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점점 짧아져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생각할 수 없을 때, 도망나왔다. 느림의 신을 만나러. 정동진행으로 출발하는 기차는 출발할 때 부산하기는 했어도, 이내 잠잠해졌다.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 잠을 청하는 사람들, 간혹 책을 꺼내들고 생각에 잠긴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가 다른 과정을 시작하고 있으니, 같은 호흡과 빠르기를 맞추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가장 죄악시 되는 것은 '느림'같다. 정해진 시간에 무엇인가를 꼭 해내야하는 사람들로 키워지고 만들어지는 시대에, 사람들은 빠른 것이 미덕이라며 무엇이든지 빠르게 선택하려고 한다. 시간에 쫓긴 이들이 갈 곳은 집밖에 없지만, 집에서도 여전히 쫓기고 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날 일들 때문에.
도망가는 내내 가수들의 음색에 취해서, 그동안 숨겨두었던 잠에 취해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도망가는 이들과 도망가지 못하는 이들 사이에서 나는 무한한 꿈속으로 도망가고 있었다. 창문밖에 보이는 도시들이 환상의 나라인 것처럼, 그동안 내가 이름을 지어주고 발딛고 서서 나아가야한다고 하는 이야기들도 모두 뒤로 젓히고. 소유하고 싶은 것들, 소유할 수 없는 것들도 모두 달리는 기차에 내려 놓고, 생각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생각이 길어지고,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들을 불러 모아서 또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었다.
단순한 것은 머물러 있는 것, 위대한 것의 수수께끼를 간직한다 그것들은 사람들 사이에 갑작스레 찾아들지만, 오랜 성장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_하이데거
하이데거를 표현한 한 문장이 책 틈속에서 흘러 나왔다. 복잡한 것들 사이에서 무조건 극명하게 증거를 대고 숫자로 바꾸어야만 인정받는 문화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니, 단순한 것들 속에서 수수께끼가 보이기 시작했다. 삶의 중간중간 단순한 것들의 의미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단순함들이 반복되면 삶은 무게를 잃어 버린다. 무게를 잃어버린 삶은 시간이라는 열차 위에서 겨우 몸을 가눌 정도로 아침부터 밤까지 자신을 유지하다가 겨우 집에가서 내린다. 그리고 다시 꿈꿀 수 없는 잠이 찾아오고 아침이면 다시 빠르고 빠른 시간을 얻어타고 달린다. 무게가 사라진 삶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는다. 날마다 새로운 나무향으로 만연한 싱그러운 아침을 맛보적 없는 영혼은 이내 메마르기 시작하고 썩어나가기 시작한다. 시간의 냄새는 비릿하고 고약하다. 그래서 아침에 지하철은 그렇게 냄새로 지독했던가?
발을 내딛기도 전에 파도는 환영인사를 했다. 단순하면서도 매번 반복되는 자연의 인사였다. '도망오길 잘했다!'라며 마음은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속도와 과정에 지쳐버린 영혼에, 규정할 수 없는 자연이 팔을 열고 나를 껴 안았다. 잠시 머리가 시원해지면서 두통같은 복잡함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계획하던 것들도 모두 뒷전으로 물러가고 살깣이 시키는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치 신들린듯이 파도 앞으로 달려간 내게 '느림의 신'이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마치 자기 자리 옆에 앉으라는 것처럼, 여기가 내 자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물결이 왔다가 사라지고 멀어지는 사이, 나의 영혼은 점점 계산하기를 멈추었다. 느림의 신은 계산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따위는 바닷속에 던져버리라고 했다. 느림의 신 옆에서 나역시 신이 되어가는 시간이 도래했다.
느림의 신이 말을 걸었다. '왜 이기적인 사람을 싫어하나요?'라고. 그래서 '네? 제가요? 저는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 적어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아요!'라고 잡아뗐다. 그랬더니 더 이상 질문은 하지 않았다. 느리게 걸어가는 시간의 뒷모습을 보면서 '진짜 그런가?'라고 마음 속에 질문을 던졌다. 사람이 상처를 받는 것은 어쩌면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무엇인가 해를 입히는 것보다 다른 누군가에서 일어난 일 때문 일지도 모른다. 항상 계산기를 머릿속에 가지고 다니면서 마음 속에 빛을 몰아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매일 상처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빠름의 신이 그 찰나 내 상처를 가지고 도망가버렸다. 그러니 나는 내가 상처를 받은지도 모르고, 어떤 징후 때문에 집에 오면 찢긴 마음을 꼬매면서 잠들었다가 깨었다가 했다. 하나의 질문으로 몇시간을 앉아서 생각했다. '왜 사람은 이기적이 될까? 어른이 되어도 이기적인 사람은 왜 깨닫지 못할까?'이런 질문들이 느림의 신 앞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오 나의 영혼아! 불멸의 삶을 갈망하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다 살려고 노력하라_핀다로스
있는 것들은 없는 것들의 그림자이다. 없는 것들은 있는 것들의 가능성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허기짐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영혼에게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은 그 허기짐을 채우는 식사일 뿐이다. 배고픎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허기짐을 채운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성으로 걸어들어가 성문을 잠그고 자신이 왕좌를 깨끗이 청소하고 앉는다. 그러고서 계산기를 꺼내서 이것저것 이해타산을 따져본다.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얼마나 내 앞날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따지고 우선순위를 매긴다음 내일의 시간표에다가 기록을 한다. 그리고 이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이 평온한 잠에 빠진다. 이 과정에서 탐욕이라던지 이기심이라는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그 성안에는 자기 자신 밖에 없다는 것 밖에는. 고독의 신은 왕좌에 숨어 있다가 인간이 잠자리로 돌아간 사이에 왕좌에다가 냄새나는 물건을 쏟아 놓는다. 인간이 모르게, 자신이 어디에 다녀도 냄새가 나는지도 모르게. 그러나 자기 자신밖에 성에 없기 때문에 그 인간은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의 왕좌에 앉았다가 성문 자물쇠를 따고 다시 세상으로 나간다. 사실 그 냄새나는 물건은 자신이 먹었던 존재들을 토해 냈던 것뿐이다. 고독의 신은 매번 그것을 모아다가 왕좌를 닦았다.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석양속으로 사라지는 시간들을 따라서 구름들도 흘러가는 듯했다. 사람들을 수단으로 두지 않으니 허기짐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무엇인가 먹을 것을 찾았다. 허무한 공백, 허전한 공간, 누군가의 흔적만 있는 공간에서 기다림의 신은 고요히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도 앉아서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람을 목적으로 생각하려면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기다림의 신은 여전히 기도 중이었다. 나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면서 고요한 하늘과 그것을 비추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없는 것을 없다고 하고, 있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없는 것을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은 비겁하다. 비겁함이 쌓이면 허상이 된다. 허상은 미래에 자신의 욕망을 던져놓고 사람들에게 이것이 나의 미래입니다라고 말한다. 그 미래에 도달하기 전에 냄새나는 인간은 다시 다신의 왕좌로 도망간다. 자신이 냄새난다는 것을 깨달은 탓도 있지만,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눈을 떠 보니 기다림의 신은 온데 간데 없었다. 나의 영혼에서는 조금씩 떡갈나무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영혼이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다. 거울을 보니 얼굴에 아스라히 빛이 찾아들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깨달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변화가 있었는지를 의아해하면서 얼굴을 씻었다. 이상하게 그 인간은 오늘은 왕좌로 들어가서 씻지 않았다. 그리고 배게를 웅켜잡고 울기 시작했다. 자신이 가진 냄새가 사라지지 않고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서, 고독한 마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성문을 걸어잠그는 것도 잃어버린 그에게 새벽쯤이 되었을까? 열려진 성문 사이로 느림의 신이 찾아왔다. 느림의 신은 땀범벅이 된 그 인간에게 찾아와서 말을 걸었다. '냄새가 나지 않는 방법을 알려줄까요?'라고. 그 인간은 언제그랬냐는 듯이 처음에는 눈물도 숨기고 냄새도 숨기는 듯하다가 결국 느림의 신이 계속 서 있자 말을 열었다. '네 제발 알려주세요. 제발요.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먼저 자신의 성문을 허무세요!' 그리고 나서 모든 사람이 잠든 사이에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성도 모두 허무세요, 그러면 당신의 냄새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냄새도 사라질 거에요. 그러나 한가지 반드시 명심하세요! 다른 사람들이 만든 성을 허물 때는 그들이 모두 잠든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 인간은 아침에 되자 어제 이야기했던 것으 꿈인지 아닌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망치를 들고 걸어나가 자신의 성벽 뿐 아니라 자신의 성도 허물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자 그 인간은 다른 사람들의 성벽도 허물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후 그 마을에는 성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하지?라고 하다가 무너진 성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는 다른이와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나던 냄새는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나는 냄새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계속 생각났다. 바람은 더 없이 부드럽고 아름다웠으며, 파도는 쉴새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능한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기적인 인간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에도 바람이 불었다. 이기적인 인간을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은 나 역시 이기적인 인간이었겠지. '그러면 안되'라고 말해주는 사람 없이 성벽안에 갖힌 그에게 아무도 찾아갈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 같았다. 마치 나에게도 사람들이 말해주지 못한 것들이 있는 이유는 내가 스스로 높은 성벽을 쌓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허무는 법도 모르지만, 허물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두려웠던 것도 같다. 어떤 이들은 어릴적부터 성 쌓는 법을 배우는 것도 같았고, 어쩌다보니 남의 성에 들어간 이들은 남들의 성 뺏기 놀이에 심취해 있는 것도 같았다. 물론 그의 마음 속에서는 역한 냄새가 진동했겠지만 말이다.
냄새나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자신을 청소하는게 아니라 내가 만든 왕좌와 성벽을 허물고 다른이에게 더 다가가는 것 밖에 없었음을 깨닺자 느림의 신은 바다속으로 사라졌다. 방안을 둘러봐도 기다림의 신은 보이지 않았다. 황급히 문을 열고 도망가는 고독의 신의 뒷모습만 꿈같이 느껴졌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을 도구로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기 보다는 내가 쌓아놓은 성벽을 가늠해보는 것에서부터 나의 영혼에서는 떡갈나무 향기가 나고 내 얼굴에서는 빛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오랫동안 잃어 버린 미소가 반짝이는 것만 같았다. 조금 더 낮아진 마음으로, 질문은 더 많이 하는 시간대로, 무게감 있는 삶의 속도를 생각하며.