정을 나누고 있다. 그는 재직기간 중에 전국적으로 알려진 두 T.V 방송 심포지엄을 조직하였는데 1996년에는 ‘예수’를 주제로, 2000년에는 ‘하느님’을 주제로 방송되었다. 보그는 현재 국제 신약성서 프로그램 위원회의 공동의장이고, 미국 역사적 예수연구회 의장으로 일하고 있다.


책소개


마커스 J. 보그는 여러 권의 저서를 통하여 예수와 신앙에 대해 이야기 해왔다. 이 책을 통하여 저자는 그리스도교의 언어가 특정한 해석틀에 갇혀버려, 현대인들에게 오히려 신앙의 장애물이 되고 있음을 나직하지만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와 함께 ‘구원’, ‘성서’, ‘하느님’, ‘예수’, ‘거듭남’ 등의 의미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그리스도교의 언어가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어떻게 살도록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목차

1장 그리스도교 언어를 말한다는 것
2장 문자주의를 넘어서
3장 구원
4장 성서
5장 하느님
6장 하느님의 성품
7장 예수
8장 예수의 죽음
9장 부활절
10장 믿음과 신앙
11장 자비
12장 의로움
13장 죄
14장 용서와 회개
15장 요한 3:16
16장 거듭남
17장 유일한 길
18장 승천
19장 성령강림절
20장 휴거와 재림
21장 천당
22장 신경(信經)과 삼위일체
23장 최후의 만찬
24장 주의 기도



책 속으로


이 책의 상당 부분이 천당과 지옥 해석틀이 그리스도교 언어의 의미를 어떻게 축소하고 왜곡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해석틀에 어떤 영향력이 있었고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영향력이 있었다’라는 말은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는 전통적인 천당과 지옥 그리스도교의 틀로 해석된 그리스도교 언어의 의미가 문젯거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이 그리스도교 언어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원래의 풍성한 의미를 빼앗아갔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것이 단지 의미 축소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스도교 언어가 지적인 걸림돌이 되었기에 그리스도교를 진지하게 다루는 일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1장 그리스도교 언어를 말한다는 것

구원은 개인적 변환이다. 또한 구원은 이 세상의 변환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세상이 더 나은 곳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구원은 우리 자신과 세상의 변환이라는 이중의 변환이다.---3장 구원

예수에게서 우리는 하느님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본다. 목숨을 걸고 권력에 도전하는 예수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하느님은 우리 죄를 위해 죽도록 예수를 보낸 징벌적인 하느님이 아니다. 하느님은 세상의 변환을 갈망하는 하느님이다.---8장 예수의 죽음

부활절은 누가 주님인가에 관한 것이다. 예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이 주님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 혹은 다른 것이 주님인가?---9장 부활절

예수가 다시 와서 그가 시작한 일을 완성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예수의 비전, 하느님의 꿈에 헌신하는 것이다.---20장 휴거와 재림

성체성사는 음식, 음식을 나누는 것, 그리고 포용성과 관련돼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여정을 위한 영혼의 양식에 관한 것이다. 또한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향한 예수의 열망에 참여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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